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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스피노자의 교훈 "항상-이미 시작"

그린비에서 책을 만들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순간, 한편으로는 걱정이 밀려왔습니다(기뻤다는 얘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가장 큰 걱정은 글을 많이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홈페이지나 블로그 같은 일종의 공적 공간에 말이죠. 아주 객관적으로 말하면, 그린비에서 편집자가 그렇게 많은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다녀 보니 그랬습니다). 하지만 편집자로 생활하면서 글이라곤 보도자료 정도만 쓰면 오케이였던 예전에 비하면 이는 엄청나게 큰 변화였습니다. 저는 글쓰기를 무서워하는, 호들갑을 좀 떨자면 글쓰기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글을 쓰면서 고통스러운 순간을 경험하는 건 누구나 겪는 일일 겁니다. 잘 쓰는 사람이건 못 쓰는 사람이건 마찬가지일 테죠. 결론은 잡혀 있는데 근거들이 명확하지 않을 때, 내 생각을 정확히 표현해 줄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멋진 문구를 내뱉긴 했는데 그게 오히려 전체 맥락을 어그러뜨릴 때, 심지어는 뭔가 쓰고 있긴 한데 이게 도대체 뭔지 나조차 알 수 없을 때, 기타 등등. 글을 쓰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꼭(그것도 매우 자주) 오기 마련이며, 그때 글쓰기는 고통스러운 행위가 됩니다. 그런 경험이 많은 제게는 글쓰기가 고통스러운 행위일 뿐 아니라 공포스러운 행위입니다. 그린비에 들어온 지 어언 넉 달, 그동안 공포감에 떨면서 어찌어찌 몇 편의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나 글 못 쓰겠다!” 따위를 선포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계실 테죠. 글쓰기에 대한 공포감을 언급한 건, 그린비에 들어와 처음으로 편집한 책 『헤겔 또는 스피노자』에 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첫 편집 후기를 대신할까 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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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골격을 간략히 설명하면서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근대 철학의 정점인 헤겔 철학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스피노자 철학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이를 위해 헤겔이 어떻게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스피노자를 오독했는지를 밝히고, 스피노자가 어떤 점에서 헤겔의 한계를 극복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제가 참고한 부분은 2부 「기하학적 방법에 따라」에 들어 있는 ‘방법에 대한 스피노자의 재평가’라는 장(chapter)입니다. 전후 맥락을 간략히 설명하면, 헤겔은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처럼 ‘방법’에 특권을 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헤겔에게 ‘방법’이란 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지식의 전개 과정”이며, 방법은 이 과정을 “표현”(67쪽)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죠(말이 좀 어렵습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헤겔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를 싸잡아 비판합니다. 하지만 『헤겔 또는 스피노자』의 저자 피에르 마슈레는 (여기서도) 헤겔이 스피노자를 오독했다고 반박합니다. 그에 따르면 데카르트와 비슷한 건 오히려 헤겔이고, ‘방법’에 관해 진정으로 새로운 사유를 보여 준 사상가는 스피노자입니다.

이 부분은 이 책에서 ‘사례’가 등장하는 흔치 않은 부분입니다(그래서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이기도 하고요). ‘방법’하면 떠오르는 철학자, 『방법서설』의 데카르트는 방법에 특권을 부여하면서 대충 이렇게 설명합니다. 방법은 인식의 ‘도구’이며, 대상을 잘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선’ 도구를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대장장이를 사례로 듭니다. 대장장이가 대장 기술을 선보이려면 도구가 필요합니다. 만약 그에게 아무 도구가 없다면, 아마 그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이나 쇳덩이를 가지고 “먼저 …… 도구를 만들 것”입니다(이 내용은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의 ‘8규칙’에 들어 있으며, 『헤겔 또는 스피노자』에서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같은 사례를 통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마슈레의 해설을 한 번 보도록 하죠.

대장장이가 사용한 최초의 망치는 진짜 망치였을 리 없고, 더욱이 이를 사용한 사람도 진짜 대장장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망치는 길가에서 발견한 자갈, [진짜 망치라고 하기에는] 불완전한 자연적 도구였으리라. 처음에는 분명 연장이 아니었던 자갈이 사람들이 그것을 연장으로 사용함으로써, 곧 이를 활용함으로써 비로소 도구가 되었을 뿐이다. 이처럼 원시 시대의 사람들은 즉석에서 취한 도구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에는 매우 조잡한, 나중에는 좀더 다듬어진 대상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대상들 중에는 자신들이 수행해야 할 기능에 좀더 적합하게 다듬어진 도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84쪽. 강조는 제가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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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처음에 대장장이(물론 처음부터 그가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겠죠)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해 자기가 만들려는 뭔가를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좀더 ‘그럴듯한’ 도구도 만들 수 있었겠죠. 이런 식으로 점차 발전해 망치나 모루 같은 ‘전문적인’ 도구를 생산할 수 있었을 겁니다. 어떤가요? 스피노자의 설명이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습니까?

