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시타(宮下) 공원의 나이키화를 막기 위한 싸움
ㅡ일본에서 마을 만들기9


신지영 (수유+너머)

* 사라지는 마을, 태어나는 마을.
봄은 태어남의 계절이다. 따라서 봄에 죽거나 사라지는 것들은 더욱 강렬한 에너지로 살아난다. 불행히도 봄의 자연법칙은 자본의 개발이 판을 치는 요즘엔 통하지 않는 듯하다. 봄은 개발공사나 악법을 새로 실행하기에도 좋기 때문일까. 최근 몇 년간, 내 봄은 장례식과 함께이다. 2007년 봄. 나는 황새울 벌판에서 꽃배 상여를 울며 따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 있었다. 그날이 지나면 대추리 도두리엔 미군 기지가 들어설 것이며, 52년부터 그 땅을 개간해 살아온 마을 주민들은 공동이주단지로 쫓겨날 것이었다. 도두리에 있던 거대한 문무인상이 불에 탔고, 촛불집회가 열리던 대추분교 한복판에 판 구덩이엔 다시 이 마을에 돌아올 날을 바라는 소원을 적은 향나무판과 마을 주민들의 손때 묻은 보물들이 묻혔다. 그것은 국가로부터 쫓겨나는 '국민=난민' 및 침묵하는 황새울 벌판의 희망을 담은 무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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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봄의 일본 미야시타 공원

2010년 봄. 나는 일본 미야시타 공원 근처에서 장례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있었다. "연간 자살자 3만인을 생각하는 회" 주최로 일본의 엄청난 자살율을 생각하는 동시에, 미야시타 공원에서 대중들이 내쫓기는 상황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추리의 꽃상여 대신 미야시타 공원사진에 검정띠를 두르고, 울음과 풍물 대신 손으로 만든 각종 악기들이 구슬프고도 신기한 소리를 냈다. 이에 맞춰 장례복장, 유령, 등으로 변장한 약 70명 가량의 사람들이 시부야 거리 한가운데에서 춤추며 활보했다. 퍼레이드가 끝나자 미야시타 공원에 모여 땅을 파고 항의 글귀들을 묻었다.(http://airmiyashitapark.info/wordpress/page/2) 그 무덤은 31일에 개최될 대규모 집회의 집결지로 결정되었다.

2010년 봄, 미야시타 공원의 유쾌기괴시끌한 장례 퍼레~이드!에서 2007년 대추리의 무덤이 열리고 마을에 대한 희망의 글귀들이 뛰쳐나오는 것이 느껴졌다면, 그건 단지 나의 환상일까? 싸우다 사라진 마을들은 또 다른 싸우는 마을로 이어져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닐까?

* 마을 되기1: 네 몸으로 표현해 봐.
최근 미야시타 공원을 지키기 위한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나이키사는 미야시타 공원을 스케이트 보드장, 암벽등반 시설을 구비한 나이키파크로 개축하는 명의로 매년 1700만 엔을 시부야 구에 지불하기로 한다. 미야시타 공원이 유료 나이키파크가 되면 야숙자들은 추방당할 것이며, 집회장소로서의 기능을 잃을 것이며, 스케이트 보더들은 정해진 길로만 스케이트를 탈 것이다. 3월 24일 나이키가 공사 설명회를 개최했고 4월 1일부터 개수공사를 착수할 계획을 밝혔다. 미야시타 공원 주변엔 거대 나이키 쇼핑몰이 들어섰으며 시부야 역 근처엔 나이키 거대 광고판이 개설되었다. 야숙자, 활동가, 지식인, 예술가 등 다양하고 작은 집단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모두의 미야시타 공원을 나이키화에서 지키는 회(みんなの宮下公園をナイキ化計画から守る会)>는 이러한 흐름을 막기 위하여 28일에는 장례 퍼레이드를 31일에는 대규모 집회를 계획했다.

