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1탄: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

생애
너무나 유명한 사회주의자이자 최초의 맑스주의자입니다. 맑스가 태어난 지 2년 후인 1820년에 섬유산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 후반에 이미 이런저런 저널들에 (정치적인) 시와 기사를 기고하면서 이름을 날립니다. 1842년에는 아버지가 공동대표로 있는 ‘에어맨 앤드 엥겔스’(Erman and Engels)에서 일하기 위해 맨체스터로 건너갑니다. 거기서 『라인 신문』을 발행하고 있던 맑스를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서로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애초에 ‘정치경제학’에 관심을 갖고 있던 엥겔스는 1844년에 「국민경제학 비판 개요」라는 논문을 쓰고, 다음 해에는 첫 저작인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를 출간합니다(불과 26살!). 이 두 권은 맑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맑스는 자신의 ‘정치경제학’ 저작들에서 이 두 텍스트를 ‘선도적인 저작’으로 곧잘 인용하기도 합니다.
1844년에 파리에 갔다가 맑스와 만납니다. ‘성격 더러우니 조심하라’는 사람들의 경고 때문에 처음엔 좀 얼어 있었지만, 대화 몇 마디 나누고 급속도로 친해집니다(사회주의 드림팀 출범). 거기서 의기투합해 자기들의 역사인식을 규명한 『독일 이데올로기』를 함께 쓰고, ‘청년헤겔파’를 짓밟는 『신성가족』을 공동으로 펴냅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맑스와 함께 브뤼셀로 갑니다. 그 사이 맑스는 프루동을 응징하는 『철학의 빈곤』을 내기도 하고요. 브뤼셀에서 두 사람은 ‘공산주의자 동맹’이라는 비밀단체에 가입하고, 1848년에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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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엥겔스

1848년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고, 맑스는 잠시 독일에 머물렀다가 곧바로 쫓겨나 영국으로 갑니다. 엥겔스도 친구 따라 영국으로 가는데, 맑스가 18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 것과는 달리 엥겔스는 회사로 돌아갑니다. 주요한 이유는 돈 벌어 맑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고요. 물론 그동안 회사만 다닌 건 아닙니다. ‘독일 혁명사 2부작’을 쓰기도 하고, 맑스의 경제학 연구에 조언도 해줍니다. 1859년에 맑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를 내놨을 때는 아주 유명한 「서평」을 써주고, 1867년에 『자본』 1권이 출간된 뒤에는 익명으로 몇 개의 서평을 써줍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보낸 뒤 1869년에 일선에서 은퇴합니다. 이후 아일랜드 문제, 주택 문제, 권위 문제에 관한 일련의 글을 쓰기도 하고, 독일사민당 창립 후에는 이론적 지주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1883년에 맑스가 사망하는데, 그 뒤엔 맑스의 유지를 받들어 『자본』 1권 3~4판 및 영역본을 출간하고, 『자본』 2~3권을 편집해 출간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독자적인 저술들, 예컨대 맑스주의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받는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변혁』(일명 『반뒤링』),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등을 출간합니다. 그렇게 맑스보다 12년을 더 산 뒤, 1895년에 암으로 사망합니다.

해설가 엥겔스
엥겔스는 맑스 텍스트의 가장 충실한 해석자입니다. ‘맑스주의’라는 조류를 만들어 낸 사람이 엥겔스고, 그만큼 맑스주의를 체계화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한편에서는 맑스 사상을 기계적으로 축소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아무튼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평」, 「『자본」 보충설명」, 『반뒤링』 등은 맑스 이후 사회주의자들이 (어려운) 맑스 저작보다 더 열심히 읽을 정도로 권위 있는 해설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요즘엔 그렇지 않은 듯).

문필가 엥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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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 초판
엥겔스는 단순히 맑스의 조력자로 보기 아까울 만큼 재능이 많은 사람입니다. 근대사회에서 ‘정치경제학’의 중요성을 맑스보다 먼저 깨달았고, 어느 시점까진 맑스보다 더욱 깊이 이해한 인물입니다. 또 1848년까지 둘이 함께 쓴 『신성가족』,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당 선언』에서는 맑스보다 엥겔스가 더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맑스의 ‘프랑스 혁명사 3부작’보다는 못하다지만) ‘독일 혁명사 2부작’, ‘주택문제’에 관한 글, 『반뒤링』 같은 빼어난 글들을 쓰기도 했습니다.
엥겔스는 맑스보다 훨씬 더 글을 명쾌하게 씁니다. 『자본』처럼 방대한 체계를 세운 저작을 쓰지는 못했지만, 그 방대한 체계의 핵심만 간명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맑스보다 한수 위입니다. 또 맑스만큼 잔인하진 않지만 상대를 조롱하는 서술에도 능하기 때문에 읽는 재미도 큰 저자이고요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맑스보다 엥겔스의 글을 더 탐독한 것도 이처럼 엥겔스의 글이 접근하기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코 단순화할 수 없는 맑스의 사상을 쉽게 전달하려다 보니, 기계론적 ‧ 결정론적 역사관에 빠지는 등 이런저런 왜곡 ․ 축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더 나아가 이후의 레닌주의 ‧ 스탈린주의의 폐해를 이런 엥겔스의 단순화에서 찾는 논자들도 많습니다. 『맑스주의의 역사』(그린비, 출간 예정)에서 이런 비판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는데, 나중에 ‘씨앗문장’에서 써볼까 생각 중입니다…….

