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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우리팀 팀원의 작품(?)입니다. ^^* (이미지출처는 요기)
대개의 상품은 구매와 동시에 소비가 이루어집니다. 거꾸로 말하면 필요가 발생할 때 구매 행위가 일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필요가 당장의 의식주에 관계된 것일 필요는 없겠죠. 어느날 갑자기 사진이 찍고 싶어서 수백만 원짜리 카메라와 렌즈를 종합선물세트로 사(지르)거나,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제대로 느끼고 싶어서 이베이에서 직접 주문한(지른) 부품들로 자전거를 손수 조립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라 보신 적이, 혹시 있으신가요? 없으시다구요. 에... 그렇다면 뭐, 다행입니다만. ㅡㅡ; 어쨌든 그게 생활의 필수적 요소이건 심리적 뽐뿌질의 요소이건 간에 대부분의 상품은 필요가 느껴질 때 구매를 하고 또 구매 행위 이후에 곧바로 소비에 돌입(?)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언젠가는 필요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미리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만약 그러한 예측구매(?)를 자주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홈쇼핑 중독을 의심해 보는 것이... ㅡㅡ;;

그런데 책은 말이죠. 이 책이란 상품은 말이죠. 그러한 구매-소비 패턴에서 어긋나는 경우들이 아주 많습니다. 앞서 말한 예측구매가 일상적으로 허다하게 발생하는 상품이죠. 혹시 자신이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하시는 분 계신가요?(그린비 블로그 오실 정도 되면 아마 많으실 거라... ^^;) 만약 계시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책장을 한번 둘러 보세요.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들, 많지 않으신가요? 저도 집에 가면 그런 책들이 무수하게 널브러져(-_-) 있습니다. 매달 사는(買) 책들의 한 절반 정도나 읽을까 싶습니다. 아, 우린 대체 왜 이렇게 사는(生) 걸까요. ㅠ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게 또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구요. 음음... 책이란 물건이 원래 좀 그런 측면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책은 상품을 온전히 소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새로 나온 최첨단 전자제품이 아무리 복잡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일단 손에 쥐고 나면 금방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사용설명서 잠깐 읽어 보고 이것저것 실제로 사용하다 보면 복잡한 사용법들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죠. 생필품들은 뭐 말할 것도 없구요. 사자마자 먹거나 입거나, 금방 사용해 버리죠. 그런데 책은,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류의 책만 하더라도 단행본의 평균 두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려야 다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이 좀 어려운 인문학 책들이나 전문서들은 그 몇 배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죠. 이게 참 괴로운 사건입니다. 최고급 SLR 카메라를 새로 사서, 18배 광학 줌과 초당 30컷 연사라는 최첨단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똑딱이처럼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그 카메라에 대한 구매 만족도가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책의 경우에는 다르죠. 900페이지짜리 중후장대한 명작을 사서 고작 머리말만 읽은 상태라면, 상품의 소비로 인한 구매 만족도가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빈자리를 상품의 '소유'로 인한 구매 만족도가 채워 주긴 하지만요. 이렇듯 책이라는 상품이 구매와 소비가 긴밀하게 이어지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책장에는 언제나 그렇게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왠지 그냥 게으른 자의 변명같기도 합니다만... 넘어가겠습니다. ~.~

읽지 않고 사기만 하는 자의 변명을 시작한 김에 조금만 더 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은, 상품을 소비하기 위한 심리적 부담감이 아주 큰 상품입니다. 당연히 내가 간절하게 원해서 구매한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선 뭔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세상의 모든 책들이 한 번 잡으면 끝을 볼 때까지 놓을 수 없는 무협지와 만화책인 것은 아니니까요(아, 무협지와 만화를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좋아합니다. ㅡㅡ;). 그린비가 인문학 출판사니까 인문학 책을 가지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스피노자의 말에 영혼이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치겠습니다. 그래서 알렉상드르 마트롱(Alexandre Matheron)이 쓴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라는 책을 샀습니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너무 보고 싶어서 산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 책을 읽기 위해선 꽤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왠지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읽어야 할 것 같고, 의관을 정제한 채 바른 자세로 읽어야 할 것 같고, 어쩌면 목욕재계도 해야할 것 같고... <무한도전>을 보거나 <두시탈출 컬투쇼>를 들으면서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똥 누면서 보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느낌, 졸릴 때 심심풀이로 읽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느낌들이 엄습해 옵니다. 제가 너무 전문적인 책으로 예를 들긴 했습니다만, 사회적인 통념상 아직까지는 '책=공부'라는 인식이 많이 남아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책을 자주 안 읽으시는 분들께 그런 잠재의식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그래서 우리의 책장에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쌓여 갑니다. ㅡㅡ;

