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러시아 계몽주의의 이상과 환상

최진석 (수유너머 N)

18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데니스 폰비진(Denis Fonvizin, 1745~1792)의 본업은 외교관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반 뇌제 시절 리보니아 전쟁 때 포로로 러시아에 정착한 발틱 연안의 독일계 후손이었다(그의 이름은 ‘von Wiesen’에서 유래했다). 모스크바에서 나고 자랐고, 16세 되던 때부터 문학 번역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 폰비진의 활동기는 대략 예카테리나 2세의 치세기(1762~1796)와 일치한다. 당대의 귀족 자제들이 그러했듯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의 외국어에 능통했고 문학적 관심이 남달랐던 폰비진은 군역에 별 관심을 갖지 못한 채 1762년(예카테리나 2세의 궁정 쿠데타가 일어난 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새 정부의 외무부에 기용된다. 이는 그의 탁월한 외국어 실력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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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폰비진(Denis Fonvizin, 1745~1792)
폰비진이 어떻게 문학적 여정을 밟기 시작했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일찍부터 그는 볼테르와 아베 테라송(Abbe Terrasson) 등 프랑스 계몽주의 문학과 사상에 깊이 경도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빠져들었던 계몽주의 문학은 문학으로서의 장점은 거의 없었고, 계몽된 군주와 귀족들의 이상(理想)을 보여주는 데 급급한 것이었다. 가령 그가 처음으로 번역해 러시아에 소개했던 아베 테라송의 소설 『이집트의 군주 세토스의 일대기, 혹은 영웅의 미덕』은 ‘이상적으로 계몽된 군주’에 대한 찬가에 불과했다. 어쩌면 폰비진 자신이 자신의 문필 활동을 문학적인 것이라기보다 정치적인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본격적으로 문학적 명성을 떨치기까지 전념했던 것은 국가 시책과 사업에 관한 논문들이었기 때문이다. 대개 외무부 근무 시기 번역했거나 작성한 글들의 주제는 국왕의 절대권을 제한하고 귀족들의 참정권을 강화함으로써 러시아를 근대적 국가 형태에 접근시키는 것이었다. 예컨대 1766년 폰비진의 글에는 이런 내용들이 포함된다. 귀족층의 상업 활동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킬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첫째, 귀족은 무조건 자유로워야 하고, 둘째, 제3신분은 노예화될 수 없으며, 셋째, 민중은 자유에 대한 희망을 갖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러시아 계몽주의의 특징인 자유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폰비진의 논문에는 별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다. 귀족 계몽주의자를 자임하는 데 크게 만족해 있던 그에게 농노제의 전반적이고 즉각적인 철폐와 같은 ‘극단적인’ 기획은 포함될 수 없었던 것이다.

국가 관료로 복무해야 하는 자유 계급으로서 봉사 귀족이라는 이상은 표트르 대제 때 형성되었다. 표트르 자신이 군의 충성 서약에서 ‘황제의 이익에 충성’이란 문구를 ‘국가의 이익에 대한 충성’으로 변경시켰던 바, 혈통에 근거한 봉건적 가신 국가를 근대적 행정/관료 국가로 변모시킨 것이 근대 러시아의 태동이다. 다시 말해, 관습과 물리적 폭력성에 의해 유지되던 권력의 지배 형태가 법과 제도라는 형식적 틀에 의해 규범화되었던 게 근대 국가로서의 러시아의 등장이었던 것이다. 계몽주의는 군주가 아닌 국가 자체의 이성성(理性性)을 강조하면서 그 체제 아래 시민들의 자리를 할당하게 된다. 시민들 각자에게 적합한 자리와 역할을 배당하며 그에 따른 의무와 권리 역시 조정해 주었던바, 이와 같은 위계의 사다리는 봉건 시대 이래의 수직적 질서가 탈신화화된 형태로 다시 정립된 것이다. 과거의 신분 관계는 이제 국가에 대한 개인의 의무와 권리라는 관점에서 재정의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가 어느 집안 출신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사회적 신분의 의무는 무엇이냐를 묻는 일이 된다. 새롭게 인식된 신분 관계는 국가의 이성성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시민이 그의 의무를 다할 때, 국가라는 이성적 구성체는 각각의 시민들이 수행하는 역할들을 조정하고 조화시킨다는 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과도 같은 사회의 조화로운 조절 능력에 대한 신념은 계몽의 역사적 정당성을 옹호하였던 칸트를 환호하게 만들었다.

