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리라이팅 일리아스』 저자 강대진 선생님 인터뷰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의 열번째 책,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이하 『리라이팅 일리아스』) 가 출간되었습니다.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는 '고전'을 늘 현재로 소환합니다. 지금-여기에서 일어나는 삶의 문제들과 고전을 접속시키거나, 고전을 현재적 의미에서 '리라이팅'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바로 고전을 살아있게 만드는 법, 고전을 새롭게 읽는 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리라이팅 일리아스』는 그런 의미에 아주 잘 부합하는 책입니다. 신화의 세계, 서사가 살아있던 시대와 우리의 시대가 어떻게 만나는지, 더불어 그러한 고전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리라이팅 일리아스』의 저자 강대진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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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진 저자 소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플라톤의 『향연』 연구로 석사 학위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근래에는 희랍・로마 서사시 속에 숨어 있는 민담의 요소와, 희랍문화에 끼친 고대 근동문화의 영향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세계와 인간을 탐구한 서사시 오뒷세이아』, 『고전은 서사시다』, 『잔혹한 책 읽기』, 『신화와 영화』, 『신화의 세계』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아르고 호 이야기』, 『아폴로도로스 신화집』 , 『오이디푸스 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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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했다고 하는 독자들도 ‘고대’의 것들은 지루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생님이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고대 희랍 철학과 같은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대의 작품들이 지루하다는 선입견은, 그것을 제대로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데서 생긴 것입니다. 저 같은 선생들의 책임이 큽니다. 전공자들이 쉽고 명확하게 내용을 정리해 주고, 어떤 매력이 어떻게 숨어 있는지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제가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소 우연적인 계기에서였습니다. 대학 시절, 무엇이건 열심히 하고 싶던 시기에, 무료로 희랍어, 라틴어를 가르쳐 준다는 공지를 보고 고전어 공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왕 어렵게 배운 것을 어떻게든 활용해 보자는 생각에서 그쪽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고전 전공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책에서 ‘그리스’라는 표현보다 ‘희랍’, ‘헬라스’와 같은 말이 적당하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에 관해 좀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리스’라는 말을 피하려는 이유는 그것이 영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통 ‘그리스’라고 부르는 나라를, 그 나라 사람들은 ‘헬라스’(Hellas) 또는 ‘엘라다’(Hellada)라고 부르고, 그것을 한자로 옮겨 적은 것이 ‘희랍’(希臘)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나라를 ‘그리스’보다는 ‘희랍’이라 부르자고, 그게 싫다면 아예 ‘헬라스’라고 부르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희랍’이란 말을 버리고 대신 ‘그리스’라는 이름을 쓰자는 주장은, 스스로 ‘도이칠란트’라고 부르고 우리는 쉽게 ‘독일’이라고 부르는 나라를 영어식으로 ‘저머니’라고 부르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그리스’Greece라는 이름은 원래 로마 사람들이 쓰던 ‘그라이키아’Graecia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이 말은 로마 사람들이, 희랍 땅 중에서도 자기들 나라에 가까운 지역을 가리키던 이름이었는데, 나중에 그 지역이 속한 나라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지요).

하지만 요즘 ‘희랍’이 ‘아랍’ 지역에 속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조금 고민이 됩니다. 이런 젊은이들과도 소통하기 위해서, 책 제목 따위에는 조금 양보해서 ‘그리스’라는 이름을 써 볼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서문에서 독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본문에는 언제나 ‘희랍’이라고 쓰려 합니다. 앞으로 혹시 제가 쓴 글 본문에 ‘그리스’라는 말이 보이면, 그건 편집자가 고친 것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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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이팅 일리아스』의 구성이 흥미롭습니다. 하나의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갔다가 다시 처음의 주제로 되돌아오는 원전의 반복 기법을 따라가면서 서술하셨는데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원전 『일리아스』를 접해 보지 않은 독자들은 이 책을 읽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으면 좋을지 말씀해 주세요.

