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우리가 아는 인간은 이미 멸종했다

이 인터뷰는 아래 정리문 보다 영상으로 직접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글로 옮긴 것보다 말로 듣는 것이 훨씬 감동적인 인터뷰이기 때문입니다.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의 10번째 책,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은 제목 그대로 ‘생명의 다양성’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간의 소멸’까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생명’으로서, 전 우주의 한 ‘존재자’로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더불어 우리는 어떤 것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인터뷰를 통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문학 연구자로서 다윈의 『종의 기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책을 읽으면서 아주 특이한 체험을 했다. 어떤 책을 읽어도 ‘인간’과 관련된 부분에 오면 늘 걸렸다. 이를테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든가, 또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이 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전혀 동의가 되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이게 근거가 뭔가 하는 생각이 늘 들었고, 따지고 보면 딱히 근거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 『종의 기원』을 읽게 되었는데, 그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이 전혀 걸리지 않고 읽었다. 그렇게 읽은 첫 책이었던 것이다.

책 제목(『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생명의 다양성’이나 ‘인간 소멸’이라는 말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말씀해 달라.
대략 내가 알고 있던『종의 기원』은,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인간 중심주의적이고 발전론적인 책이었다. 인간을 정점으로 하는 진보주의적인 책이었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라마르크를 비판하는 구절이 나온다. 보통은 라마르크가 초석을 깔아놓고, 다윈이 그걸 정교하게 발전시켰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다윈은 라마르크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고 비판한다. 비판의 핵심은 (생물들이) ‘진보적 발전’한다고 봤고 그걸 그대로 믿었다는 점에서 비판한 것이다. (『종의 기원』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다윈의 이야기나 진화론이 바로 그런 내용이었는데 다윈이 바로 그 이야기를 비판하는 것이다. 인간을 정점에 놓고 보는 그런 책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 참 특이하다고 느꼈다. (‘생명의 다양성’, ‘인간 소멸’)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굉장히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조금 복잡하게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인간’이 이미 소멸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이미 소멸되었는데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 지금 여기 있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할 텐데, 여기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 있는 인간’이라고 할 때 무엇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컨대 도덕, 예술, 사회와 같은 것을 ‘인간’적인 특질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런 것들은 (인간만의 특질이 아니라) 동물계에 아주 충만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할 때, 다시 말해 ‘인간’을 통해 떠올려볼 수 있는 내용들을 생각해 볼 때, 그것들을 인간만이 가진 게 아니라면, 인간은 결국 없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거나 비유겠거니 하고 생각할 텐데, 여기에 좀 더 덧붙여 보겠다. 인간은 동물의 한 종류다. 이 때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뭘까?’ 그런데 인간이 동물인데 이런 질문이 가능할까? 이런 질문은 마치 ‘남자와 인간의 차이는?’, ‘백인과 유색인의 차이?’와 같은 질문인 것이다. 그런 의미의 백인, 그런 의미의 양반, 그런 의미의 남성도 없다고 생각한다. 있는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없다, 그런 것은. 그리고 인간 또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야기해 보자. ‘진화’는 ‘멸종’과 동전의 양면이다. 인간이 만약 ‘진화’했다고 한다면, 기존의 인간은 ‘멸종’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선입견 속에서 ‘인간이 진화했다’라고 하면 ‘인간이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은 진화론에 따르면 틀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이미 멸종했거나, 아니면 필연적으로 (인간이 진화하는 존재라면) 멸종하게 되어 있다. 인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거나, 뭔가 다른 존재로서의 인간과 같은 생각엔 전혀 관심이 없다. ‘생명의 다양성’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우리는 생명이 다양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인간을 어떤 ‘모델’로 놓고 식물은 인간보다 뭐가 부족하고, 동물은 인간보다 뭐가 부족하고 이렇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실 못난 인간, 중간쯤 되는 인간, 인간 자체로 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엔 ‘생명의 다양성’이 없는 것이다. 마치 백인들이 세상엔 흑인도 있고 황인종도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을 다양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생명에 대한 그러한 관념도) 다양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다 특별하고 소중하다고 느낄 때, 그 때 우리는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척도만 있는 ‘양적인 다양함’이 아니고, 모두가 질적으로 소중하고 특별하다는 ‘질적인 다양함’이라는 의미에서 ‘다양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 서면 무생물부터 생물까지 모두가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이때 바로 다양성의 우주가 펼쳐진다. 그래서! 그런 점에서 인간이 이미 소멸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010/05/07 16:55 2010/05/0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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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이언트버거 2010/05/07 19:53

    이 인터뷰를 통해 '발전'이란 말에 대해 다시 의문이 들었습니다.
    역사는 변화 발전한다, 나는 어릴 때보다 더 많이 발전해왔다, 이런 사고를
    전복시키는 것 같아요.
    단지 나는 어제와 '다른' 것뿐이군요
    '이 세상 모든 존재가 특별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소멸할 것이다'
    모든 존재가 자기의 향기와 음향을 뿜어내고 있는 '가능성'의 존재..
    정말정말 시끄러운 우주로군요
    백년 전의 꼴찌가 오늘의 최고 강자를 이길 수도 있겠네요.
    재밌습니다. 소멸은 그러나 선택은 아니겠지요?
    진화도 그러면 선택이 아니고.. 능력이 커지는 것도 자기 맘과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상한 결론이 저에게는..ㅜㅜ
    암튼 뻔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 걸 물음표로 생각하게 되는 좋은 자리였습니다.

    • 그린비 2010/05/10 09:43

      발전이 아니라 단지 '다른' 것! 뻔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 고것이 바로 인문학이죠.+_+ 자이언트버거님 댓글을 보며 저도 인터뷰를 다시 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