그러나 내가 쓰려는 것은 국가와 자본이 결탁해 공공공간에서 대중들을 추방하고 있음을 전달하고 항의하려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이러한 싸움 속에서 태어나는 이질적인 마을의 생성운동이다. 미야시타 마을은 탄생속도가 빠르고 독특한 감각과 활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어느새 다가와 이렇게 속삭인다. "마을에 참여하고 싶지? 그렇다면 네 감각과 생활을 바꿔봐" 따라서 나는 공부하고 글쓰고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편지를 쓰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내 생활반경 및 습관들과 다퉈가면서 점차 미야시타 마을의 전염력에 감염되어 가고 있다.  미야시타 마을은 각자가 지닌 익숙한 삶의 감각에 싸움을 걸고 있다. 이것이 미야시타 공원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지닌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28일 장례 퍼레이드 선전에는 "상복으로 참여하거나 코스프레를 하거나, 악기 연주 등이 있습니다. 자살자 3만 인의 장례식에 제각각 생각을 갖고 참여해 주세요"라고 씌어 있었다. 이것을 힐끗만 보았던 건 내 감각의 실수였다. 28일 장례식 퍼레이드에는 폐품을 이용한 다양한 변신술과 플랜카드, 국자나 냄비 등을 개조한 악기가 출몰했다. 맘에 들었던 것은 흰 천을 뒤집어쓰고 유령처럼 너울너울 춤추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장난치면서 함께 걷는 듯이 보였다. 장례 복장으로 꽃을 들고 미야시타 공원 사진에 검은 띠를 둘러 들기도 했다. 그 숙연한 복장과 얌전한 모습이 양가집 부인을 연상시켰기 때문에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새침한 양가집 부인도 미야시타 공원을 지키는 마을의 일원이랍니다! 한국에서 집회가 있는 날이면 나는 청바지에 운동화 복장을 고수했더랬는데, 미야시타 공원을 지키기 위한 집회에서는 일부러 삐딱구두를 신고 아가씨 복장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더구나 야숙자들의 사진이 아니라 미야시타 공원 사진을 들고 있었다. 추방당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닌 것이다. 흙과 곤충과 벌레와 지나가는 사람과 공기와 세월과 분위기, 그 모든 흐름이 마을을 구성한다. 어떤 공간을 추방하는 것은 마을 전체를 추방하는 것이다.  