스피노자에게 인식은 활동이며 ― 이는 그에게 본질적인 생각이다 ― 인식은 그 자체로 참되게 시작하지도 않고 진리 안에서 시작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인식은 항상 이미 시작했기 때문이다. 항상-이미 관념들이 존재하는데, 왜냐하면 본성의 사실에 의해 인간은 사유하기 때문이다.(85쪽. 이번에도 강조는 제가 한 겁니다.)

스피노자에게 방법은 부차적인 것이었습니다. 뭔가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도구들(다시 말해 방법)을 먼저 조사하고 확립해야 한다는 게 데카르트의 주장이라면, 스피노자는 “인식은 항상 이미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도구들을 ‘먼저’ 구해야 하고 ‘그런 다음’ 인식을 시작해야 한다는 단언은, 별 생각 없이 들으면 맞는 것 같지만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됩니다. 인간은 “본성의 사실에 의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미 사유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즉 도구가 있건 없건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적에 꼭 알맞은 도구가 ‘시작’부터 우리 손에 쥐어져 있는 경우는,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인식은 “하나의 과정”이자 “활동”(87쪽)입니다. 그리고 항상-이미 시작해 있기 때문에 참된, 올바른 시작이란 건 없습니다. 불완전한 시작, 그리고 점진적인 교정과 발전만이 있을 뿐입니다. 기묘하게만 느껴지는 『윤리학』의 서술 방식도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해명이 됩니다. 알다시피 『윤리학』은 ‘정의’에서 시작합니다. 저는 (끝까지 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윤리학』을 읽으면서 이 정의라는 것들이 자명한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정의되어야 하는 것인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해 많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마슈레가 밝혀 주는 바에 따르면 『윤리학』 1부 첫머리에 제시되는 실체, 속성, 양태의 정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이 시초의 원리들 안에 출현하는 실체, 속성들 및 양태들은 최초의 대장장이들이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서 필요로 했던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자갈 같은 것들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아직 단순한 단어들에 불과한 추상적 통념, 자연적 관념들이다. 그랬던 것들이 증명 과정 안에서 기능하면서 실재적인 효과들을 생산하고, 그리하여 자신들이 처음에는 보유하지 못했던 역량을 표현하는 순간부터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88쪽)

마슈레의 논점은 실체, 속성, 양태 같은 핵심 개념들이 책 서두에 등장했다고 해서 이것들을 자명한 것, 완성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개념들은 논의가 진전되면서 다듬어지고 좀더 완전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마슈레는 말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윤리학』을 다시 한 번 읽어 볼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글쓰기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교훈도 하나 덤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글쓰기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통과해야 하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고통스러운 순간이 오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는 타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의미심장한 도입부, 통찰을 보여 주는 결론, 꽉 짜인 전개 과정 등등을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고민했기 때문이죠. 아주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구상이 되어 있어야 실제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구상이 잘 될 리는 없고, 그럴수록 더 공포에 휩싸이고……. 대충 이런 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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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 <나무>
_ 글쓰기는 집짓기에 비유되곤 합니다. 집을 짓기 전 설계를 하고 터를 닦고 만반의 준비를 하듯 글을 쓰기 전 글의 구조와 뼈대를 구상한 후 살을 붙여 나가곤 하죠.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한 준비는 '항상-이미' 되어 있습니다. 몬드리안의 나무처럼 어디로든 뻗어나가고, 어디서든 마주치며 연결되는 사유가 말이죠.