외무부에 근무하며 폰비진이 작업했던 정치적 논문들은 그 본래적 취지에 있어서는 합당하되, 현실적으로 러시아와는 무관한 내용을 다룬 것이었다. 상업 귀족층의 성장은 역사적으로 영국을 제외하면 성공적으로 성취된 사례가 없거니와(프랑스의 귀족들은 혁명으로 몰살당하고 말았으며, 독일의 융커는 아예 반동화한 토지 귀족층이었다), 러시아에 제3신분의 해방이란 명제는 혁명 전 프랑스의 제3신분이 내걸었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글자 그대로 가능성 있어 보이는 요구는 귀족의 자유라는 명제였는데, 예카테리나 2세의 궁정 쿠데타는 귀족층과의 제휴에 의한 것이었기에 1762년 정부 전복이 성공하자마자 과연 귀족의 의무 봉직(25년) 등이 완전히 철폐되었다. 국가에 대한 강제적인 의무가 사라지면서 ‘해방된’ 귀족은 당연히 새 시대의 자유를 대변하는 계급으로 인식되었다. 보다 진보적인 일단의 귀족들은 전제에 대한 부분적인 제한이나 더 나아가 영국식의 입헌군주정이라는 헌법적 국가 정체를 수립하려 했고, 폰비진 역시 나름대로 거기에 동참했다. 외무부를 들락거리며 그가 친하게 지냈던 모임은 니키타 파닌(Nikita Panin)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이었고, 폰비진의 정치적 색조는 파닌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라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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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의 시대에 폰비진은 문학가라기보다는 번역가이자 능력 있는 외교관/정치가에 더 가까웠다. 파닌과 폰비진에게 군주의 전제를 견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유일한 계급은 귀족이며, 그것은 국가에 대한 봉사를 의무로 삼는 귀족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였다. 국가의 합리성을 신봉하던 계몽주의자 폰비진에게 비판의 자유를 제외하곤 귀족에게 허락될 만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18세기 러시아 귀족이 추종하던 예카테리나 2세가 허울뿐인 계몽 군주였듯, 이 시대의 귀족 계몽주의자들 역시 자신들의 출신 배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폰비진 역시 상당한 농노를 소유했던 지주의 한 사람이었으며, 군주정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진 않았고, 프랑스 혁명 직전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로는 반(反)서구적인(즉 ‘개혁에 거리를 두는’) 입장으로 선회해 버린다. 그에 따르면 서구의 농민들에 비해 러시아 농노들은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왜냐면 러시아의 귀족-지주들은 농노들에 대해 마땅히 취해야 할 ‘어버이 같은 마음가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판단은 현실에 대한 인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화에 대한 이상과 소망, 그 황홀감에 다름 아니었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폰비진을 영원히 빛나는 별로 만들어 준 작품은 두 편의 드라마 ― 「여단장」(1770)과 「미성년」(1781)이었다. 이 작품들은 즉각 희곡 문학의 최고봉에 이르렀으며, 19세기에도 내내 고전적인 상연 목록에 오르게 되었다. 아직 낭만주의도, 푸슈킨도 등장하기 전에 세상을 놀라게 했던 작품이라니, 마땅히 러시아 고전주의의 최고 성취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실제로도 시간, 공간, 행위 등의 고전주의 문학의 제반 법칙들이 잘 지켜지고 있으며, 그 주제나 플롯 역시 ‘고전적’인 만큼 몹시 단순하다.

