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현 온더로드>의 작가 유재현이 이번에는 미국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행이 끝나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서 기행의 흔적들을 먼저 연재하려고 합니다. 작가가 전하는 따끈따끈한 미국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글과 사진을 보내주고 계신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_에덴의 동쪽을 찾아

설리너스(Salinas). 엘에이(LA)를 떠난 후 첫 목적지이다. 서부연안의 대표적인 농업지대 중 하나인 설리너스는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고향이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39), <에덴의 동쪽(East of Eden)>(1952), <의심스러운 싸움(In Dubious Battle)>(1936) 등이 대표작이다.

존 스타인벡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이번 기행을 떠나기 전 나는 스타인벡의 1960년 미국기행인 <찰리와 떠난 여행(Travel with Charley)>을 주문해 손에 넣었다. 엘에이로 오는 비행기에서 절반을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틈틈이 읽고 있다. 쉰여덟이 된 스타인벡의 이 기행에서 젊은 시절 그가 내뿜었던 열정과 분노 그리고 힘을 찾을 수는 없었다. 또한 그것은 내가 간직하고 있는 스타인벡은 아니었다. 언젠가 나는 어떤 글에서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내 사춘기를 흔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이번 여행의 방문지 중 하나를 설리너스로 계획한 것도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설리너스는 2년 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다.

영화 <분노의 포도>

영화 <분노의 포도>에서의 톰(헨리 폰다)

서부 연안의 엘에이에서 시작해 북미를 시계방향으로 여행하는 이번의 계획은 확실히 좋지 않다. 말하자면 동부에서 출발해 서부로 향하는 것이 온당하기도 하거니와 원칙적이다. 북미의 역사란 대서양에서 출발해 태평양에서 매듭지어지는 것이다. 알려진 미국기행들, 예컨대 시몬느 보브와르와 토크빌, 앙리 레비의 기행이 그렇고 스타인벡의 <찰리와 떠난 여행>이 그렇다. 모두들 동부에서 출발해 서부를 향한다. 그게 정석이다. 서부에서 출발해 동부로 떠나는 미국기행이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기도 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보스톤 쯤에서 시작하도록 조건을 만들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었다. 아시아인들이 디딘 북미의 첫 땅은 서부연안이었고 중국인 쿨리(苦力)였다. 나는 유럽인이 아니지 않은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에서 그렸던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루트 66의 여정과 흔적을 따라갈 수는 없다.


서부연안의 운치를 느끼려면 101번 도로를 타야하지만 마음이 바쁘다. 두 달로 예정한 여행은 처음부터 운치보다도 속도를 택하게 한다. 인터스테이트(Interstate)도로인 5번을 택했다. 다시 101번 도로로 빠져나왔을 때부터 길은 설리너스의 카멜계곡을 향해 달린다. 구릉과 숲, 농지가 화목하다. 이윽고 카멜계곡이 눈 아래 펼쳐진다. 스타인벡이 <에덴의 동쪽>에서 묘사하고 있는 설리너스의 풍경이다. 푸른 채소들과 가끔씩 알몬드 농장이 이어지는 도로변. 기름진 검은 흙들이 풍요롭다.

2년 전 그 길의 어디에선가 실물의 두세 배를 넘는 기묘한 거인 허수아비(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를 스쳐지나간 적이 있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차를 세우지 못해 찬찬히 살피지 못했던 허수아비들을 다시 만났다. 쟁기인 듯싶은 농기구를 손에 든 아낙네들이 옥수수 밭 뒤로 세워져 있다. 뒤편으로는 갈린 밭과 채소밭들이 펼쳐져 있다. 허수아비란 언감생심이다. 광고판이랄까. 거인 아낙네들 중 한 명의 가슴에는 FFA(미래의 미국농민, Future Farmers of America)란 글자가 박혀 있는 것으로 보면 공공 홍보판인 셈이다. 설리너스를 홍보하는 광고판. 직접 내려가 마주한 거인 아낙네들은 크기도 압권이고 그린 솜씨는 또한 손색이 없다. 도끼 한 자루로 세인트 로렌스 강을 파시고 미시시피 강에서 록키산맥까지 나무들을 모두 잘라 중부 평원을 일구시었다는 미국 민화의 주인공 거인 폴 버년(Paul Banyan)의 딸들일지도 모른다.


벽화

스타인벡 센터의 맞은편 담에 그려진 벽화. 스타인벡의 작품 모두를 소재로 삼았다.