인용문이 제게 던져 준 교훈은 이런 것입니다. “사유를 일단 시작하라”, 더 나아가 “사유는 항상-이미 시작한 상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나의 글을 쓸 때, 처음부터 이 글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출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것들은 글을 쓰면서 언제든지 변형될 수 있고 또 변형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피노자와 마슈레가 말하듯 인식의 시작과 글쓰기의 시작은, 나아가 모든 시작은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목적’, 내가 쓰는 글의 ‘주제’를 정합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활동 속에서, 그 과정 속에서 글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실제로 그 글을 쓰고 나서야 완전히 드러나며, 또 그러는 와중에 애초의 ‘목적’, ‘주제’가 바뀌는 일까지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실제로 스피노자와 마슈레가 가장 배격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만을 향해 달려가는 운동입니다). 제가 느낀 건 이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만 글쓰기가 주는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글을 잘 쓰기 위해 일단 이런저런 ‘도구들’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 별 성과를 얻지 못할 게 뻔한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고’ 그 글이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것도 즐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불확실성이 제기하는 질문들까지 글 안에 담아 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해석이 너무 과도한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글쓰기에 대한 공포감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과도하게 해석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저는 이 주제로 편집 후기를 쓰기 시작했고 조금씩 전진해서(?) 이 글을 마무리할 순간까지 왔습니다. 아니, (스피노자의 정신에 충실하자면) 그 반대로 ‘편집 후기’를 썼기 때문에 이 주제를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일단 시작하기, 그리고 어떻게 나아갈지 전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점차 발전시키기”라는 원칙 덕분인지 신기하게도 글쓰기에 대한 공포에서 (적어도 이번에는)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원칙을 잊지 않는 한, 앞으로 (아주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게 많지 않을) 글을 쓰면서도 그런 공포심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편집부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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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7 15:23 2010/04/0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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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po 2010/04/07 22:41

    글쓰기에 공포가 있다고 하시기에는 글을 참 잘쓰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그린비 2010/04/08 09:57

      sopo님, 감사합니다! 꾸벅(..)

  2. phrensy 2010/04/07 22:46

    좋은 글 잘 일고 가요. 이 글을 읽고 나니, 글 쓰기에 대한 공포가 좀 줄어드네요. 진짜 쓰면서도,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그런 생각을 많이했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군요.뭔가 안심이 되네요.^^

    • 그린비 2010/04/08 10:04

      저도 글쓰기에 대한 공포로 펜을 들(혹은 키보드에 손을 올릴) 자신이 없었는데, 고런 공포심일랑 접어두고 일단 시작부터 해야겠단 생각이 몽글몽글 들었답니다.^^

  3. 캐러멜대장 2010/04/08 12:12

    저는, 글을 잘쓰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런지 제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지못;;), 그래도 글쓰는 게 정말 재밌고 즐거워요. '글쓰기' 자체가 무척 재밌어요. '불확실성 속에서 점차 발전시키기'와 비슷하게, 구름처럼 대강의 형체만 있던 생각을 글로 풀어내고 가시화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어요ㅡ 왠지 조각하는 느낌이랄까요. 뭔가 형체가 점점 뚜렷해지면 왠지 뿌듯해지고ㅋ.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조사를 쓰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배치하는지에 따라 글의 느낌이 확확 달라지는 것도 신기하고요. 단어-문장-문단들의 조합.. 글의 수많은 가능성들. 이 가능성 속에 퐁당,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어요. ㅋㅋ

    • 그린비 2010/04/08 14:14

      와아아. 이미 통달하고 계셨던 듯 +ㅅ+
      글쓰는 게 정말 재밌고 즐겁다니~ 축복입니다!! 댓글만 봐도 기대되는 캐러멜대장님의 글! 꼭 보고 싶네요.^^*

  4. 레몬에이드 2010/04/08 21:14

    잘쓰시네요 =ㅂ=
    요즘 참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의 문장을 읽어서 그런지
    부럽기만 한데 저는 아직까지 잘 가닥이 잡히지 않더군요.
    두려움까지는 없지만
    제 글을 읽는 이가 혼돈에 빠지지 않도록
    잘 쓰는 법을 더 익혀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해봅니다 ^^

    • 그린비 2010/04/09 10:08

      캄사(..*)
      그런데 저는 레몬에이드님이 부럽네요. 글쓰기의 두려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성공하신 듯합니다. ^^*

  5. gDoore 2010/04/09 11:30

    소박한 글 잘 읽었습니다. 참고로 '소박한'은 제가 쓰는 찬사 중 서열 3위 안에 드는 말입니다. 이 글을 보니까 한참 전에 사 두었던 <헤겔과 스피노자>(이제이북스)를 읽을 용기가 나네요. 감사합니다.

    • 그린비 2010/04/09 11:55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 요 책은 이제이북스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 개정판이랍니다. 완독 하시길~

  6. 이fun한세상 2011/08/22 19:17

    게다가 그림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글 잘 읽히는데요.

    글을 쓸 땐, 일단 한바탕 저지르기..(독백입니다^^)

    • 그린비 2011/08/22 20:13

      일단 저지르기에 한 표 더 던집니다. ^^
      그리고 꾸준히 밀고 나가기! 이게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