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이 사랑한 이야기꾼, 요한 페터 헤벨

조효원 (문학평론가)

‘시대를 앞서간 첨단의 매체이론가’로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다소 놀라운 이야기이겠지만, 벤야민은 누구보다 이야기(꾼)들을 사랑했다. 가령 그는 프란츠 카프카를 매우 높이 평가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관점—카프카를 세계문학의 고전으로 인정하는—에서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20세기 초 카프카의 작품들이 세상에 막 나왔을 당시에는 거의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무명씨’의 기이한 픽션들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보면 우리는 벤야민의 문학적 감식안을 가히 시대를 뛰어넘은 것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실제로 벤야민은 독일문학 최고의 비평가가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기도 했다). 오늘은 이처럼 뛰어난 감각을 가졌던 문학비평가 벤야민이 사랑한 여러 이야기꾼 가운데 가장 ‘시골스런’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그의 이름은 요한 페터 헤벨(Johann Peter Hebel, 1760~1826)이다. 개신교 목사이자 신학자이기도 했던 헤벨은 1760년 바젤에서 태어난 독특한 이야기꾼으로서 우리에게는 이름보다는 가령 「이상한 산보」와 같은 작품으로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 헤벨이 쓴 “달력이야기”(원제: 『라인 지방 가정의 벗, 이야기 보물상자』Schatzkästlein des rheinischen Hausfreundes) 가운데 하나인 「이상한 산보」는 당나귀를 끌고 여행하던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충고에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려 처음에는 서로 번갈아 당나귀를 타고 가다가 결국에는 둘 다 내려 당나귀를 어깨에 메고 길을 갔다는 우스꽝스런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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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페터 헤벨
_ 헤르만 헤세 또한 헤벨을 '독일 문학사의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이라 칭했다.

그러나 헤벨의 달력이야기 가운데에는 이처럼 익숙하고 익살스러운 이야기 외에 진지한 ‘지혜’(Weisheit)를 담고 있는 이야기도 많다. 가령 「모제스 멘델스존: 18세기 독일의 저명한 유대인 철학자」이란 제목의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모제스 멘델스존은 그다지 머리가 좋지 않다고 소문이 나 있는 어느 상인의 점원이며 유대교 교도였다. 그는 주인과는 달리 매우 경건하고 현명한 사람이었기에 고상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높이 평가되고 사랑도 받았다. 그것은 또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의 머리카락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모제스 멘델스존은 무엇보다 자신의 운명에 만족했고 이를 증명해 보이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친구가 그를 방문해 왔을 때, 그는 마침 어려운 계산에 몰두하여 땀을 흘리고 있었다. “참 안됐구먼, 착한 모제스여, 자네와 같은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 빵을 벌기 위해 자네의 발밑에도 못 미치는 사람에게 봉사를 해야만 한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자네 주인의 몸집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그의 온 몸통이 자네의 작은 손가락 하나보다도 더 현명하지 못하지 않은가?”

만약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저주의 말을 하면서 펜과 잉크병을 난로 속에 집어던지고 당장 주인에게 사직서를 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별력 있는 멘델스존은 잉크병을 가만히 놔 두고 펜을 자신의 귀 뒤에 꽂고 자신의 친구를 조용히 쳐다보다가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만 해도 모든 게 좋았네. 하느님의 섭리로 사려 깊게 생각할 수 있었네. 그러므로 이렇게 내 주인은 나의 봉사로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고, 나로서도 밥을 먹고 살았네. 만약에 내가 주인이고 그가 내 서기라면, 나는 그를 쓰지 않았을 거야.”
(『예기치 않은 재회: 독일 가정의 벗, 이야기 보물상자』, 배중환 옮김, 부산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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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이야기(『라인 지방 가정의 벗, 이야기 보물상자』)
벤야민이 헤벨을 사랑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었다. 즉 헤벨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보여 주는 이른바 ‘교훈’들은 결코 상식의 차원에서 쉽사리 이해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들은 도저한 통찰과 뼈아픈 반성을 통해서야 도달할 수 있는 깊은 도덕감을 촉발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우리가 ‘삶의 지혜’라고 불렀던 여러 종류의 격언과 잠언과 명언들은 오늘날에는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표현들이 되고 말았다. 요즘에는 아무도 정색하고 ‘격언’을 들먹이지 않는다. 그럴 경우 대화의 분위기가 곧바로 ‘오그라들고’ 말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탄성을 자아낼 만큼 ‘멋진 말’은 텔레비전 토크쇼에서나 가끔 들을 수 있을 뿐이다(강호동이 진행하는 「강심장」이나 「무릎팍도사」를 떠올려보라!). 이처럼 수많은 지혜의 언어들이 ‘낡은 것’으로 격하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심층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만을 꼽자면 아마도 그것은 저 언어들의 ‘단순한’ 교훈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대개의 격언과 잠언과 명언은 공히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순간적으로 다시 상기시켜 주는 효력밖에 지니지 않는 것이기에 쉽사리 ‘낡은 것’이 되는 것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언어들도 있다). 이에 반해 헤벨의 이야기들—물론 그의 모든 이야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은 교훈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웅숭 깊은) ‘분위기’를 주기 때문에 결코 시간의 때를 타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들은 시간의 흐름을 유익한 자양분으로 삼는다. 왜냐하면 그의 이야기들은 설명하거나 가르침으로써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책 제목이 보여 주듯이) 그저 ‘친구가 되는 것’일 따름이기 때문이다(바로 이것이 위에서 내가 헤벨을 두고 ‘시골스럽다’는 레테르를 붙인 속뜻이다).