설리너스시(市)는 한적하다. 스타인벡을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시내 중심의 '스타인벡 센터(National Steinbeck Center)'이다. 이름에서처럼 국립이다. 1998년에 세워진 센터는 물론 스타인벡을 기념하기 위한 건물이다. 사정이 사정인지라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스타인벡이 찰리와 떠난 여행에서 이용했던 트럭이었다. 트럭회사에 특별히 주문해 만들었던 이 트럭의 이름을 스타인벡은 동키호테의 애마 '로시난테'를 얻어와 지었다. 트럭의 짐칸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개조한 이 트럭은 말하자면 RV카의 원조이기도 하다. <찰리와 떠난 여행>에서 스타인벡은 트럭의 구조와 내부에 대해 더없이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실물이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다. 작은 식탁 겸 책상 하나가 앞쪽에 부착되어 있고 비좁을 것처럼 여겨지는 침대 하나가 한 편에 놓여 있다. 환갑을 코앞에 둔 쉰여덟의 노인 스타인벡은 이 트럭을 몰고 지금 내가 떠난 여행을 거꾸로 돌았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 병을 앓았던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노인이다. 트럭을 로시난테로 작명한 것도 과하지는 않은 셈이다.

스타인벡에게 할애된 상설 전시장에서는 그런대로 스타인벡의 생애를 작품을 중심으로 반추할 수 있도록 한다. <에덴의 동쪽>이 가장 큰 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라면 불만스럽기 짝이 없다. 스타인벡의 후기작 중에서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지만 후기작 대부분이 그렇듯 세계와 인간 그리고 미국을 바라보는 예리함과 시선이 무뎌져 있다. <찰리와 떠난 여행>은 소설은 아니지만 스타인벡의 그런 모습을 마찬가지로 엿볼 수 있다. 고작해야 중산층 인텔리의 양심 정도를 보듬고 있을 뿐이다.

에밀리아노 사파타

멕시코 혁명의 지도자 에밀리아노 사파타(Emiliano Zapata)

장총을 손에 든 에밀리아노 사파타(Emiliano Zapata)의 서늘한 눈매가 전시장의 어느 한 구석을 응시하고 있다. 스타인벡이 엘리아 카잔과 함께 만든 영화 <비바 사파타(Viva Zapata)>와 관련된 코너이다. 스타인벡은 각본을 썼고 그 때문에 한동안 멕시코에 체류했다. 스타인벡과 멕시코의 관계는 깊다. 데뷔작에 해당하는 <토르티야 대지(Tortilla Flat)>(1935)는 멕시코계 미국인들을 다룬 소설이다. 캘리포니아의 멕시코인 노동자들이란 중첩된 억압의 주인공들이다. 강탈당한 땅에 남거나 이주함으로써 주인의 지위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신분으로 전락한 멕시코인들. 노동자로서의 피착취 계급. <토르티야 대지>는 애정을 담아 그 인물들의 삶을 그려낸다. 그 애정이 흘러간 곳이 <비바 사파타>이다. 한데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사파타라니. 실제로 멕시코 출신인 안소니 퀸은 사파타의 동생인 유페미오의 배역을 맡았다. 제정신이었다면 사파타의 배역은 안소니 퀸에게 돌아가야 했다.(물론 그도 최선의 캐스팅은 아니었겠지만.) 스타인벡이 엘리아 카잔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했으니만큼 그도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그보다 심각한 것은 영화의 내용인데 1950년대 이미 팽배했던 멕시코인에 대한 '판초'의 이미지가 영화에도 여실히 배어있다. 각본은 스타인벡의 것이었다. 때문인지 시선은 내내 영화 <분노의 포도>에서 톰을 연기했던 헨리 폰다에게로 머물고 있었다. 영화에서 헨리 폰다는 흠잡을 데 없는 '톰'이었다.

스타인벡이 나고 자란 집은 센터에서 멀지 않다. 레스토랑과 선물상점 간판이 돋보이는(?) 집은 다행스럽게도 전과 마찬가지로 문이 닫혀 있다. 열려 있어도 들어가 볼 마음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리.' 고향인 설리나스에 들른 스타인벡은 <찰리와 떠난 여행>에서 토마스 울프의 소설 제목을 빌어 그렇게 적었다. 그렇다. 고향은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국에서
유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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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작가 소개 유재현 |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주대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했고, 그 후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에서 활동했다. 1992년 『창작과 비평』(봄호)에 중편소설 「구르는 돌」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인도차이나 3국(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을 여행한 기록을 모은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열대과일로 남아시아의 문화사를 풀어낸 『달콤한 열대』, 쿠바를 여행하며 만난 인간적인 사회의 가능성과 희망을 담아낸 『느린 희망』,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아시아 각국의 잊혀진 역사를 되돌아본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캄보디아인들의 삶을 통해 한국을 되돌아본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등과 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 『난 너무 일찍 온 것일까 늦게 온 것일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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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3 12:58 2007/11/1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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