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역자 김은중 인터뷰
 — ‘라틴 아메리카’를 공부하자!


#1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의의에 대하여

우리가 라틴아메리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이 책(『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의 저자인 미뇰로 교수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라틴 아메리카를 공부해야 하는 세 가지 목표가 있다. 라틴 아메리카가 유럽인의 인식에 들어간 시기, 즉 아메리카를 ‘발견’한 시점.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 시작한 19세기라는 시점, 그리고 세번째는 냉전이 끝나고 역사가 종말을 고했다고 하는 그 시점 이후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운동이나 사회문화변동이다. 미뇰로도 이야기 하는 바이지만, 이 책이 중요한 이유가 그러한 첫번째, 두번째 시기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이제 라틴 아메리카를 새롭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라틴 아메리카가 던져 주고 있는 함의가 단지 그곳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16세기 이래로 시작된 세계체제와 더불어 생각될 수밖에 없고, 지금은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라는 블럭화된 개념이 깨지는 시점이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생겨야 한다. 그것이 전 세계적인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한 ‘변동’의 구체적인 예가 있다면?
사파티스타 봉기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의 등장이라든지, 원주민 출신으로 최초의 대통령이 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등장과 같은 것들이다. 에보 모랄레스의 대통령 취임은 어떤 의미에서는 흑인으로서 최초의 대통령이 된 오바마의 등장보다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정말 불가능하리라고 여겨졌던 일이 현실화된 사건인 것이다. 또 브라질에서 시작된 ‘농민의 길’ 운동은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게 되었다. 이런 사회운동의 흐름은 현재 다른 대륙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그런 것들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러한 움직임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한국의 경우에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야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칠레에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정부가 들어선다. 그런데 그 정부가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는데, 그때 피노체트가 정권을 장악한 후 칠레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리고 들어온 사람들이 ‘시카고 보이스’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레이거노믹스, 대처리즘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라틴아메리카에 적용한다. 그러니까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이미 197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작되었고, 90년대에는 이미 그러한 정책의 결과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 라틴아메리카를 통해 보는 '근대성, 식민성, 탈식민성'

식민성-탈식민성 담론의 기본 관점에 대해 설명하자면?
근대성, 그러니까 유럽 중심주의적 근대성을 극복하는 문제가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지금 근대문명이 위기에 봉착했다 또는 근대문명의 중요한 축인 자본주의 시스템이 문제에 부딪혀있다는 식의 문제의식은 다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근대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그것을 대체하는 대안에 대해서만 숙고를 하고, 그러다 보니 대안이 없다는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한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뇰로의 말을 따르자면, 근대성이라는 것은 (‘근대성’이라는) 머리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머리가 세개라는 것이다. ‘근대성’이라는 머리 하나, 그것이 감추고 있었던 ‘식민성’이라는 머리 하나다. 이 둘은 사실 한몸이다. 그런데 이것들 말고도 하나의 머리가 더 있다. ‘근대성-식민성’과 짝으로, 그것에 대항하는 ‘탈식민성’이라는 머리가 또 있는 것이다. ‘근대성’은 식민성이라는 자본주의적 착취와 이윤축적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일 뿐이다. 그래서 근대성을 수사학적으로 장식하는 사람은 ‘근대성’을 내세우는 것이고, 그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식민성’의 역사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수사학적인 ‘근대성’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계몽주의 이후,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이후의 유럽문명을 가리키는 ‘근대성’이라는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거슬러 내려가 보면 그 ‘근대성’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식민성’이라는 점이다. 결국 ‘근대성’은 제국주의적 침략과 억압의 역사가 근대성의 역사인 것이다. 철학사적으로 봐도, (유럽 바깥의 지역들에서는) 칸트니 헤겔이니 하는 사람들의 인식론적 차원에 갇혀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미뇰로에게 ‘탈서구주의’와 ‘탈식민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탈서구주의’는 국가와 기업이 주도가 되어서 유럽의 경제적인 패권주의를 벗어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경제적인 부상을 탈서구주의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더 폭넓은 저변을 갖는 것이 ‘탈식민주의’이다. 이것은 각각의 개체들이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식민성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이런 전환이 가능해야만 경제, 정치를 다시 보는 시각도 가능하다. 따라서 ‘탈서구주의’와 ‘탈식민주의’가 서로 긍정적인 관계 속에 있지만 후자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변동들)은 그래서 ‘탈식민주의’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미뇰로의 주장이다.

<라틴아메리카연구소>의 이후 계획, 선생님의 계획에 관해 말씀해 달라.
‘라틴 아메리카’를 인식론적 전환의 측면에서 보고, 이와 관련된 담론이 활발하게 교류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구소를 지향하고 있다. 석학 강좌의 경우 이번 미뇰로 방한이 네번째였다. 큰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1년에 두 번씩 석학 강좌를 개최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또 그린비출판사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내고 있는 ‘트랜스 라틴’ 총서 출판 계획도 열심히 해서 좋은 책들을 내고 싶다. 이후 연구소의 역량이 축적되면 역서뿐 아니라 저서도 낼 계획이다. 개인적인 계획은 그린비와 약속했던 ‘개념어 총서’ 『탈식민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작지만 알찬 책이 있는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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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2010/06/11 11:40 2010/06/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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