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성질 급한 분들은 이미 휴가를 떠나셨겠지요? [작가가 사랑한 도시] 1차분 편집을 마친 저도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책을 편집하면서 이미 여러 도시를 여행한 기분이 들어서일까요? 올 여름에 해외여행의 욕구는 별로 없습니다만, 9명의 작가가 아홉 곳을 여행한 여행기들을 편집하다 보니, 여행이 무엇이고, 여행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작가가 사랑한 도시 시리즈는 처음에 불문학자·시인이신 이찬규 선생님(『뮈세의 베네치아』를 번역하신 바로 그분이십니다)의 제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엔 작가들이 여러 곳을 여행하고, 그것으로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일이 아주 많았답니다. 영미권이나 유럽에는 그러한 여행기들을 모아 소개하는 시리즈가 많이 나와 있는데, 한국에서도 이런 종류의 여행 시리즈를 내면 좋겠다는 말씀이셨죠. 머릿속에 퍼뜩 “Writer meets city.”(작가, 도시를 만나다)라는 카피가 떠올랐습니다(영화 「소년, 소녀를 만나다」 패러디 맞습니다^ ^).

요새는 한국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참 많이 합니다. 나라 밖으로 많이 나가다 보니까 “단순한 여행정보서는 가라~ 좀더 특별한 읽을거리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늘어났습니다. 그에 발 맞춰 여행서 전성시대가 열렸습니다. “걷기 여행”, “카페 여행”, “디자인 여행” 등 테마도 다양하고, 연예인·예술가·보통 사람들의 여행기 등 저자군도 다채로워졌습니다. 문인들의 여행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19세기 거장들의 여행기”를 시리즈로 만난다? 도시별로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그건 쫌 신선했습니다. ‘작가’, 즉 취향·세계관·문체가 모두 검증된 저자의 여행기, 그것도 이곳저곳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돌아다닌 게 아니라 한 도시에 대해 깊숙하게 보고 쓴 것이라면? 글로써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들에게 하나의 여행이란 또 한 세계를 만나고 다시 재창조하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각자 자기 관심사대로 여행지를 보고, 그것을 담아낸 글쓰기다? 매력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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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 '비행기'가 쉽게 연상됩니다. 혹시 비행기의 빠른 속도감이 우리의 여행감각을 무디게 만들어버리는 건 아닐까요?


지금에야 자동차와 비행기로 못 가는 데가 없지만, 백년 전, 막 증기기관차와 증기선이 생겨 세계여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처음 생겼던 때(쥘 베른이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이 시대에 괜히 쓴 것이 아니랍니다)의 여행기들이라면 여행 방식도, 풍광도 지금과 많이 다를 것입니다. 그만큼 여행기도 특별했습니다(돛단배를 타고 가는 여행, 오리엔트 특급의 첫 손님, 개썰매가 등장하는 여행). 작가들이 한 사회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여행을 통해 다른 사회와 만나고 그를 통해 자기가 사는 사회를 돌아보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글쓰기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유목 민족의 땅, 막 독립한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수도).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여행문학”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단지 일상을 탈출해 어딘가에 갔다가 숨만 틔우고 와서, 전과 똑같이 산다면 그건 여행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눈요기로 관광만 실컷 하고 와서 똑같은 일상으로만 돌아온다면, 그것은 삶을 여행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고, 여행을 삶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입니다. ‘여행’은 여행자, 도시, 여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인물, 공간, 그리고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문학작품 속에서 인물이 성장하듯이, 여행이라는 사건을 겪으면서 사람은 어딘가와 무언가를 겪고 달라집니다. 즉 여행 자체가 문학입니다. 소설 속의 인물이 타자를 만나면서 주체가 되어 가듯이, 처음으로 세계여행을 떠난 서구의 작가들 역시 모더니티의 주체가 되어 갔습니다. 문화사적으로도 참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또 많은 장소들이 과거를 잃어 가며 천편일률의 성형도시가 되어 가는 오늘날입니다. 어느 도시를 여행해도 과거의 모습은 별로 없고, 기념품 가게와 이미 박물관만 잔뜩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목적지의 백년 전 풍광과 역사를 담은 여행기가 있다면, 저부터 당연히 읽어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재작년 여름, 선배언니 초대로 상하이에 1주일간 다녀온 적이 있는데요. 여행에 앞서, 상하이 여행정보서를 한 권 샀습니다. 그 책에서 얻은 맛집, 옷집, 관광 정보는 꽤 유용했습니다(특히 주소와 전화번호는요). 하지만 너무 많은 “핫 플레이스”의 목록은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제가 실제로 상하이에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1897년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양자강을 여행하면서 쓴 여행기(『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나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색, 계」 등에 등장한 조계지나 서민 주거지역 등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책의 저자이든 영화 주인공이든 그들만의 ‘이야기’(사연)를 직접 느낄 수 있을 듯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것들에 감동하는 저만의 이런저런 사연도 있구요.
   