'아직' 읽지 않은 자의 변명을 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네요. 또 하나 해 보겠습니다. 책은 가장 대표적인 '문화상품'입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건 전통적인 문화상품뿐만 아니라 최근에 급성장하고 있는 여가생활과 관련된 상품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DSLR 카메라가 없다고 해서, 빵빵하게 방풍방수가 되는 등산장비들이 없다고 해서, 7Kg짜리 유려한 로드 사이클이 없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특별한 애로사항이 생기진 않습니다. 있음 좋고 없음 그만인 것이죠. 그런데 책은 그 중에서도 좀 독특하게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인정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는 상품입니다. 물론 최첨단 카메라나 자전거 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주변의 인정(부러움?)을 받긴 합니다만, 너무 소유만 하고 있으면 오히려 핀잔을 듣기도 하죠. '넌 조립하는 게 좋아서 자전거 산 거지?' '그 비싼 등산복은 잘 때 입냐?' 등등. 하지만 책은 좀 다릅니다. 재작년에 사 놓은 1,028쪽 짜리 『The Left』를 아직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 두고만 있다고 해서 '읽지도 않을 책을 왜 샀냐?'라고 타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없겠...죠?) 단위면적당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뽀대나게 실내를 장식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책이다, 라는 우스개(?)도 있듯이, 책이란 그저 책장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책을 읽은 것과 거의 대등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대체 이게 왜 장점...ㅡㅡ;)이 있습니다. 많이들 느껴 보셨죠? 이렇게 해서 우리의 책장에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또 늘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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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의 아름다운(?) 존재감.

'아직'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아직' 읽지 않은 자의 변명은 또 있습니다. 우리는(대체 누구? ㅡㅡ;) 아예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따위는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책을 사제끼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때 그 책을 안 읽을 가능성은, 당연히 아주 높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책들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몇 쪽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또는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쉬워서... 등등. 이렇게 '아마도' 읽지 않게 될 책들이 '아직' 읽지 않은 책들과 함께 나란히 쌓여 갑니다.

'아직' 읽지 않은 자의 변명은 이것으로 끝낼까 합니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갈수록 늘어 감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습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무수한 책들 중에서 '아직' 읽지 않은 책들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고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들을 찾아서 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야 '언젠가' 읽으면 될 일이니까요. 결정적인 것은, 우리가 그 많은 책들을 어차피 다 읽진 못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 미안해요. 그동안 책장을 채워 줘서 고마웠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이상,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주체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아직' 읽지 않은 자의 누추한 변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

- 마케팅팀 이경훈


2010/05/06 10:21 2010/05/0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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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책은 최고의 장식품

    Tracked from el noveno 2010/05/06 23:06  삭제

    이 말을 트위터에서 처음 봤었는데, 누가 하신 말인지 까먹었다. 오늘 ‘홍대의 작은 용산’ 두리반에서 책 7권을 샀다. 그린비출판사가 자신들이 출판한 책들을 두리반에 기증해서, 정가보다 40% 싸게 판매하고 있다. 판매 수익은 두리반의 농성자금으로 쓰인다. 싸게 판다니 일단 지르고 보자는 마음으로 책 7권을 10만원에 샀다. 나는 그린비출판사의 책들을 좋아한다. 사려고 점 찍어두었지만 너무 비싸 사지 못한 책들이 많았는데, 이...

  2. Subject: 갖고 있지만 읽지 않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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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ubject: kz의 생각

    Tracked from keizie's me2DAY 2010/06/13 14:50  삭제

    “'아직'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변명” 요약하면 1) 기본기능 소비 즉 읽기에 시간이 걸린다. 2) 읽으려면 시간과 장소와 자세에 격식을 갖추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다. 3) 소비하지 않고 장식효과만으로도 제 값을 하는 편이다. 4) 읽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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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몬에이드 2010/05/07 10:16

    와아... 책장 정말 이쁘군요
    저도 저렇게 하고 싶긴한데...

    예전에는 다 읽지 못해도 사고사고 또 샀는데
    결혼하고 요즘은 이전만큼은 살 수가 없어졌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즘에 사는 책도 다 읽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참 아이러니 하죠? ^^

    • 그린비 2010/05/07 13:22

      저도 그래욤. ^^;;
      그래도 안 사는 것보다는 일단 사서 책장에 꽂아 두는 게 좋고,
      하지만 장식품으로만 두기에는 또 아깝고,
      고런 게 책의 묘미죠.ㅎㅎ

  2. 섬연라라 2010/05/10 15:32

    지난번 원룸에선 냉장고를 비우고 책을 넣어야할 정도로 공간이 좁아서 불만이었는데...
    이사한 뒤 커다란 책장 네개를 장만했는데도 책 놓을 자리가 모자라더라고요!
    그래도 전 여전히 '언젠가 읽을 책'들을 사고 있습니다.
    읽지 않은 책들에 둘러쌓여 있으면 왠지 곳간을 그득히 채운 것처럼 든든하거든요.

    • 그린비 2010/05/10 16:27

      헉..냉장고를 비우고 책을!!!! 책이 마음의 '양식'이긴 하죠..후후^^;;
      커다란 책장 네개 부럽습니당~

  3. 홍가이버 2010/05/12 08:40

    너의 죄(?)를 사하노라 같은 면제부를 받은거 같아 웬지 기쁘군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참 책장이 너무 이쁜데요. ^^

    • 그린비 2010/05/12 10:14

      죄가 아니라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ㅡ^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