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 달에 한 번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에서 전하는 <인문학 해외 통신> 칼럼의 라틴아메리카 편으로, 곧 출간 예정인 월터 미뇰로의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한국어판 서문입니다. 이번 달 말에는 책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한국어판 서문

번역 김은중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아니발 키하노(Anibal Quijano)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처음으로 식민성(coloniality) 개념을 소개한 이후 이 개념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미셸 푸코가 제시한 삶-정치(biopolitics) 개념의 확산 속도만큼 빠른 것은 아니었다.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이 두 개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차이는 지식의 식민성(coloniality of knowledge)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예증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비록 푸코가 제국주의를 옹호한 지식인이나 활동가는 아니었지만, ‘삶-정치’는 제국주의 서구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개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제국성이란 경제정책이나 국가정책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 세계를 통제하는 것이다. 제국성은 좋은 것, 나쁜 것, 추한 것을 모두 포괄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으로 등장한 맑스주의가 자본주의와 나란히 전 세계로 확장된 것도 제국성의 본산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식민성은 제국주의적 지배와 구상의 외부(exteriority)에서 만들어진 개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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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미뇰로,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5월 24일 출간 예정)
외부는 근대성의 ‘바깥’에, 혹은 자본주의 경제의 전 지구적 확장의 ‘바깥’에 위치한 장소가 아니다. 외부는 내부(interiority)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일 뿐이다. 여기서 내부는 서구 문명을 가리킨다. 휴머니즘과 야만이 서구에서 만들어진 두 개의 개념인 것처럼(다시 말해 서구적 상상력의 바깥 세계에는 야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서구 문명들이 식민지의 권력과 영토 그리고 주민들을 장악했던 엘리트들이 상상하고 만들어 냈던 세계와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는 담론과 지식을 통제하는 사람들이 내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내부에서 만들어 낸 바깥이다.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유럽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서구 문명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을 뿐만 아니라(즉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폐허로부터 만들어진 르네상스라는 개념 자체가 르네상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서구 문명을 발명해 내려는 의도였다) 차이도 만들어 왔다. 여기서의 차이는 ‘식민적 차이’(colonial difference)를 뜻하는 것으로, 유럽 내부에서는 유대인에게 주어진 차이(내적 식민적 차이)며, 유럽 바깥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의 흑인에게 주어진 차이(외적 식민적 차이)다. 또한 오스만터키와 오늘날의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제국적 차이’(imperial difference)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16~18세기까지 (정확히 말하면 무굴 제국이 영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18세기 말까지) 제국적 차이로 인식되었던 동남아시아(인도)는 급작스러운 변화를 경험하면서 식민적 차이로 전락했다. 이러한 전 지구적 차원의 차이의 논리가 적용되는 곳이 바로 서구 문명이 비서구적 지식을 통제하고 제멋대로 분류하며 등급을 매기는 외부다.

이러한 언급을 하는 이유는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에서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라틴아메리카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지금의 라틴아메리카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콜럼버스가 카리브 해를 구성하는 어떤 섬, 추정하건대 지금의 아이티와 산토도밍고에 도착했을 때 아메리카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훨씬 뒤에 라틴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된 실체 또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메리카는 유럽인의 의식으로부터 만들어졌고 라틴아메리카는 프랑스인과 그들을 추종하는 남아메리카의 크리올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등장은 1,500년부터 시작된 근대/식민 사회 조직과 세계 질서의 관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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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지도와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의 세계지도

16세기에 서구 제국(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아시아 지역은 사라고사 조약에 묶여 있었다. 1529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태평양의 점령 지역을 평화적으로 분할하기 위해 협정을 맺었는데, 이것이 사라고사 조약이었다. (1594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서양에서 지배권을 분할하기 위해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경계선을 그었듯이) 태평양 지역에서는 사라고사 조약을 맺어 경계선을 그었다. 이 분할선은 북극부터 시작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남극까지 이르렀다. 그 결과 몰루카 제도는 포르투갈이 차지했고 필리핀은 스페인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16세기부터 유럽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아시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초 무렵에 테오도르 드 브리(Theodore de Bry)가 그린 동판화와 석판화에 나타난 동인도(서인도는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이전의 이름이었으며 동인도는 서인도와 짝을 맞춰 붙인 이름)의 모습은 유럽이 아시아를 인식적으로 어떻게 전유했는지 보여 주는 믿을 만한 증거물이다.(드 브리가 그린 동인도의 모습 >>) 나는 이 책의 1장에서 또 다른 증거물로 드 브리보다 더 앞서 서구 기독교인들이 그린 T/O 지도(O 안의 T 지도)를 언급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1582년경에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가 명나라의 지식인들에게 보여 주었던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의 세계지도(1570년)의 기본 구조가 O 안의 T 지도와 같다는 사실이다. 오르텔리우스의 지도에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오른쪽 끝 위쪽에 위치한 것을 보고 놀라는 중국의 지식인들을 본 마테오 리치가 지도를 수정해서 태평양을 중앙에 놓고 아메리카를 왼쪽에, 아시아를 오른쪽에 배치했다. 오늘날까지 세계지도에서 유지되고 있는 이러한 배치는 지도의 중앙에 중국을 위치시키고 유럽을 오른쪽 끝에 위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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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 <곤여만국전도>