벤야민은 「이야기꾼」이라는 유명한 비평문에서 이처럼 시간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뜻밖의 재회」라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스웨덴 팔룬 지방의 광부 부부의 사연을 다루고 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 광산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그를 기다리던 신부는 영영 그를 잊지 못했다는 진술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벤야민이 인용하는 이 이야기의 백미는 다음과 같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사이 포르투갈의 도시 리스본이 지진으로 파괴되었고, 7년전쟁이 지나갔고, 프란츠 1세가 서거했고, 예수회 교단이 폐쇄되었고, 폴란드가 분할점령되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서거했고, 슈트루엔제가 처형되었고, 미국이 독립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이 지브롤터를 공격했으나 점령하지 못했다. 터키군이 헝가리의 베테라니 요새를 지키던 슈타인 장군을 포위공격했고, 요제프 황제도 서거했다. 스웨덴의 구스타프 왕이 러시아령 핀란드를 점령했고,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레오폴트 2세 황제도 무덤 속으로 갔다.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을 점령했고, 영국군이 코펜하겐을 포격했으며, 그러는 중에도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양식을 거두었다. 방앗간 주인은 곡식을 빻았고, 대장장이는 쇠를 벼렸으며, 광부들은 광맥을 찾아 지하갱도를 파내려 갔다.
(임홍배 엮고 옮김, 『어느 사랑의 실험』, 창비, 2010, 84~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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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신랑의 죽음(「뜻밖의 재회」, 광부 부부 이야기)
이처럼 죽음이 “정오의 성당시계를 중심으로 행해지는 장의행렬에서 그렇게 나타나는 것처럼 일정하게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등장하고”(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옮김, 민음사, 1998, 179쪽) 있는 이 부분은 헤벨이 얼마나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독자와 내면의 깊은 떨림을 느끼는 독자를 가르는 차이는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자연사’(벤야민)에 대한 감각을 가졌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점이다. 인간의 자연사,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이다.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을 진정한 ‘친구’로 삼는 자만이 삶 또한 친구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실로 이러한 비밀을 아는 자만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죽음은 이야기꾼이 보고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인준을 뜻한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그의 권위를 빌어 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의 이야기가 소급해서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인간의 자연사이다.”(『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178쪽) 그리고 이처럼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의 자연사로서 삶을 고찰할 줄 아는 정신에게는 그 어떤 세월의 부침이나 곤란도 본질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그에게 삶의 모든 순간순간은 결코 낡은 것으로 전락하지 않으며, 항시 찬란한 죽음의 순간과 맞닿아 있는 활력으로 가득 차게 된다. 하여 「뜻밖의 재회」에서 신랑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마치 겨우 한 시간 전에 죽은 사람처럼, 혹은 작업을 하다가 잠시 잠이 든 사람처럼, 얼굴 윤곽도 또렷했고 나이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어느 사랑의 실험』,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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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30 10:37 2010/04/3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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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penID Logo aleph 2010/04/30 12:59

    잘 읽고 갑니다. ^^

    • 그린비 2010/04/30 13:44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