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기’가 던지는 질문
– 우리에겐 급하게 읽을 이유도, 그럴 권리도 없는 게 아닐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래로 만다라를 그리는 티베트의 승려 _ 선 하나, 점 하나에 집중하며 그려간 만다라. 그렇지만 이것은 지워지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죠.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써나간 문장 하나 하나를 우리는 만다라 그림 지우듯 너무 빨리 읽는 것은 아닐까요? 직접 쓴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

이제 와서 새삼 생각하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 책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불균형하다는 것이다. 그 둘 사이에는 때로 엄청난 차이가 나기도 한다.
작가 플로베르는 소설 『보바리 부인』을 산고에 몸을 축내 가면서 장장 4년 7개월 11일이나 걸려 완성했다. 그것은 원고의 겉표지에 기록된 자필 메모로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가령 보름 만에 읽는다고 하면 쓰는 시간에 비해 대략 백 배의 속도이고, 하루 반 만에 읽으면 실로 천 배의 속도가 된다.
– 야마무라 오사무, 송태욱 옮김, 『천천히 읽기를 권함』, 샨티, 2003, 176쪽

‘천천히 읽기.’ 모두가 그게 좋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야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이야기를 아무나 낼 수 없는 글맛으로 이끌어가는 책입니다. 야마무라는 여러 황홀한 사례들을 들어가며 ‘천천히 읽기’(이른바 지독[遲讀])의 장점을, 아니 그렇게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들려줍니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 누구라도 느릿느릿, 한 글자 한 글자를 세심하게 살펴가면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될 겁니다.

예전에 매우 즐겁게 읽은 이 책을 얼마 전에 다시 손에 들었습니다. 독서도 그리고 다른 많은 일도 너무 급하게 해치워 버리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이나마 안정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일까요, 지난번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저 인용문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저자 후기」에서 야마무라는 쓰는 일과 읽는 일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불균형을 언급합니다. ‘리얼리즘 문학’의 아버지격인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을 완성하기까지 저렇게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4년 7개월 11일”이라고 한 번만 되뇌어도 이 완벽주의자가 『보바리 부인』을 쓰면서 쏟은 노력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위의 인용문을 읽으면서 저는 그 ‘노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제가 아는) 몇몇 저자를 머릿속에 떠올려 봤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벤야민의 육필 원고
칼 맑스는 거의 반평생을 정치경제학 연구에 바쳤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네 권으로 계획된 주저 『자본』의 1권만을 직접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1974년, 해리 브레이버맨은 15년이 넘는 노동자경험에 기초해, 20세기 자본주의에서의 노동과정을 탁월하게 분석한 『노동과 독점자본』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노동과 독점자본』은 브레이버맨이 출간한 유일한 책입니다(그리고 그는 이 책을 내고 2년 뒤에 죽습니다). 제가 아는 한 가장 압축적이고 밀도 높은 글을 쓰는 사상가인 발터 벤야민은 글쓰기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더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말 것. 어떤 일정(식사 시간, 선약)을 지켜야 하거나 아니면 작품을 끝마쳤을 때만 중단하는 것이 문학적 명예의 준칙이다. ……더이상 아무런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동안 쓴 것을 깨끗이 정서할 것. 그러는 동안에 직관이 깨어나게 될 것이다. ……작품의 결말은 평상시에 일하던 방에서 쓰지 말 것. 거기서는 그렇게 할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거의 목숨을 걸고 글을 쓴다고 말할 수 있겠죠. 벤야민의 친우이자 라이벌인 테오도르 아도르노도 벤야민에 뒤질세라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결함도 개선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무방할 정도로 너무 작고 사소하지는 않다. 수백 번의 교정 중 하나하나의 작업은 사소하고 고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전체가 합쳐지면 새로운 차원의 텍스트를 만들어 내게 된다. ……최상의 표현을 골라내어 이것을 가지고 계속 작업해나가야 한다. 구성상 필요할 경우 버리기 아까운 사유조차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문필가의 테크닉이다. ……고귀한 텍스트는 거미줄 같다. 촘촘하고 집중되어 있으며 투명하고 탄력 있고 견고하다. 이것들은 날고, 기는 것들을 모두 자신 안으로 잡아챈다. 거미줄 같은 텍스트를 재빨리 통과해 빠져나가 보려는 메타포들은 거미줄의 제물이 되어 텍스트에 영양분을 공급한다”(마음 같아선 ‘글쓰기’에 대한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이 짧은 텍스트들 전문을 인용하고 싶지만……). 최인훈은 처녀작 『광장』을 무려 아홉 번이나 개정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몇몇 사소한 표현만을 깨작깨작 다듬은 게 아니라, 과감하게 문체와 내러티브 자체를 수정해 왔습니다. 『광장』은 저자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새롭게 태어나기를 반복한(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소설입니다.

