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철학에 초점을 두고 중국 근대사상가 19인의 삶과 사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 『중국 근대사상과 불교』의 저자 김영진 선생이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금요인문강좌'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독자들을 만납니다. 오는 8월 17일부터 시작하는 강좌에 앞서 <연구공간 수유+너머> 웹진의 권은영 기자가 김영진 선생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동의를 얻어 인터뷰 전문을 그린비 블로그에 올립니다. 기사를 선뜻 제공해주신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감사드립니다.

 “대사가 죽여~~”

멋진 영화와 문학, 사람을 만났을 때 그가 거침없이 뱉는 말이다.
어설픈 질문에도 깔끔하게 대답해주는 그와의 인터뷰는 시종일관 “대사가 죽였다!”
재밌고 멋진 강의가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 한일 아닐까 하는 생각을 살짝 했다.

Q. 작년에도 ‘붓다'를 주제로 강의를 했다고 들었다.(그리고 매우 재미있었다는 후문도 있다.) 그 강좌와 이번 강좌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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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작년 가을에 ‘붓다와 그의 제자들'이란 제목으로 불교 교양강좌를 했다. 그 강좌는 교양 강의와 같이 편안한 느낌으로 진행되었다. 그 이전에도 연구실에서 불교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론적인 내용으로 강의를 하니까 사람들이 전부 자더라. 그래서 전략을 바꿔 재밌는 에피소드로 불교에 대해 말해보자는 취지로 했던 강좌가 바로 ‘붓다와 그의 제자들'이었다. 부처님의 전 생애(고타마 싯타르타가 태어나 붓다가 되고 제자를 만나서 가르치고 죽는 전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로 불교 전체에 대한 정서를 전달하고자 했다. 지난 강좌가 재미있었다고 얘기한 사람들은 아마도 어려운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 강좌는 지난 강좌와 비교해 시간과 공간이 확 달라진다. 지난 강좌의 에피소드들은 2500년 전 인도가 배경이라면 이번에는 20세기 초 중국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가지고 불교에 접근한다. 불교의 정서를 쉽고 재미있게 접근한다는 점에서는 같을 수 있지만, 그 소재는 훨씬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중국에서는 불교를 가지고 혁명을 하고자 했던 사람, 예술을 하고자 했던 사람 혹은 개인 수양을 하려 했던 사람 등등 2500년 전과는 다르게 다양한 삶의 기술로 드러나는 불교를 만날 수 있다.

Q. 20세기 초 중국 불교에 어떤 전환이 있었던 것인가? 강좌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 되겠지만 살짝 맛만 보여준다면?

A.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전근대가 근대로 넘어가는 때였기 때문에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 등 장소를 막론하고 혼돈의 시기였다. 이때 사회 곳곳에서 혼란을 극복하고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여러 변화가 일어났었다. 불교도 마찬가지였다. 불교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외부에서 불교를 선택해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도 있다. 외부에서 불교를 삶의 기술로 끌어냈다. 혼란의 시기에 불교인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불교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불교가 많이 전파되고 이용되었다. 특히 20세기 초에 혁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혁명 무기로 (서구이론이 들어오기 전에) 불교를 많이 이용했다. 이후에 서구이론이 들어오면서는 맑스주의가 혁명 이론을 확 장악하지만 그 전 청 말에는 전통 종교의 색채만 있었던 불교가 혁명의 기술로 이용되었다.

Q. 그렇담 그렇게 다양한 삶의 기술로 이용되었던 불교의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단히?

A. 좋게 생각한다. 불교가 쓸모 있게 사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불교인이 아닌 사람이 불교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나쁘다거나 혹은 거부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불교에서 부처님이 혁명을 이야기 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를 통해 혁명을 이야기 하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지 않은가. 불교가 타락했다거나 세속화되었다고 평가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그 시대 불교의 한 모습, 지식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모습도 물론 있었지만)

Q. 김영진에게 불교는 어떤 의미?

A. 각자의 삶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드러나는 종교의 모습도 다르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절에 가보면 부처님은 한 분이 아니고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옥중생구제 전문 부처님, 약사여래 부처님 등등 중생이 처한 상황이 다르고 필요한 부분이 다르면 그에 따라 부처님도 다 다른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부처님은 많을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나의 부처는 의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장군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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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 - 부처님의 말씀 은혜가 숱한 중생들에게 다 미친다.

각자의 삶에 따라 부처는 여럿일 수 있고 또 여러 부처가 곧 한 부처일 수도 있다.

나에게 불교는 이중적이다. 하나로 깨끗하게 정리가 안 되었다. 일차적으로 내게 불교는 삶의 기술, 방법이다. 그리고 이차적으로(그리고 일반적으로) 깨달음,(감히 내가 말하기 힘든) 추구해야하는(하지 않고 있지만) 자유이다. 하지만 누군가 와서 이걸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현재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술로서 불교를 받아들이는 정도이다. 깨달음이라면 완전한 자유일텐데, 나는 그 정도의 배포도 용기도 없다. 나는 지금 하는 공부에 즐거움을 느끼고 그것을 행하고 있다.

Q. 그렇다면 불교를 계속 공부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은 언제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A. 원래는 어릴 때는 주로 흙장난을 하면서, 지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땅에서 무엇인가 발굴하는 것도 좋아했다. 중학교 때 한번은 티비를 보는데 실크로드에 관한 방송이 나왔다. CCTV(중국 중앙 텔레비젼)와 일본 NHK에서 같이 찍은 프로그램이었다.

그걸 보고 순간 뻑 갔다. 이상한 복장의 사람들이 춤추는 색다른 문화의 모습을 보고 감명 받았다. 그 후에도 쭈욱 문화, 고고학, 지리학에 관심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고고인류학을 공부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고고인류학과는 있는 대학이 별로 없어서 사학과로 마음을 돌렸었다. 또 누군가는 철학을 해보라고도 했었다. 결국 나는 불교를 선택했다. 여러 동양 철학 중 (나를 매혹시켰던)실크로드를 지나간 동양사상은 오로지 불교뿐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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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땅(흙장난)에서 사람머리(불교사상)까지 오게 되었다.

5년 전 2002년에, 어렸을 때의 그 느낌으로 실크로드로 여행을 갔다 왔다. 꿈같은 그 장소, 트루판을 보는데 정말 눈물이 날 뻔했다. 어렸을 때 꿈을 이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강좌는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길목인, 타클라마칸 사막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이 강좌가 의미를 가진다면 어떤 점에서?

A. 지난 번 강좌도 수강생 중 불교인은 10%도 안 되었다. 불교에 대한 관심만 있었을 뿐. 이번 강좌는 살아가는 기술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 중국 근대에서 삶의 기술, 학문의 도구, 예술의 방법 등으로 불교가 삶의 사례로 나타나는 모습을 볼 것이다. 물론 이것이 굳이 불교가 아니어도 상관없겠지만 강좌에서는 불교를 통해 삶의 기술 들여다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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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사상과 불교』
김영진 지음 / 도서출판 그린비 / 인문, 철학

출간일 : 2007-05-21 | ISBN(13) : 9788976823007
344쪽 | 224*152mm (신국판)



2007/08/09 11:43 2007/08/0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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