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가능한 신체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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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기나긴 길을 갈 때 가장 쉽게 직면하는 것은 두 가지 난관이다. 그 하나는 기로에 섰을 때다. 묵자는 통곡을 하고서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울지도 않고 돌아서지도 않을 것이다. 먼저 갈림길 머리에 앉아 조금 쉬거나 한숨 잔다. 그런 뒤 갈 수 있어 보이는 길을 택해 간다. 만일 진실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의 먹을 것을 빼앗아 배고픔을 면할 것이다. 하지만 길을 묻진 않을 것이다. 그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만나면 나무에 올라가 호랑이의 허기가 사라지고 지나간 뒤에 내려올 것이다. 가지 않으면 나는 나무 위에서 굶어 죽을 것이다. 그리고 끈으로 내 몸을 나무에 묶어 시체조차도 호랑이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나무가 없으면 방법이 없다. 잡아먹으라고 하는 수밖에. 하지만 호랑이를 한 번 물어도 괜찮을 것이다.
다음은 막다른 길이다. 완적 선생도 크게 울고 돌아섰다고 한다. 하지만 난 기로에 섰을 때처럼 계속 나아갈 것이다. 가시덤불 속을 한동안 걸을 것이다. 온통 가시밭이고 갈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그런 곳을 만난 적이 없다. 세상에 본디 막다른 길이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운이 좋아 만나지 못했거나.
(루쉰, 『양지서』)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것인지, 어떤 옷을 입고 무슨 신발을 신을지, 자전거를 타고 갈지 지하철을 타고 갈지 등등이 제가 생활 속에서 만나는 선택지들입니다. 때로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고민도 생깁니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이별을 결심하기 전까지, 저는 꽤 오랫동안 갈림길 앞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한 길은 익숙하고 편합니다. 아니, 그 것은 길이라기보다는 푹신한 소파였습니다. 더 이상 갈 필요가 없이 마냥 쉴 수 있는 곳이었죠. 다른 한 길은 울퉁불퉁한지 어두운지 어디로 가는 길인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소파처럼 편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죠. 자꾸 시선이 길을 향하면서, 덩그러니 놓여 있을 소파에 대한 미안함이 생겼습니다. 망설임 끝에 얻은 결론은 몸이 시키는 대로 하자는 것이었죠. 언젠가부터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고 미안해질 때, 그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번의 연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이별로 끝이 났던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인연이 아닌가 보다며 넘어가곤 했습니다. 또 그렇게 이별이 온 거죠.

이틀 전, 제가 평소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손끝까지 힘이 들어가지 않고 의자에 앉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었죠. 문득 지금 내 옆에 이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하는 서러움을 느꼈습니다. 달콤한 위로의 말도 듣고 싶고, 편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딸려왔지요. 소파가 편하다고 버리고 올 때는 언제고 금세 또 앉을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연애를 시작할 때, 혹은 연애의 진행 과정에서 제가 늘 위로받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었죠. 무언가 위로를 받고 힘이 나면 그 자리를 떠나 다시 길을 떠나곤 했다는 것도 말입니다.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이유를 단순히 저의 변덕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더 충격이었습니다. 몇 번을 반복하고도 왜 깨닫지 못했을까요? 상대 탓을 하고 시기 탓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애세포가 다 죽은 게야 하며 자기 비하를 했던 걸까요? 어쩌면 갈림길도 제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릅니다. 건강한 상태라면 분명 달랐을 겁니다. 의자에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니, 의자에서 일어날까 말까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겠죠.

갈 수 없는 길은 본디 없을지도 모른다는 문장에서 저는 '건강함'을 봅니다. 신체의 역량이 뒷받침되는 그런 명랑함마저 느껴집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그저 '대인배의 마음가짐이로구나!' 싶었던 것이 지금은 또 새롭게 읽히는군요. 아마 제가 건강해지고 싶다는 바람에 휩싸여 있기 때문일 겁니다. 신체의 감각을 주시하면서 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필요를 요즘 들어 절실하게 느낍니다. 제가 더 건강해질 수 있다면, 저 역시도 활기차게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겁니다. 때로는 발이 아파 길가에서 쉴 수도 있지만 예전처럼 푹신한 의자를 바라진 않겠죠. 그때는 제가 푹신한 의자가 되고, 앉아 있던 사람이 길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런 신체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하는 습관을 서서히 조금씩 바꿔볼 생각입니다. 아마 건강한 신체라면 지금처럼 연애에 관해 연연하지도 않겠지요? 지키고 싶은 약속을 만들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의지하기 위해서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 웹기획팀 이민정

2010/07/03 13:29 2010/07/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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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르바 2010/07/03 16:09

    건강한 신체를 만드려는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신체를 건강하게 구성할 수 있는 환경과 만나는 것도 중요한 문제란 생각이 듭니다. 끊임없이 실존을 방해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건강을 구축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 이런 글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네요.ㅋ

    • 그린비 2010/07/04 16:33

      맞습니다! 환경도 참 중요하죠.
      전부 다는 힘들겠지만, 주변의 배치는 의지로 구성이 가능할 것 같아요.

      조르바님도 함께 건강해져 보아요~ ^^

  2. 케로로중사 2010/07/04 00:51

    에고. 저도 예전에 힘들 때 이 글을 되새기곤 했는데.. 민정님, 건강 잘 회복하셔서 호랑이도 어흥! 한번 물어 보세요. 화이팅!^-----^

    • 그린비 2010/07/04 16:34

      앗! 케로로중사님 반갑습니다.
      제가 사실은 케로로 팬이었...(었었던 때가 있더랬죠. 하하)
      말씀을 들으니 힘이 나네요.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