조금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해설서를 보기 전에 우선 원전 번역을 펼쳐 들고 혼자 읽기를 시도해 볼 것을 권합니다. 틀림없이 몇 쪽 나가지 못하고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몇 쪽만 읽어 보시고, 그 다음에 해설서를 보시지요. 그러면 자신이 무엇 때문에 막혔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설서를 읽다가 조금 자신이 붙으면 다시 원전 번역으로 돌아가 읽어 나가면서, 필요할 때만 해설서를 찾아 보셔도 되고요, 이왕 읽기 시작했으니 해설서를 다 보시고 그 다음에 원전 번역으로 가셔도 되겠습니다. 이 해설서가 분량 때문에 부담스럽다 싶은 분은, 제가 더 짧게 써놓은 글(『고전은 서사시다』 1장)을 찾아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같은 희랍고전들이 지금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보통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그것들이 세월이 가도 변치 않는 어떤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희랍 고전들을 공부하다 보면 지난 2800년 사이에 인류가 대체 발전하긴 한 건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고전들에는 그 이후 시대가 거듭 사용한 이야기 요소들, 이야기 방법들, 인간과 세계에 대해 살펴 깨달은 것들이 벌써 다 들어 있습니다. 고전이 얼마나 현대적인지를 보여 주는 것도 저의 주요 작업 목표 중 하나입니다.

‘고전’은 ‘읽어야만 하는 책’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선생님께서는 고전이 단지 고전이기 때문에 읽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을 읽는 법만 깨우친다면 아주 재미있는 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전을 재미있게 읽는 법에 관해 알려 주세요.
사실은 개별 작품을 제대로 즐기려면 작품별로 미리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별로 독자들과 눈높이를 맞춘 안내서들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여러 고전 작품에 두루 적용될 만한 것을 찾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첫째, 대작들의 경우, 그것들이 서사시의 전통을 따라, 작품 안에 온 세계를, 또는 그것이 다루는 주제에 대한 모든 것을 담으려 시도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H. 멜빌의 『모비딕』(백경)은 고래에 대한 모든 것을 담으려 했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역사 전체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들이 그렇게 ‘지루’해진 것입니다. 이런 작품들에,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한 묘사가 나온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면 그런 부분을 비교적 쉽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의미를 모르면 지루하지만, 의미 부여가 되면 아주 지루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작품들의 형식성에 주목하는 게 좋습니다. 전체의 구조는 어떠한지, 각 부분은 전체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야기 진행에 어떤 리듬이 있는지 따위입니다. 사실은 형식성에 주목하는 사람이라면 벌써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것 역시 전공자들의 도움이 필요한 대목이긴 합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한에서 시도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셋째, 때때로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제가 잘 드는 예는 카프카의 『변신』입니다. 주인공이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거대한 딱정벌레로 변해 있더라는 황당한 내용이지요. 그런 일은 도무지 일어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어떤 분은 이 작품을 아주 재미없게 읽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변신을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야기가 아주 생생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저질러서, 또는 어떤 안 좋은 일을 당해서, 가족이 바깥에 내놓기 부끄러운 존재가 되었는데, 그걸 딱정벌레로 그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건 작품 전체에 대한 해석 문제입니다만, 이런 상징적, 또는 은유적 독법은 작품의 일부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넷째, 마지막으로 제 전공에 대한 노골적인 광고입니다. 읽기 싫으신 분은 지나쳐 주십시오.
앞 시대 고전을 먼저 읽어 두는 것이 큰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누구나 고전으로 인정하고, 필독서 목록에 늘 포함되는 단테의 『신곡』을 예로 들어 봅시다. 사실 그 작품은 희랍과 로마의 고전과 신화를 알지 못하고는 제대로 즐길 수가 없습니다. 아니, 고전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우선, 저승 여행을 떠나는 단테가 왜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버질)를 안내자로 삼았는지부터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베르길리우스가 저승 여행에 대해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베르길리우스는 왜 저승 여행에 대해 썼을까요? 호메로스가 그걸 썼기 때문입니다. 고대에는 창의성의 개념이 현대와 달라서, 옛 사람의 작품을 끌어다가 멋지게 변형하는 것이 대단한 재능으로 꼽혔습니다. 따라서 호메로스-베르길리우스-단테로 이어지는 전통을 모르면 <신곡>이 갖는 매력 중 큰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그런 상황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 같은 작품들에도 해당됩니다. 그래서 저는 호메로스의 두 작품과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만이라도 꼭 읽으시라고 권고합니다.

