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부모님께서 ‘결혼’ 얘기를 자주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하죠. 부모님은 단순히 저의 변덕(!)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왜 결혼하기 싫을까, 여기부터 고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기사를 찾으면서 제 스스로가 가족에 대한 성 역할에 너무 얽매여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참 놀랐습니다. ‘여자는 집에서 이렇게 해야 함’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무작정 하기 싫다고 도망친 거죠.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다른 사람도 싫어할 수 있다는 것, 너무 익숙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제가 이어받기 싫었던 셈이죠.

가족을 위해서라면 끝까지 노력하고 자신의 욕구를 단념하여도 가시적 형태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욕구를 따르려 해도 가족의 질서를 파괴할 용기는 없다. 그보다 욕구를 단념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서 자신의 감정,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207쪽)

늘 어머니가 해주는 밥과 집안일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순간, 제가 할 것이 두려워(라고 쓰고 하기 싫다고 읽습니다) 회피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제가 봐온 아버지의 역할은 일을 하고 생활비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가정경제를 총괄하셨기 때문에 나머지 가족들은 늘 아버지에게 돈을 타서 썼죠. 돈이 필요하면 아버지에게 상담(?)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으니까요. 지금 저는 돈을 벌고 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공간적으로도 독립을 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제가 독립을 한다면 ‘결혼’의 형태이길 바라시더군요. 

결혼이 아닌 독립은 결혼과 뭐가 다른가? 하고 궁금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독립한 사람들도 많을테구요.) 결혼은 아무래도 출산과 육아의 의무가 따라오기 때문에 그냥 혼자 사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에는 남성에게 결혼은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하지만, 여성에게는 ‘다시 태어나기’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남성이 결혼했다고 해서 직장이나 직업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여성은 배우자에 따라 인생의 코스가 크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결혼에 저항하는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원치 않는 인생의 코스 변화를 겪고 싶지 않은 셈이죠. 큰 코스 변화는 역시 출산이 아닐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터에서 아직 결혼과 임신의 제약이 존재한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종종 저출산이 국가의 위기라며, 국가 정책으로도 출산을 장려하는 기사들을 보곤 합니다. 대부분 국가의 노동력(24~54세) 감소가 경제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 말합니다. 요즘은 20대부터 노후 설계를 준비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아직 공감하기 어렵지만 앞으로 30년 후 저 역시 국가의 노동력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출산과 육아의 장벽은 높아 보입니다. 제 주변에서 결혼 후 육아로 인해 휴직을 하거나 퇴직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몸이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기도 하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그만두기도 하고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요. 공통적으로 들었던 얘기는 “참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그만큼 시간도 많이 뺏기게 되기 때문이죠. 자신보다, 아이에게 쏟아야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니 일단 겁부터 나더군요. 


육아를 잘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은 없지만, 출산 후 일정 기간의 공백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저는 지금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데, 아이를 낳으려면 고양이를 내보내라는 어머니의 말씀도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고양이의 털은 소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해 수년간 함께 산 고양이를 내보내는 것은 저에게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미래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 저이기에, 결혼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을까하는 고민을 시작한 후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모델을 떠올려봤죠. 일단 저 혼자 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인연이 닿는 고양이들이 있다면 가족이 더 늘어날 수도 있으니 넓었으면 좋겠네요. 세련되고 예쁜 건물보다는 고양이들이 벽을 긁어도 되는 자유로운 곳을 떠올려봅니다. 툇마루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과 한켠에 졸고 있는 고양이들을 상상하는 것 이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군요. ^^; 

저는 집안일 보다는 회사에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하기 싫고 잘 못하는 집안일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렵게만 생각하던 ‘결혼’이 간단하게 풀릴 것 같습니다. 저의 행복과 욕망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에서 실현하며 사는 것, 지금부터 제가 마음에 품고 노력할 가족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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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마조&새디] 아내이자 가장인 새디와 남편이자 주부인 마조가 제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

- 웹기획팀 이민정

2010/04/28 17:41 2010/04/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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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흑곰 2010/04/29 02:51

    뭐 평생 다른사람들의 이런저런말 신경 쓰지않고 남편 먹여살리면서 불만없이 남편과 잘 산다면

    남자가 꼭 벌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힘들어도 기댈데 없이 혼자서 번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결혼안한 남성으로서 제 생각은 여친이 남자만큼 잘 벌고 내자신이 집안 살림하는거가

    괜찮다면 꼭 남성 여성 가릴거 없이 누가 벌든 두 사람이 열심히 살아가는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민정 2010/04/29 09:56

      네, 원하는대로 사는 것도,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래도 노력해보려구요!
      흑곰님 말씀 감사합니다. ^^*