편집자 엥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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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캐롤라인 맑스(칼 맑스의 딸)의 사인 앨범 중 엥겔스 부분
엥겔스는 유능한 편집자이기도 했습니다(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편집자’와는 좀 다르지만). 맑스는 결국 『자본』 2~4권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리고 남은 일생 동안 엥겔스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한 일이 바로 『자본』 2~3권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4권 격인 『잉여가치 학설사』는 처음에는 칼 카우츠키가 출간하고, 나중에 소련에서 다듬어 다시 출간됩니다).
엥겔스는 맑스가 남겨 놓은 방대한(그리고 악필로 가득한) 초고들을 가지고 말 그대로 악전고투를 합니다. 맑스의 애초 계획에 따라 초고를 배열하고, 이어붙이고, 잘라내고 기타 등등. 워낙 초고 분량이 방대한데다가 눈까지 나빠져 작업이 잘 안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총애하던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에게 일거리를 분담하기 위해 ‘맑스 필체 읽는 법’을 강의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아무튼 초고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던 2권은 맑스 사후 2년 뒤인 1885년에 출간합니다. 2권에 붙인 「서문」에서 엥겔스는 “주로 기술적인 곤란만을 내포하게 될” 3권도 곧 출간할 수 있을 거라 자신만만하게 선포했지만, 실제로 작업에 들어간 뒤에야 3권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곤란을 제기”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2권을 출간한 지 9년(!) 후인 1894년에야 『자본』 3권을 (그것도 매우 불완전한 상태로) 출간합니다(3권 「서문」에 9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년 후인 1895년에 사망합니다.
『자본』 3권은 이윤율 저하경항, 공황, 신용제도 등 중요한 (현실적) 내용을 다수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엥겔스판) 『자본』 3권을 과연 진짜 (맑스의) 『자본』 3권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맑스의 초고들이 『맑스 ‧ 엥겔스 전집』에 실려 출간된 이후, 일부 연구자들은 엥겔스가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초고를 “노동계급의 무기”로 사용될 체계적인 책으로 만들기 위해 억지로 내용들을 연결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혁명가 엥겔스
엥겔스(와 맑스)는 이론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혁명가였습니다. 하지만 혁명가 엥겔스의 면모를 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맑스는 사정이 좀 낫지만, 한국에서 엥겔스는 그럴듯한 평전조차 집필되거나 번역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절판된) 테렐 카버가 쓴 소책자 『엥겔스』(시공사, 2000)와 일종의 맑스 ‧ 엥겔스 공동평전인 (역시 절판된) 하인리히 겜코브의 『두 사람』(죽산, 1990) 정도가 있습니다(『두 사람』은 2003년 시아출판사에서 『맑스‧엥겔스 평전』으로 재출간되는데, 이것도 얼마 안 가 절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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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엥겔스의 삶을 조망한 평전

외국에서도 그렇게 많은 평전이 출간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관심을 끄는 사실은 재작년과 작년에 엥겔스 평전이 한 권씩 출간되었다는 것입니다. 존 그린(John Green)의 『엥겔스: 혁명적 삶』Engels: A Revolutionary Life(2008)과 트리스트럼 헌트(Tristrum Hunt)의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혁명적 삶』The Frock-Coated Communist: The Revolutionary Life of Friedrich Engels(2009)이 그 책들입니다. 두 권 모두 유익하다는 소문을 지나가면서 들은 것 같은데, 두 권 중 한 권이라도 번역되어 읽어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적으면서 이만 마무리를…….

- 편집부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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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10:57 2010/05/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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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반 2010/05/13 12:51

    엥겔스~~!! 님아!!

    • 그린비 2010/05/13 13:07

      이반~ 님아!!^ㅡ^ㅎㅎ

  2. 전씨 2010/05/13 22:34

    '맑스 필체 읽는 법'을 강의하는 엥겔스를 상상하니 재미있네요. 마치 고대상형문자를 읽어내는 작업이랄까.ㅋㅋ

    • 그린비 2010/05/14 10:35

      흣. 고대 맑스 기호학 요런거...^ㅡ^;ㅋㅋ

  3. 독고종 2010/05/14 10:51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은 대학 1학년 때 밤새 가면서 몇 번씩 읽은, 그야말로 잊혀지지 않는 책이네요.

    그 때는 '독고종, 독고종'하고 다녔는데 말이죠. 물론 그 뒤에 부록(?)처럼 붙어 있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는 무수한 밑줄과 메모를 남기기도 했었네요. 잠깐 그 때 기억이 났습니다.

    • 그린비 2010/05/14 16:44

      닉네임도 '독고종'으로 써 주셨네요.ㅎㅎ
      그 무수한 밑줄과 메모가 남겨진 책! 보고 싶네요.^^ <'나의 고전'을 찾아라!> 이벤트 중인데 공개해 보심은 어떨런지..(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