다섯째, 달리 여러분을 만날 기회가 없을 듯하니, 그냥 일반적인 독서법에 대한 충고도 여기 덧붙일까 합니다. 책을 많이 읽는 방법이 있습니다. 손에서 책을 내려 놓지 않는 것입니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줄을 서 있을 때, 조금씩 조금씩 읽는 것입니다. 이런 자투리 시간이 모이면 상당합니다.
책 내용을 잘 기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친구나 동료들에게 지금 읽고 있는 책 내용을 요약해서 들려주는 것입니다. 머릿속이 정리될 것입니다. 그리고 책에 대한 짧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 한두 줄로 짧게 내용을 요약하고, 느낀 점을 두세 가지만 적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글이 점차 길어지면서 당신도 서평가, 문필가가 될 수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독서를 유행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친구나 동료에게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물으십시오. 자기가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알리십시오. 독서는 전염성이 있으며, 좋은 의미의 경쟁은 우리의 독서 습관을 유지시켜 줄 것입니다.

이상이 고전 읽기와 독서 일반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혹시 너무 잘난 척한다고 느껴졌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책 한 권이 사람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틀림없이 과대망상이겠지만, 독자께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 전체를 자꾸 돌아보기를, 그리고 그러는 중에 다른 작품들도 그렇게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를 희망한다. 또 여기서 시작해서 희랍 비극들로, 다른 서사시들로, 문학 일반으로, 모든 종류의 '이야기'들로 관심을 넓혀 가시기를 바란다. 전체의 구조를 찾아내는 능력은 문학 작품뿐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나 연극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할 것이고, 모든 종류의 이야기들에 대한 관심은 독자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강대진,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머리말 중에서)

2010/04/14 15:53 2010/04/1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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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딱딱하고 지루한 고전을 재미나게 읽는 방법

    Tracked from 당신 덕분에 꽃이 핍니다♡ 2010/04/14 21:05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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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ubject: 플라톤에서 취업의 열쇠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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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비즈북스 2010/04/15 09:01

    다음 베스트에 떴다능!

    "저는 해설서를 보기 전에 우선 원전 번역을 펼쳐 들고 혼자 읽기를 시도해 볼 것을 권합니다. 틀림없이 몇 쪽 나가지 못하고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몇 쪽만 읽어 보시고, 그 다음에 해설서를 보시지요. 그러면 자신이 무엇 때문에 막혔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

    • 그린비 2010/04/15 10:29

      앗, 캄사(..*)

  2. 책쟁이 2010/04/15 11:17

    다음 책 카테고리에 반가운 이름이 있군요. 축하드립니다.
    일리아스는 이제 그림으로 배경설명하는 부분만 읽었습니다. 찬찬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포스팅 글을 읽다 보니 단테 신곡 몇 십 페이지 분량 읽다가 내려 놓은 생각이 나는군요. 일리아스 읽고 다시 한 번 봐야겠군요.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얘기하고 간단히 정리하라는 말은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요즘 책 읽고 정리 차원에서 포스팅하는 것도 재미가 솔솔하네요. 쉬운일은 아니지만요. ^^;

    • 그린비 2010/04/15 11:39

      감사합니다.^-^*
      책쟁이님은 정말 책을 많이 읽으시는 듯!! '다독다작쟁이'정도의 별명을 붙여드리고 싶습니다.ㅎㅎ 블로그 늘 잘 보고 있어요~^^!!

  3. yemundang 2010/04/15 23:28

    남편이 이 글을 강추하네요. 저도.. 내공을 쌓아서 인문학에 도전을... 어서 그날이... ㅋㅋ
    맨 아랫부분이 인상적이네요. 전염시키는 방법이요.
    저도 이 부분에 대해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저희 부부가 도배를? 더 많은 분들이 페이지 가득 도배해주길 바라며...... ^^
    항상 모범이 되어주시는 그린비에 감사드려요~

    • 그린비 2010/04/16 10:18

      아, 이런 훈훈한 모습.♡
      요즘 예문당에서 이곳저곳 좋은 기운을 많이 전염시키고 계신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마구마구 감염되고 싶다능~ㅎ
      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