드라마의 무대는 어느 시골 영지이며, 지주인 프로스타코바 부인이 안타고니스트이다. 남편 프로스타코프(Prostakov, ‘단순한’이란 뜻이다)는 부인에게 쥐여 사는 무능력자로 묘사되고, 그들의 아들 미트로판(Mitrofan, ‘미성년’)은 돼지나 좋아하며 세상만사 되는 대로 살아가는 못난 아이다. 그들은 집안에 딸린 하인과 농노들을 있는 대로 착취하며 자기들 배만 불리며 살아가는데, 오래전 사라진 스타로둠(Starodum, ‘오래된 지혜’)의 조카딸 소피아(Sophia, ‘지혜’)를 양녀로 들여 학대하는 재미로 갖고 있다. 프로스타코바의 동생인 스코치닌(Skotinin, ‘가축’)이 소피아를 신붓감으로 점찍고 결혼하려는 찰나, 스타로둠이 큰돈을 벌어 귀향한다는 소문이 들리고, 재물에 욕심이 난 프로스타코바는 자기 아들을 소피아와 맺어 주려고 음모를 꾸민다. 그러던 중 마을에 주둔한 군대의 장교 밀론(Milon, ‘사랑스런’)이 찾아오게 되고, 정직한 관리인 프라브딘(Pravdin, ‘진리’)의 도움으로 이 음모를 막으려 애쓴다. 어떻게든 스타로둠을 구슬려 막대한 지참금을 받아내려던 프로스타코바는 스타로둠의 지혜와 위엄에 찬 설교에 백기를 들고, 정직하고 용감한 관리와 군인에 의해 처벌받는다.

폰비진이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한 의도는 당대 사회에 어떤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려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미덕의 전파’를 위해 작품을 썼노라고 공언했다. 작품의 프로타고니스트들은 고결하고 아름다우며 인격화된 미덕 그 자체를 보여 주었다. 주인공인 스타로둠은 국가에 대한 의무와 농노들에 대한 지주로서의 의무, 그리고 부모자식 간과 부부 간의 의무에 대해 오랫동안 설교를 늘어놓는다. 표트르 시대의 관료인 스타로둠은 이성적이고 정의로운 국가에 대한 믿음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그 믿음은 각자가 자신의 신분에 맞는 의무를 수행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그런 점에서 밀론(군인)과 프라브딘(관리)이 악덕 지주 프로스타코프 집안을 징벌하는 것은 사적인 감정에 의거한 게 아니라, 오직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의무는 교육을 통해 사람들에게 일단 알려져 있으므로, 그 실현으로 나아가는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한 걸음은 용기로 지목된다. 사악한 프로스타코바에게 이리저리 휘둘린 채 갈피를 못 잡는 소피아에게 부족한 것도 용기요, 악행을 목격하고도 결단을 못 내리는 밀론과 프라브딘 등에게 부족한 것도 용기다. 스타로둠의 일갈은 어딘지 칸트의 목소리와 겹쳐져 울리는 것 같다: “네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지녀라!” “계몽을 위해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자유다!”(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바로 이 용기를 갖는 것, 그리하여 현실 속에서 이성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미성년’을 벗어나는 징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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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성년」
「미성년」이 최초로 상연되었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극장들은 연일 만원 사례였고, 관객들의 일부는 스타로둠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외우고 따라하며 팬레터를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가령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풀면 되겠는가,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지혜가 있으면 알려 달라 등등……. 웃지 못할 이야기지만, 작중의 프로타고니스트들에 대한 관객들의 몰입도는 상상 이상이어서 「미성년」이 단지 드라마적 재미에만 호소했던 게 아님이 분명하다. 이상한 사실은 이런 몰입이 19세기에 이르자 관객들에게 ‘고전’ 이상의 감흥을 주진 못했다는 점이다. 스타로둠의 설교는 지나치게 따분했고, 플롯은 단순했으며, 사건 없는 무대 상황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예컨대 벨린스키는 이 작품에 통렬한 비평을 가하며, 「미성년」의 진정한 주인공은 고결하고 아름다운 선인(善人)들이 아니라, 개성 있는 성격을 창조해 낸 악인들이라고 조롱했던 것이다. 불과 반세기 만에 러시아인들이 모두 계몽되었기에 ‘미덕의 전파’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었을까?

