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보다 2년이나 늦은 등장이었지만, 아이폰이 시장에 출시된 후 한국의 IT 업계는 급격한 흔들림을 경험하고 있다. 지난 4월 27일자 『위클리 경향』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 열풍이 거세다. 애플은 인터넷의 미래인 '모바일 웹'의 초반 주도권을 잡았다. IT 코리아의 인터넷 서비스 산업과 IT기기 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의 막강 포털과 휴대전화업계 강자인 삼성의 좋은 시절은 끝나는가…"
- "아이폰 한 방에 'IT 코리아' 휘청" 기사 중

아이폰아이패드로 정신없이 이어지는 애플의 신제품 출시(물론 아이패드는 아직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았지만) 앞에 한국의 특정 산업분야는 미래의 존폐까지 언급해야 할 만큼 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한때 한국 수출산업의 효자 노릇을 톡톡하게 했던, 세계 정상급의 휴대폰 제조업체인 삼성은 2009년을 지나면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플랫폼 전쟁에서 애플-구글-MS의 3각 구도에 밀려 그 존재조차 잘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국내 모바일 산업 환경에서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 왔던 이동통신 업체들은 그 동안 누려왔던 각종 독점적인 정책과 폐쇄성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체 애플의 제품들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길래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실마리를 애플 제국의 황제인 스티브 잡스의 말에서 찾아 볼까 한다. 지난 1월, 아이패드를 처음 선보이는 키노트 현장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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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과 인문학(liberal arts)의 교차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기에 애플이 아이패드를 만들 수 있었다"
 "사용자들을 제품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사용자를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의 사용자들은 새로 출시된 휴대폰을 구입하기 전까지만 고객일 뿐이고 실제로 구입하는 순간 고객에서 제외된다'는 농담(?)과 아이들의 실수로 인해 데이터 통신료를 몇 백만 원씩 내야 했던 사용자들의 상황 등을 생각하며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애플의 기계 하나가 한국의 IT 산업 전반을 왜 이렇게 흔들고 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의 말이 지향하는 제품철학 또는 기업철학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그의 철학이 사용자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고 어떻게 열렬한 지지를 얻어 내고 있는지 또한 어렵지 않게 짚어 낼 수 있다.

출판과는 별 상관도 없는 IT 산업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아이폰의 등장으로 이미 시작된 변화를 언급하기 위해서이다. 출판에는 애플발 변화의 소용돌이가 아직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아이패드가 한국에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패드가 출시되더라도 북스토어(iBooks)가 함께 열릴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이패드가 가져올 대표적인 변화가 신문/잡지/출판의 영역에서 발생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으며 이미 아이패드가 출시된 미국의 상황을 보건대 그 예측이 크게 빗나가지는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이제 그 아이패드로 인해 출판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를 조심스럽게 언급해 볼까 한다. 손으로 직접 아이패드를 만져 보지도 못하고 쓰는 글이라 아이패드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언저리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 정황들을 주로 말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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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디지털 컨텐츠 유통 환경에서, 컨텐츠 소비와 관련된 고객의 UX(사용자경험)를 향상시키기 위해 출판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출판의 현재 상황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유효한 답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출판이 어떻게 생산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플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철저하게 사용자 친화적인 제품의 설계와 디자인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에 열광하는 사용자들을 등에 업고 기존의 질서를 과감하게 깨트린 후 자신들만의 컨텐츠 유통 환경을 구축해서 다른 기업들이 상상하기 힘든 이익률을 가진 시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이팟은 이미 오래 전에 70%의 점유율을 넘어 MP3 플레이어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휴대폰 사업에 뛰어든 지 불과 3년 만에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계들의 뒤에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와 앱스토어라는 든든한 서비스가 자리잡고 있다.
애플이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와 앱스토어를 통해 음악과 모바일 컨텐츠 유통 환경을 어떻게 재편했는지를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유통 관계자들이 어떻게 시장의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었는지를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애플의 폐쇄적인 정책들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기존의 유통 질서가 사용자의 편의를 중심으로 완전하게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전례를 볼 때, 아이패드가 전통적인 인쇄산업(신문/잡지/출판)에 변화를 가져온다면 그것의 중심 역시 철저하게 사용자 친화적인 유통 환경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인쇄매체와 관계된 사용자 친화적인 유통 환경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변화는 확실해 보인다. 첫째, 기존의 미디어를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종이신문이 없는 신문 유통 환경, 종이잡지가 없는 잡지 유통 환경 그리고 종이책이 없는 책 유통 환경. 물론 당장에 닥칠 상황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신문, 잡지, 책이 사람들의 생활에서 차지하던 위상이나 의미는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변할 것이다. 둘째, 지금까지 인쇄매체에 담겨 왔던 컨텐츠 자체의 성질도 크게 바뀔 것이다. 아이패드용으로 서비스 되는 신문과 잡지 어플들에서 사진과 동영상이 작동하는 모습이나 얼마 전 공개된 <Alice for the iPad>라는 어플을 보았다면 금세 이해가 될 것이다. 사용자들이 생활 속에서 아이패드를 즐기는 방식에 맞는 컨텐츠들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Alice for the iPad>