알려진 바처럼, 무역선을 앞세운 네덜란드가 태평양의 섬들을, 그리고 영국이 지금의 남아시아를 침략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였다. 그러나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반이었다. 그리고 아편전쟁을 빌미로 영국과 미국이 중국에 간섭하기 시작한 것은 1848년이었다. 왕국 그리고/혹은 국민국가의 제국주의적 이해의 각축장이었던 유럽의 역사와는 무관한 것처럼 서술되는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식민성과 연관되고 식민성을 구성하는 매듭이다. 스페인과 영국, 네덜란드와 영국의 분쟁은 식민성(약탈, 점유, 착취)을 지속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근대성(복음화, 악마로부터의 구원, 문명화, 야만으로부터의 구원)으로 치장한 식민성의 논리가 생산하는 과실을 분배하기 위한 것이다. 16세기에 시작된 이래로 모습을 바꾸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전 지구적 식민성의 논리에서 볼 때 한국과 남아메리카는 유사한 입장에 놓여 있다.

1868년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1500년에 시작된 세계질서에서 제국적 차이가 변화하는 두 번째 계기가 되었다. 표트르 대제와 그 뒤를 이은 예카테리나 여제는 대략 1500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차르가 지배하던 러시아를 제국으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16세기부터 슬라브 민족의 지배자인 차르의 영토를 침략했던 유럽과 제국적 차이를 협상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러시아가 유럽의 식민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주변부가 될 충분한 이유가 되었던 것은 종교, 언어, 민족의 차이였다. 사실상 러시아를 식민지로 만들려는 나폴레옹의 시도는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서양의 지배와 통제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변화를 통해 제국적 차이를 협상했던 메이지 유신은 러시아의 시도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일본은 기독교 서구에 한 번도 식민지가 된 적이 없었다). 사실상 러시아와 일본의 경우가 보여 주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그랬다고 하더라도) ‘서구화’가 아니라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를 지배하기 위한 분쟁에 참여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이었다. 오늘날의 협상은 그 당시보다 훨씬 불투명해졌지만 그 당시의 상황에서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탈서구화의 첫번째 행보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탈서구화 기획에는 러시아와 일본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고, 최근에는 중국·일본·한국의 3자 간 협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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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만 포마, <교황의 세계>(Pontifical Mundo) _ 『새로운 연대기와 좋은 정부』에 포함된 두 개의 ‘지도’ 중의 하나. 과만 포마는 두 지도에서, O 안의 T 지도와 오르텔리우스의 지도에 나타나는 지리학과 인식론의 공모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공간적 개념화와 인식론을 다른 방식으로 연관시킴으로써 경계 사유의 확실한 예증을 보여 준 것이다. 그가 보여 준 경계 사유는 어쩔 수 없는 식민지 하위주체의 입장, 그리고 탈식민적인 인식적·정치적 프로젝트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의 양면을 드러낸다.
내가 이런 역사를 언급하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혹은 간단하게 식민성)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의 도식은 다음과 같다. 1500년부터 2000년까지(소련의 붕괴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의 붕괴가 발생한 10년까지 포함해서)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즉 경제, 국제관계, 지식과 주체성, 젠더와 성의 통제)가 구축되고 변화되었지만 여전히 서구 근대 제국주의 국가(스페인과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그리고 맨 뒤에 이탈리아)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에는 기독교 복음화를, 그 다음에는 세속적 문명화 임무를,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근대화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즉 민영화, ‘자유무역’을 앞세운 민주주의 이름으로 합법적으로 진행하는 국제적 약탈)를 연속적인 세계경영 구상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2000년부터 변화가 목격되었고 9·11 사건을 분기점으로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의 통제력이 서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키쇼어 마흐부바니(Kishore Mahbubani)가 지적하는 것처럼 전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이 살고 있는 지역 — 중국, 일본, 싱가폴,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중동의 이슬람 주민들까지 포함되는 — 에서 진행되고 있는 탈서구화 기획은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를 둘러싸고 새로운 세계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다. 요약하자면 세계는 자유주의자들과 맑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맑스의 유산이자 막스 베버의 유산)로 명명한 헤게모니 경제에 의해 어느 때보다도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쟁은 국제관계의 통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중국은 경제적 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의 국제회의에서 유럽연합의 지지를 등에 업고 워싱턴으로부터 하달된 지시를 따를 의향이 없음을 보여 주었다. 국제관계를 둘러싼 분쟁은 주체성과 지식의 통제를 둘러싼 분쟁으로 확산된다. 즉 탈서구화의 전제는 18세기부터 피부색에 의해 인종을 차별하고 유색인종을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서구 인종주의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인권’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가세한다. 즉 탈서구화 기획에는 인권 옹호를 빙자한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들(독일, 영국, 프랑스)의 이중 플레이를 드러내는 논쟁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최근의 선택과 중국, 일본, 한국 간의 협정은 아메리카의 남미연합과 동일한 상황이지만, 남미연합의 경우에 브라질과 베네수엘라가 워싱턴의 요구를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최근에 힐러리 클린턴이 남미를 방문한 것은 징후적이다. 한편으로 미국은 상실한 지반을 회복할 필요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시아에서처럼 남미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다른 방향으로 불고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라틴아메리카의 탈서구화 경향은 탈식민적 기획과 병행한다. 이런 맥락에서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을 읽으면서 텍스트가 말하는 바가 아니라 이 책이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염두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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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hore Mahbubani, The New Asian Hemisphere: The Irresistible Shift of Global Power to the East, New York: Public Affairs, 2008.
월든 벨로(Walden Bello)는 중국과 아세안자유무역지역(CAFTA)을 목적으로 하는 중국의 신식민주의에 관한 글을 썼다. 이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닌데, 왜냐하면 중국의 의도는 탈서구화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냉전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에 대한 논쟁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는 미국이 19세기 초에 서반구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던 것처럼, 서반구의 경계를 다시 분할하려고 시도한다. (벨로의 글 >>)