나도 나름 준비를 하긴 했다. 하얀 마스크에 테이프로 엑스표를 해서 미야시타 공원의 말 못하는 것들을 표현하자는 게 내 취지였다. 유학생답게 돈 안드는 방식으로! 그런데 막상 기상천외한 장례 행렬과 비교해 보니 영 재미가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돈 주고 산 게 없었다. 종이박스, 쪼가리 천조각 등 버려진 것들로 만들어 낸 기막힌 변신술! 31일 집회의 변신은 더 요란했다. 온 몸을 나뭇가지로 감싼 사람, 종이박스를 몸 전체에 두른 사람, 흰 미니스커트 드레스에 핑크 머리를 한 남자, 온갖 종류의 플랜카드와 깃발, 형형색색의 형광물질, 국자나 판때기로 만든 기상천외한 악기들. 31일 집회는 저녁 6시 반부터 진행되었다. 나는 어두울 테니까 촛불집회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꽤 많은 초와 종이컵을 가져갔다. 그런데 도쿄 한복판인 시부야는 싸이키델릭한 조명으로 충분히 밝았고, 빈 캔에 돌멩이를 넣어 만든 악기를 자루 한가득 들고 와 나눠주는 걸 보자 촛불을 꺼낼 생각이 쑥 들어갔다. 저 깡통을 흔들며 소란을 떨어야 하니까. 사운드 집회는 일본에서 가장 흥미로운 집회형태다. 직접 만든 악기로 시내 한복판에서 소란을 떨고 춤추며 괴상망칙하게 어울리는 라이브 물결. 일본의 사운드는 한국의 촛불이었다. 그리고 미야시타 공원을 위한 집회는 이미 미야시타 마을이었다. 개인의 감각과 소리를 깨뜨리는 불협화음 속에서 공동의 소리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 마을 되기2: 현장감을 유지하라.  
사운드 데모가 끝나고 어두컴컴해진 미야시타 공원에 모였다. 한쪽에서는 밥을 짓고, 새로 쳐진 텐트도 눈에 띄었다. 한편 고토부키나 가마가사키 등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본 각지에서 야숙자나 주민들을 내쫓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미야시타의 싸움이 다른 마을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다른 집회보다 많은 수를 차지했던 야숙자들은 고토부키나 가마가사키에서 온 모양이었다. 미야시타 공원의 개축공사가 개시된다면 아침 8시. 공원에 머무는 것이 가장 힘을 보탤 수 있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야숙에는 자신이 없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집회의 장면들은 마치 꿈처럼 조금씩 실감을 잃었다. 결국 나는 늦잠을 잤고, 4월 1일 행동에 힘을 보태지 못했다. 다행히 4월 1일엔 개축공사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마을의 한 일원이 된다는 것은 그러한 현장감을 어떤 식으로든지 유지하려는 노력일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내 삶의 방식들을 어떤 형태로든 조금씩 변화시키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최근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고 있는 것은 이렇게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나도 미야시타 공원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미야시타 공원은 싸움 속에서 비로소 다양한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마을로 바뀌고 있다. 미야시타 공원에 머무는 사람들이 늘어감에 따라 텐트, 플랜카드, 생활 도구가 늘어나며 점차 알록달록한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또한 다양한 소규모 영화제, 카페, 음악회가 기획되고 있다. 8일에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I.R)" 사람들이 공원 벤치를 만들고 공간을 기획하는 활동이 예정되어 있다. 9일에는 <OurPlanet- TV>의 최근 미야시타 활동 영상과 사토(佐藤零郎) 감독이 찍은 「나가이 청춘 취몽가(長居青春酔夢歌)」가 상영될 예정이다. 이 영화는 2007년 겨울 나가이(長居) 공원 텐트 마을의 추방 속에서 한 젊은이가 그곳 주민들과 연극을 했던 과정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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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활동들이 작은 단체들이나 한두 명의 개인에 의해 기획된다는 것이다. 5일에는 불쑥 미야시타 공원에 가보았다. 비가 온 탓에 '니트는 째즈'라는 음악회 일정이 취소된 데다가 대부분이 시부야 구청 지하도에 사는 야숙자들을 쫓아내는 일을 저지하러 간 탓에, 미야시타 공원은 한산했다. 그럼에도 빵, 초콜릿, 치킨 등 음식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가 권한 초콜릿 맛에 반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4월 중순 쯤에 카페를 하려고 기획중이고 함께 할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교토의 자기 친구들도 부를 생각이라고 했다. 커피를 잘 만들고 노래도 잘하는 재밌는 친구라고 했다. 앞뒤 생각지도 않고 도와주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아... 말하는 순간 소심증이 몰려왔으나 지나쳐 버리는 사람도 잠시 쉬면서 미야시타 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을 만들자는 데 우선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속 생각하게 된다. 나는 과연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또 다른 봄, 또 다른 마을.
미야시타 공원은 아무 때나 가보아도, 여기저기서 음식들이 몰려들고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도 몰려들고 있다. 이렇게 함께 음식이나 영상이나 음악을 나누고 우연히 만나는 순간들이 겹쳐져, 더 많은 사람들을 전염시키고 심지어 나같은 책상머리에 있기 좋아하는 사람까지도 들썩거리게 한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나는 꿈쩍도 하지 않는 내 몸의 완강한 보수성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조금씩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이런 들썩거림은 집회에 참여한 사람뿐 아니라 집회를 본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 저 먼 곳에서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에게 점차 확대되어 가지 않을까. 실제로 여기저기에서 동시행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미야시타 공원­…> 홈페이지에 그 상황이 보고되고 있다. 1일에는 프랑스, 2일에는 오스트레일리아, 4일에는 방콕 등. 한국은 어떨까?   

어쩌면 마을이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유쾌한 싸움이 지닌 전염력 속에서, 익숙한 감각과  이질적인 감각 사이의 갈등 속에서, 늘 태어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마을은 이질감을 느끼고 불협화음을 연주하길 그치는 순간, 정말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마을은 감각이 변화하는 괴롭고도 기쁜 순간들을 늘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미야시타 마을의 이후를 기대하면서, 나도 그 마을이 되고 싶어진다. 익숙한 자연법칙이야 아무래도 좋다. 우리는 또 다른 봄과 또 다른 마을을 맛볼 셈이다. 이 거리의 불협화음 속에서.

2010/04/16 11:04 2010/04/1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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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몬에이드 2010/04/16 15:32

    부디 지켜낼 수 있도록 계속 적인 관심과 운동이 계속 되면 좋겠네요

    요즘 자주 눈에 띄는 집단지성 현상과 비슷하네요
    하나의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되어 점점 다양하고 복잡화된 단계로 발전하면서도
    핵심을 잃지 않고 사람들이 더욱 결집하고 있다는 것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

    • 그린비 2010/04/16 18:17

      작은 움직임들이 전염(&감염)되어 퍼지면서 하나의 큰 물결을 이루는 것 같아요. 전염의 핵심은 유쾌함?! 우리도 이렇게 즐거운 운동(혹은 싸움+ㅅ+)의 물결을 일으켰으면 좋겠다는..^^ㅋ

  2. 낙타 2010/04/16 22:44

    레몬에이드님, 저도 그 물결 중에 한 원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 집단지성이 부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되길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