그러니 상하이에 왔으면 뭐는 꼭 보고 가야 한다, 뭐는 꼭 사가야 한다는 식으로 선배언니가 권해 주는 관광 코스가 참, 곤혹스러웠습니다. 특히 선배가 일부러 예약해 준 항저우 관광버스는 제일 괴로웠습니다. 가이드가 요약 버전으로나 설명하는 항저우 호수 투어, 송나라 시대를 재현해 놓은 민속촌 비슷한 곳, 유·불·선의 종교 상징들을 거대하게 재현해 놓은 테마파크 비슷한 박물관…… 내가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왜 여기서 이런 것들을 보고 있나 하는 답답했습니다. 거기엔 진짜가 없고 볼거리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냥 내키는 대로 쏘다니고 싶었습니다. 즉흥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천천히 느끼고 싶었습니다. 여행의 재미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첫날엔 도시에서 제일 큰 서점에 갔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어떤 책들을 읽는지, 어떤 외국 사상가들이 중국어로 소개되고 있는지를 보는 게 저한테는 흥미로웠습니다. 또 서점에서 어떤 분야가 제일 독자들의 눈에 띄도록 배치되어 있는지 한국 서점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했고요.

2010년 엑스포를 앞두고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인 상하이 시에서는 지하철을 놓는다, 재개발을 한다 하면서 오래된 구역들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언니가 소개해 준 중국인 가이드에게 “그냥 좀 걷죠. 관광을 버려야 여행을 얻을 수 있어요.” 하면서 오래된 거리에 있는 고서점을 찾아갔습니다(두 시간을 걸어갔는데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습니다OTL. 역시 여행에는 정보가 필요합니다^ ^;;).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도시공간이 어떻게 자본에 의해 재편성되는지 관찰하고, 상하이 사람들이 일요일 오후 저녁을 짓는 부엌을 기웃거리거나 동네 사람들끼리 골목에서 마작을 하는지 등을 엿보고 다녔습니다. 마지막 날엔 혼자 프랑스 조계지였던 동네를 찾아갔습니다. 출판사와 작은 공방들, 맛집들이 늘어선 거리 풍경이 홍대 근처와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역시 문학·예술·음식은 어느 나라에서나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저는 “여행에는 확실히 자기만의 취향, 자기만의 서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출판과 도시에 대한 제 관심대로 여행하는 게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여행한 곳을 말해 달라.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 주겠다”라는 식이랄까요? 여행 한 번으로 사람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누구인지 조금 더 알 수는 있습니다(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물론 상하이는 매력 있는 도시였구요). 그런 저의 경험도 이런 여행서 시리즈가 필요하다는 데 (독자로서, 또 편집자로서) 공감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가가 사랑한 도시 아홉 권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여행기 목록을 선정하고, 10여 분의 역자 선생님들께 연락을 드려 번역 청탁을 하고, 계약서를 쓰고, 순차적으로 들어온 원고를 한 권 한 권 편집하는 과정은 따로 적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편집자가 늘 하는 일이니까요. 다만 백년 전 여행기라 역사적으로 확인해야 할 내용들도 많고, 저도 지리를 잘 몰라서 세계지도 보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는 이야기는 드리고 싶네요. 지도와 주석으로, 그 공부한 흔적을 담았습니다. 어디서나 들고 다닐 만한 작고 얇은 장정으로 책을 꾸미고, 부담 없는 가격도 붙였습니다. 독자들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으나 떠나지 못할 때 선뜻 손에 집어들 책이면 좋겠다, 혹은 어딘가로 훌쩍 떠날 때 가방 속에 가볍게 동행할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 하는 마음입니다. 글의 시작에서는 가고 싶은 데가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가고 싶은 데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살면서 한 번씩은 다~~ 직접 가서, 보고, 듣고, 저도 또 저의 여행기를 쓰고 싶습니다. 함께 떠나시겠습니까?

- 편집부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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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사랑한 도시 시리즈 - 이미지를 클릭하면 작가가 사랑한 도시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2010/07/13 10:25 2010/07/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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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순진한 양 2010/07/13 12:26

    상하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얼마전 읽었던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생각이 납니다.
    오래전 부터 생활하고 유지 되었던 그 시골 마을이 이제는 잘사는 나라의 미래형
    웰빙 공간으로 인식이 되어 다시 지어지고 있다는...
    지하철이나 대형 상가, 건물 들도 편리하고 좋지만 향수나 자연의 냄새가 묻어 있는
    공간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이번에 휴가 날짜가 잡혔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올 해 봄 즈음에 이 곳 블로그에서 얼핏 봤던 '교동시장'과 '카페'를 한 번 가볼까 합니다.
    가서 납작 만두도 먹어 보고요... ㅋㅋ
    맛 없으면 한달 동안 테러할꺼에요! ㅋ

    • 그린비 2010/07/13 14:00

      순진한 양님 자주 뵙는군요. ㅋㅋ 저도 실제로 가서 먹어본 적은 없지만! 맛있을 것 같아요!!!
      사실 '자연적인 것'이 '웰빙 상품'의 형태로 상품화 되어 소비되는 것은 참 슬픈 일이죠. 고민해야 할 것은 상품화가 아닌 형태로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