    • dbsdk 2010/04/30 06:01

      어쩌다보니 오늘은 블팅을 하게되는군요.어쩐지 댓글은 안쓰고 사는데..여기글..넘 심정적으로 동감이가서요.제가 지금.육아와 여자로서의 삶과의 둘중하나 포기해야하는 시기여서 거의 일 년째 전업주부도 아닌 엄마도 아닌 여자도 아닌 형태로 잉여인간처럼 살고있어요.아이하나 데리고 여자가 살려면 꽤..있는 사람아니고는 여자로살기힘들다는..너무나 괴로워 죽을지경이라는..이 개념때문에 곤란??!!ㅎㅎ뭐라 표현못할 삶을 살고있어요.나쁜엄마가되어야..같이 공존이 가능한 삶을 이어갈 수있다는..그치만 전혀 행복하지않아요.죄책감이 억누르기 때문이죠.어짜피 아이에게 반쪽의 삶을 줄수밖에없으니 최선을 다하면 될거라 생각했는데 주변인이 많이 돕지않으면 저같이 친정없는 사람들은 괴로운일이된다는..믿고 아이를 맡길곳이 없거든요.괜히 썼다싶어지네요..제자신도 요점을 모르겠네요.결국 육아는 엄마혼자 몫이 절대 아님을 남자들도 군대가서 특훈 좀 받아오심 좋을듯..

    • 민정 2010/04/30 10:34

      육아는 절대 여성 혼자 몫이 아닌데도, 아직 많은 여성들의 의무가 되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여자와 엄마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서는 것이 두렵습니다.
      책을 보니 너무 잘 키울 필요 없다고, 대충 키워도 된다고 나와서 조금은 용기를 얻었어요. ^^;;

  2. 무량수 2010/04/29 11:14

    꽤 어려운 고민에 빠지셨군요.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는 고민이긴 하지만...

    아직 한국이란 사회가 여성들의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구요. 특히 육아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너무나 답답한 현실이구요.

    어른들의 남자에게 바라는 사회적 통념이란 것도 있구요. 만화처럼 사는 것도 좋지만 저렇게 있으면, 사람들은 으례껏 한심한 놈으로 결정내리지요.

    주변의 시선이란 것을 신경 안쓴다고 해도, 자꾸 주변에서 압박을 하면 남자들은 그에 대한 부담을 느낄테구요. 그러면 " 자신이 못나서 집에서 살림을 하는 것인가? " 라는 의문도 가지게 되는 일로 이어지지요. 그래서 아직은 남자가 집에서 살림을 한다고 하면, TV에 나올 만큼 신기한 사람들로 비춰지고 있답니다.

    뭐니뭐니해도 여자가 사회생활하겠다고 마음 먹는 것보다, 남자가 집에서 살림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더 어려운 현실이거든요.

    글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

    • 그린비 2010/04/29 13:59

      흠..그렇네요. 남자가 집에서 살림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게 우리네 현실이죠. 그렇지 않다면 고민할 이유도 없어지는 건데 말예요.(정말?^^;)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3. 코마개 2010/04/29 14:11

    출산을 안하고, 대한민국 평균을 훨씬 넘어서는 자유분방함과 쿨함과 개인주의 성향을 자랑하는 저희 가족(그래봐야 달랑 둘이지만) 이지만...

    아이의 있고 없고와 상관없이 한국에서의 결혼은 여성에게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 민정 2010/04/29 14:41

      역시 결혼은 어려운 문제군요. ㅠㅠ
      최근에 결혼한 지인이 집안일보다는 어르신들에 대한 부분이 더 어렵다고 하던데, 아직 저는 엄두가 안난답니다.
      한국에서의 결혼이 여성에게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는 말씀이 가슴을 확 후벼파네요. 흑흑.

  4. 이반 2010/04/29 14:29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 저는 이 책 제목을 신문에서 본 순간부터. 우리가 알던 가족이 아니라 우리가 믿던 가족의 종말이라고 바꾸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가족의 표상, 관계, 감성, 의무들. 이래야 가족이지 라는 이미지와 주입 된 생각들이 '변형 된 다른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민정 2010/04/29 14:45

      우왕, 이반님 너무 예리하십니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족의 표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만한 책이지요.
      '가족의 의무'로 참고만 살아야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습니다.
      저의 이런 탈주가 가족들에게는 참 무책임하고 이기적으로 보인다는 얘기를 들어서, 씁쓸하더군요.

  5. e비즈북스 2010/04/30 10:16

    출산은 이제 일종의 '사치'가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이'는 경제 계급을 구분짓는 기준이 될지도 몰라요.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건 그렇고, 성게 씨가 뭐하고 사나 했더니 곰이 되었군요. 그렇군요...

    • 민정 2010/04/30 10:40

      아이를 낳으면 가정경제에 큰 영향이 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아이가 셋 이상이면 부자아닌가, 하는 말에 뼈가 있는듯 합니다.

      저도 성게군 팬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보게되서 무척 반가웠지요.
      콧수염까지 기른 곰이 되었을줄은...^^;

  6. 비밀방문자 2010/09/06 17:50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10/09/07 11:35

      저도(민정) 마조와 새디 팬입니다. 아하하~
      메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