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논리, 강자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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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새끼양이 냇가로 물을 먹으로 갔다. 그때 늑대가 나타났다. 불행히도 늑대는 배가 고픈 데다가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별 생각 없이 물을 먹으로 왔던 늑대는 새끼양을 보자 괜히 시비를 걸었다.
“야! 너 왜 내 물을 더럽히는 거야? 무슨 일이든 해서 좋은 일이 있고 해선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야. 아무래도 넌 교육 좀 받아야겠다. 이리 와 봐!”
새끼양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미안한 얼굴을 하고 늑대 앞으로 갔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그러자 늑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가 먹을 물을 더럽혔잖아!” 하며 화를 냈다.
“하지만 저는 아래쪽에서 물을 마셨는데요.”
새끼양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늑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너, 작년 여름에 내 욕을 하고 다녔다면서?”
“죄송하지만, 저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뭐라고? 그러면 네 형이 그랬구나.”
“제겐 형이 없는데요.”
“듣기 싫어! 하여간 너희들 중 누군가가 그랬어! 너희들 전부가 나를 바보로 알고 있단 말이지!”
새끼양이 늑대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 못하고 있으니 늑대는 “그것 봐라. 사실 아니냐? 너희들은 전부 나쁜 놈들이야. 이 자리에 없는 너희 부모형제는 어쩔 수 없지만, 내 앞에서 해선 안 될 짓을 한 너는 용서할 수 없다. 응분의 벌을 받아야지” 하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새끼양은 어처구니없게도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라퐁텐 우화』에 실린 이 이야기의 앞뒤로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강자의 논리는 언제까지나 버젓이 통용된다. 이기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그리고 『주권의 너머에서』는 깡패국가 미국을 비판하기 위해 이 말을 인용합니다. 늑대와 새끼양의 우화는 미국과 그 밖의 약소국의 관계를 너무나도 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강자의 논리는 언제까지나 버젓이 통용된다.” 지난 제국주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 국제관계도 이를 너무도 잘 증명해 줍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라크는 미국에 대해 테러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미국의 우방이기도 했지요. 후세인 밑에 있던 부총리 타리크 아지즈는 기독교 신자일 정도입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와도 거리가 있는 나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전쟁을 강행했습니다. “얘네들은 곧 전쟁을 일으킬 만한 놈들이니, 예방 차원에서 먼저 공격해 두어야 한다”라며. 그리곤 후세인을 잡아들입니다. 증거는 대량살상무기. 아시다시피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조사한 미국 기관은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었으며 1991년 이후 어떠한 것도 만들지 않았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이라크 민간인이 현재 10만 명이 사망했거나 말거나, 미국에게 후세인은 여전히 위험한 인물이고, 이라크는 짓밟아야 할 곳입니다. 제가 이라크인이라면 미국을 향해 속삭이듯 말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우리보고 어쩌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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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게르니카> 1937, 두려움 없는 약자는 강자를 위협한다. 강자는 그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닐까?

“강자의 논리는 언제까지나 버젓이 통용된다.” 강자가 아닌 우리 약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말은 참으로 절망스런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강자가 되지 못하는 한 강자에게 끌려 다니며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일 테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강자가 되기 위해 OECD와 G20, G8 등에 열을 올리고 선진국 행세를 하려 애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강자에게 딱 붙어서 조금이라도 살 공간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요.

이런 방법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차라리 약자임을 인정하고, 약자들끼리 함 뭉쳐 보자, 하면 어떨까요? 새끼양 곁에 어른 양들도 있고 다른 동물들도 좀 있으면 늑대가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요?

편집부 주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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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퐁텐우화집 - 10점
라 퐁텐느 글, 크리스토르 블랭 외 그림/크레용하우스
2010/06/15 16:32 2010/06/1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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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순진한양 2010/06/17 11:39

    인용된 사진의 아래에 있는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
    "두려움 없는 약자는 강자를 위협한다. 강자는 그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예전 중세 시대의 마녀 사냥이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소문이나 익명의 밀고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마녀로 몰려 결국 자백할 수 밖에 없었던 고문을 거쳐 죽음으로 가게 만들었던...
    그 소문이나 익명의 밀고도 결국엔 본인이 먼저 마녀로 지목 당하지 않기 위해 강자(?)의 편에 서서 불특정 약자를 만들어 낸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도 본인이 약자가 되어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생기기 전에 그 보다 더 빨리 새로운 약자를 만들어 내는 시대가 아닐까합니다.

    • 그린비 2010/06/17 14:14

      그런 시대를 넘어설 때 '반시대적' 삶이 가능하겠죠? ㅋㅋ 두려움이나 분노나 이런 걸 다 넘어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 2010/06/17 15:32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위대한 게츠비 중
    읽다보니 생각나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할텐데..
    걱정입니다. ㅋㅋ

    • 그린비 2010/06/17 19:11

      "살아온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살아가라!"
      우리의 앎이 우리 삶을 구원할 수 있다면, 바로 그 한 문구 때문이다.
      - 『추방과 탈주』 중

      헵님도 강자를 넘어선 강자가 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