좋게 말한다면 권선징악의 전형적인 줄거리를 구현한 것이요, 나쁘게 말하면 작가의 패필(敗筆)이라 할 만한 이런 결말은 계몽주의적 세계관에서 본다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사실 모든 악덕이 (이성적) 국가 권력에 대면하여 즉각적으로 그 힘을 잃고 만다는 설정은 별로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법보다 가까운 게 주먹이라지 않는가?). 차라리 그것은 계몽주의가 희망하였던 조화로운 세계의 구성 원칙에 부응하는, ‘이상적인’ 결말이 아니었을까? 엥겔스는 계몽주의의 사법적 세계관(juridical world view)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이는 정치적 해방이 법과 국가의 제도화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이론으로, 법이라는 외적 현실이 인간 삶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사회를 지배하는 장치(apparatus)로 변모한 것을 뜻한다. 법의 형식적 기능이 삶의 전반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법의 지배가 전적으로 인간 삶을 구속하고 압박한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예컨대 헤겔은 법의 정신이 곧 인간의 내면적 자유를 일깨우고 나아가 역사적 이성의 진보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법의 영역은 자유의 영역이다”(헤겔, 『법철학』). 왜냐하면 법을 통해서만 인간 사회의 자의적인 폭력과 무질서(‘프로스타코프 집안’)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법의 최고권자는 군주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이성이 된다. 권력의 수원지가 군주와 같은 특정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상적이지만, 일상 전체를 공평하고 빠짐없이 법으로 관장한다는 점에서 가장 구체적이다. 바로 그렇기에 프로스타코바의 간청에 대한 프라브딘의 대답은 그 개인의 것이 아닌, 국가와 이성의 목소리인 것이다. “난 의무를 저버릴 수 없소이다.”

국가 이성에 대한 믿음이 강렬하게 남아 있던 시대에 「미성년」은 ‘다가올 전망’으로서 책에서 읽고 밤 새워 토론하던 이상으로서 18세기 러시아인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부르주아지의 승리로 끝난 프랑스 혁명의 귀결과 데카브리스트의 실패를 목격했고, 니콜라이 황제의 ‘몽둥이’를 충분히 맛본 19세기인들에게 계몽주의의 조화로운 이상 세계는 더 이상 고결하지도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이상인 동시에 환상이고, 기대인 동시에 절망이었다. 그렇게 계몽주의의 세계상이 극한에 도달한 지점은 헤겔이 『정신 현상학』에서 지적했던, 이성과 비이성, 순수사유와 퇴폐가 뒤죽박죽으로 얽혀 지양된 순간에 다르지 않았다. 역사의 중요한 한 고비는 분명 지나갔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는 없으며 또 어디로 흐를지도 알려져 있지 않은…….

당연한 말이지만 폰비진의 「미성년」은 아직 그러한 순간을 마주할 수도, 예감할 수도 없었다. 시민적 의무를 수행하는 귀족 계몽주의의 이념이 한낱 수입되고 미숙하게 발아한 개념들임에 유념할 때, 이 작품은 예정조화와 같은 통일되고 안온한 세계관을 지향하고 있었을 뿐, 어떠한 현실적 논리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통해 프로타고니스트들이 한 가족이 되고, 악인은 필경 처벌받고야 만다는 신념은 하나의 완결된 세계상을 구성한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18세기 러시아의 맹목이란, 조화로운 전체에 대한 열망은 그것을 꿈꾸기 시작하자마자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는 데 있다.


2010/04/23 11:45 2010/04/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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