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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성자는 우리를 구원해 주기 위해 필요하다고 나는 항상 들어왔어요. 그들은 그들 자신을 구원하지는 않았어. 누가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해주었지? 그저 내 마음속으로 느꼈던 거예요. 당신의 마음속에서 무엇을 느꼈는데? 아무도 구원을 받지 않으며, 아무도 길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그런 생각은 죄를 짓는 일이야. 죄라는 것은 없어요. 오직 죽음과 삶이 있을 뿐이죠. 삶이 있고 나서 죽음이 오는 거야. 발타자르, 당신은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죽음이 있고 나서 삶이 있는 거예요. 과거의 우리가 죽고 나서, 지금의 우리가 태어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전부 한꺼번에 죽지 않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땅 속으로 들어가지? 프란시스쿠 마르케스는 돌을 나르는 수레에 언제쯤이나 깔려 죽을까? 그런 죽음은 무의미한 죽음이 아닐까? 프란시스쿠 마르케스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 있어요.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죠.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살아 있어, 블리문다. 당신은 그런 생각들을 어디에서 배웠소?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에도 나는 눈을 뜨고 있었어요. 거기에서부터 나는 모든 것을 보았어요.

(주제 사라마구,『수도원의 비방록』, 최인자 외 옮김, 해냄, 576~577쪽)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라마구. 그는 데뷔한 1947년부터 68년 사이의 20년 동안 공산당 활동과 정치 칼럼 집필 등에 전념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타계하기까지 40여 년에 걸쳐 있는 그의 작품은 체제 전복적인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살아 있는 양심, 행동하는 지성의 면모를 나는 얼마 전 편집한 책에서도 느꼈다. 2002년 국제작가회의의 일원으로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당시 그는 “인티파다에 참가해 투석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팔을 꺾는 것은 ……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비교할 수 있다”(『주권의 너머에서』, 265쪽)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통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발타자르와 블리문다의 위 대화,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깊이 음미하게 해주는 위 대화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느낀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에서마냥 그의 죽음 또한 무의미한 죽음이 아니길, 또 다른 새로운 삶의 시작이길 바란다.

- 편집부 주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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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비망록 - 10점
주제 사라마구 지음, 최인자 외 옮김/해냄
2010/06/26 13:46 2010/06/2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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