즉각 떠올린 것만으로도 이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제가 알지 못하는 많은 책들이 길고긴 시간들, 수많은 노력들을 담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야마무라가 말한 것처럼 쓰는 시간과 그것을 읽는 시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4년 7개월 11일과 하루 반의 간극. 당연한 일이기는 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찾고, 그것을 연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해 정리하는 과정과 비교하면 그 결과물을 향유하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겠죠. 문제는 (그런 당연한 불균형과는 별개로) 우리가(무엇보다도 바로 제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책을 읽어 나간다는 겁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오늘도 저는 이런저런 책들을 재빨리 ‘해치워 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작가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입니다. 우리를 무지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느끼고 있지만 언어화하지는 못하는 감정들을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한 극한의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기 위해 그들은 생각하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천히 읽기’는 단순히 조금 더 즐겁게 책을 읽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천천히 읽기란 그 저자와 텍스트에 대한 일종의 예의 아닐까요? 책들의 홍수에 빠져, 시간에 쫓겨 다급하게 꾸역꾸역 머릿속에 집어넣다 보면, 텍스트에 대한 예의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는 텍스트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감수성의 쇠퇴, 몸으로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능력의 부재, “흐트러진 눈동자”(야마무라 오사무)가 아닐까요? 야마무라 오사무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겐 “책을 그렇게나 빨리 읽을 아무런 이유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럴 권리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서를 취미로, 나아가 생각과 행동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삶의 한 부분으로 삼기 위해서는 이 예의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 편집부 김재훈

알라딘 링크




천천히 읽기를 권함 - 10점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샨티
2010/07/01 10:05 2010/07/01 10:05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1099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비밀방문자 2010/07/01 16:26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10/07/01 17:25

      안녕하세요.
      처음에는 전체 공개로 했다가 트래픽 문제로 서버가 한창 고생할 때, 그 모습 보기가 안쓰러워 부분 공개로 바꿨습니다. ㅡㅡ;; 그 뒤로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전체 공개가 낫겠다 싶어 방금 바꿨습니다. 다음 포스팅부터는 아마 전체 공개로 RSS가 발행될 것 같습니다. ^^
      혹시 또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 한방블르스 2010/07/01 19:24

      감사합니다..

  2. 순진한양 2010/07/02 08:01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읽을 책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 글을 읽고 저도 책장을 유심히 살펴보니 재미있게 읽은 책은 많아도 계속 반복해서
    읽은 책은 몇 안되는것 같습니다.
    아마도 더 많은 책을 읽기 위해 시간에 쫓기듯 읽은 탓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네요.
    빨리빨리만 강요하다 마음의 여유를 잃는대신 약간 답답해 보일지라도 천천히 보며
    내공을 쌓는 것... 언제 해봤는지도 기억이 안 나네요.. ^^;

    • 그린비 2010/07/02 09:11

      순진한양님 안녕하세요! 언제 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을 이번 주말에 해보시는 건 어떨런지요? ^^

  3. Lohengrin 2010/07/02 11:5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재훈님은 이 글을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그런데 저는 그 결과를 짧은 순간에 향유하는군요^^V 이 글이 작은 '선물'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 그린비 2010/07/02 11:29

      로엔그린님의 댓글도 재훈씨에게나 그린비에게나 작은 '선물'이 되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김재훈 2010/07/02 11:44

      잘 읽으셨다니 저도 감사합니다! 사실 제 글이야 빠르게 읽고 넘어가도 무방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향유'하셨다는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보답(?)받은 것 같습니다. 요 글이 천천히 오래도록 읽을 수 있는 Lohengrin님만의 책을 찾게 되는 작은 계기가 된다면 정말 좋겠네요.

      그나저나 다음번에 '씨앗문장'을 쓸 땐 '선물'과 관련된 내용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선물'이라는 단어를 보니 반갑기도 하고, 또 뭔가 걸린 것 같아 뜨끔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