나는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에서 현재의 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를 만들었던 사유의 계보학에서 라틴아메리카의 ‘고립주의적’ 전통과 단절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유럽과 미국에서 라틴아메리카를 ‘연구’(예컨대 지역연구)하고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서구 중심적 사유의 계보학과도 단절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연구를 통해 생산하는 지식은 남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내부에서 소비되는 지식일 뿐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도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유사한 상황은 최근에 남미와 중미 그리고 카리브에서처럼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도, 한편으로는 탈서구화 기획이 출범하는 계기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16세기부터 카리브와 안데스, 그리고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형성되었던 지식의 탈식민성 기획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시간과 장소는 달랐지만 동아시아와 중남미와 카리브는 유럽과 미국의 침략을 경험했으며 그 결과로 자리 잡은 식민적 권력 메트릭스에 종속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유럽과 미국의 (자유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이며 맑스주의적인) 제국주의 모델을 추종하면서 중국과 일본이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역할이 다르다는 점이다. 두 지역이 공유하는 미래는 탈서구화이고 탈식민화이다. 주로 국가와 기업의 손에 달려 있는 탈서구화와는 달리, 탈식민적 기획은 권위, 지식, 주체성에 대한 논쟁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주장하는 경제의 생존 능력에 대한 논쟁이다.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주장은 그러한 경제의 과실을 향유하는 소수에게는 옳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에 시달리고 언젠가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헛된 꿈에 시달린다는 것이며, 그러한 경제는 더 많이 가졌기 때문에 더 좋다고 믿는 사람들조차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경제라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독자들에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흐부바니의 책(The New Asian Hemisphere)이 탈서구적 사유와 기획의 선언이라면, (본래 블랙웰 출판사의 ‘선언’ 시리즈로 출판된)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은 탈식민적 사유와 선택에 대한 선언이라는 점이다.

2010년 2월 10일
월터 미뇰로


2010/05/07 10:33 2010/05/0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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