이쯤에서 한국의 전자책, 또는 eBook 시장에 대해 잠시 살펴 보자. 지금까지 출시된 전자책 단말기만 해도 6종에 이르고 있으며, 기존의 서점들뿐만 아니라 KT, 아이리버, 조선일보까지 컨텐츠 유통에 가세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0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전자책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전자책이 이슈화되는 어떤 자리를 가더라도 '종이책 없는 책(출판)'이 가져올 변화들에 대한 이야기들만 있을 뿐 사용자들의 생활 방식에 맞도록 출판 컨텐츠를 재구성하고 재창조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여전히 생산자 중심의 고민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모두들 '풍부한 컨텐츠의 확보가 관건'이라고 외치지만 정작 그 컨텐츠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선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처럼 종이책에 있는 컨텐츠를 '변환'해서 단순히 디지털화 된 파일의 형태로 만드는 것을 전자책 또는 디지털 출판이라고 부른다면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질문들에도 쉽게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전자책의 적절한 가격은 얼마인가?"
"전자책의 가격을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선 전자책의 시장 규모가 종이책에 비해서 어느 정도로 커져야 하는가?"
"전자책 단말기를 사는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인가? 디지털 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인가?"
"사람들이 종이책도 잘 안 읽는데 전자책이라고 해서 읽을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선 출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어느 출판 스터디 모임의 강연에서 그린비의 유재건 대표께서 말씀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출판인들의 상상력을 (단말기에 기반한) 전자책에 가둬버리는 'Digital Publishing'이 아니라 출판의 능력을 모바일과 웹의 세계로 넓게 확장시킬 수 있는 'New Publishing'인 것이다. 이 'New Publishing' 개념에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그것은 철저하게 사용자 중심의 개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그린비가 개발한 아이폰용 어플 <호모 쿵푸스>는 새로운 출판에 대한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호모 쿵푸스>라는 어플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한 것이라곤 아이폰이라는 장비에서 잘 보여질 수 있도록 동작과 화면을 재구성한 것뿐이다. 오히려 어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컨텐츠들은 그린비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미 공개된 것들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웹에 적합한 방식으로 인문학 컨텐츠를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는 뜻이다. 완성도나 대중의 주목도로만 보자면 크게 뛰어날 것도 없는 어플이 잠깐이나마 앱스토어에서 무료 어플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하고 1주일만에 6만 건 가까이 다운로드가 된 것도, 어플의 기획을 잘 해서라기보다는 그린비가 해 왔던 그런 일상적인 노력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그린비에게 홈페이지나 블로그, 즉 웹은 책을 알리기 위한 홍보 채널이 아니라 출판 활동을 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역시 전자책을 판매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이 아니라 그린비의 출판 활동을 확장할 수 있는 또하나의 공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우리 생산자들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공간이다. 이제 출판사는 책이라는 신성한 물건에서 생산자로서 누려왔던 영광의 지위를 내려 놓아야 한다. 모든 것이 생산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과거의 출판 활동을 해체하고 새로운 출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아마 아이패드가 그 변화의 첫 단추에 해당하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신간을 기획할 때만 독자의 니즈를 찾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출판 행위 자체가 사용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그래서 출판에서도 사용자의 시대가 열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용자 중심의 생산-유통 플랫폼이 등장해야 하고 사용자를 열광하게 만들 수 있는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 만약 여전히 생산자 중심의 출판만을 고집한다면, 지금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만드는 바로 그 첨단기술들이 우리를 역사의 뒷길로 서서히 안내할 것이다.

- 마케팅부장 이경훈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내는 『기획회의』 271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2010/05/14 11:28 2010/05/1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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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출판의 미래가치를 바꾸다! 출판업계의 대비 전략은?

    Tracked from Social Media & Food 2010/06/25 16:46  삭제

    현재 애플의 무브먼트는 정말 놀랍습니다. 아이팟으로 mp3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더니 잠시 후 아이폰으로 휴대폰 시장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었으며. 이제는 아이패드로 타블렛PC 시장의 대중화까지 노리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패드의 경우는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그동안 경쟁이 크지 않던 시장이라 더욱 기대가 됩니다. 애플이 과연 타블렛PC 시장마져도 대중화 시킬수 있을지 말이죠. (현재 출시 두 달만에 200만대 판매 달성과 실제 사용해 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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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무 2010/05/14 15:55

    이 부장님, 고민이 남다르시겠습니다.
    문외한이지만 트렌드에 대한 인식과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큰 틀을 벌써 그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던지는 의미가 남다른 이유인가 봅니다.
    머리에서 쥐가 나거나 머리카락이 빠지지는 마시기 바랍니다.ㅋ

    • 이경훈 2010/05/14 16:47

      나무님 안녕하세요.
      머리에 쥐가 나거나 머리카락이 빠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뭐든 재미나게 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ㅋㅋ
      생존의 문제가 걸려 어깨가 묵직할수록 발걸음은 더 사뿐하게 움직이려구요. 특별히 고민이 남다르다기보다는, 그렇게 가볍고 날렵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

  2. 새하늘 2010/05/29 02:30

    좋은글 잘봤습니다.

    조만간 그린비 놀러 함 가겠습니다.

    • 그린비 2010/05/31 10:57

      감사합니다. ^^
      웰컴 투 그린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