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 신화의 해체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Santiago Castro Gómez)
번역 김종규(서울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이론에서 식민주의 비판은 이미 위대한 전통을 자랑한다. 그 시작은 에드문도 오고르만, 로돌포 스타벤아겐, 멕시코의 파블로 곤잘레스 카사노바의 작업이다. 이들을 이어 에콰도르의 아구스틴 쿠에바스, 콜롬비아의 오를란도 팔스-보르다, 브라질의 다르시 히베이루, 아니발 핀토, 루이 마우로 마리니,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소, 그리고 다른 이론가들이 그 맥을 잇고 있다. 물론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 빅토르 라울 아야 데 라 토레, 호세 마르티, 로도 등과 같은 ‘고전적’ 라틴아메리카 사상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고르만의『아메리카의 발견』(Invención de América, 1958)과 팔스-보르다의『과학과 식민주의』(Ciencia propia y colonialismo intelectual, 1970)를 제외하면 식민주의의 인식론적 영역에 초점을 맞추는 작업은 극히 드물다. 위에서 언급한 이론가들의 대다수는 식민주의의 경제적,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들은 식민성을 다루지 않는 인문과학의 분과학문 패러다임의 틀 내에서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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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의 인식론적 토대를(nucleus) 강조하는 작업은 라틴아메리카 철학에서부터 등장했다. 나는 구체적으로 철학자 엔리케 두셀(사진)의 유럽중심주의 비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의 핵심인 인식론적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두셀의 해방철학에서 언제나 주요 문제였다. 1970년대, 두셀은 근대 철학에서 주체 문제가 정복을 통해 구체화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서구 형이상학에 대한 마르틴 하이데거의 비판을 출발점으로 취하면서, 두셀은 마르크스를 포함하여 모든 근대 유럽 사상에서 사상이 일상의 삶(“삶의 세계 world of life”)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따라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이성적 주체와 지식의 대상 사이의 관계와 같을 수 없음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두셀에 따르면 유럽의 ‘전체주의화’를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근대 사상에 의해 창조된 이런 주체-대상의 관계이다. 이 관계는 그 시작에서부터 지식에 대한 논의 가능성과 다른 문화 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지식의 형태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주체’와 지식의 ‘대상’ 사이에서는 오직 외부성(exteriority)과 비대칭(asymmetry) 위에 세워진 하나의 관계만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유럽문명의 핵심적인 특징인 “전체성의 존재론”은 그것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을(“exteriority”) ‘존재의 부재’와 ‘야만성’, ‘문명화’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런 방식으로 (인식론적 타자성을 포함한) 타자성(alterity)의 제거는 16세기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아프리카인에게 강요된 ‘전체주의 선언’(totalizing logia)을 구성한다. 이 선언은 스페인 정복자뿐만 아니라 크리오요 후손들에 의해 강요되었다.

해방의 포스트식민주의 사상에서 수행한 첫번째 중요한 작업은 유럽의 식민 정복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존재론의 (하이데거적 의미의) ‘해체’이다. 두셀은 오직 “전체성의 폐허 위에서만 라틴아메리카 철학의 가능성은 출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970년대 후반, 두셀은 자신의 기획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파괴해야 한다. 한동안 라틴아메리카 철학은 유럽중심주의의 벽을 파괴해야만 했다. 파괴로 생긴 구멍을 통해 새로운 역사적 과정은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다. ……. 우리 자신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해줄 새로운 범주들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유럽인처럼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유럽의 한계를 드러내고 유럽중심적 사상을 극복하여 새로운 것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유럽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사상을 아주 깊이 숙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유럽이라는 벽을 무너뜨리지 못한 채, 그 벽을 그냥 지나쳐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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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에 두셀은 그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재정식화하기 시작했다. 파괴할 필요가 있는 “벽”은 더 이상 하이데거(사진) 방식-그리스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확대해나가는-의 “존재론적 전체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성의 유럽중심신화라는 이름의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두셀에 따르면, 이 신화는 아메리카의 발견과 더불어 나타났고, 그 이후로 근대성에 대한 우리의 이론적, 실천적 이해를 다양한 방식으로 지배했다. 흥미롭게도 이 부분은 사이드와 유사하다. 사이드와 마찬가지로 두셀은 근대 식민주의가 그리스에서 유래하여 서구 역사 전반으로 확장된 ‘사상의 구조’에서 출발한 것임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후에 두셀은 윤리적, 인식론적 관점에서 근대 식민주의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정교화하기 위해 이런 메타히스토리를 포기한다.

두셀은 18세기부터 근대성은 자신의 기원에 대한 유럽중심적 신화를 발전시켰다는 새로운 테제를 제시한다. 이 신화에 따르면, 유럽은 기술과학적(technicoscientific) 합리성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고유한 내적 특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근대성의 유럽중심신화는 이런 식으로 유럽의 특수주의를 보편성과 동일시하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이것이 근대성의 신화가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기술적 해방의 성취라는 목표와 두셀이 ‘발전주의 오류’라고 부르는 것-이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도시는 유럽이 만든 ‘발전 단계’를 따라야 한다―을  수반하는 이유이다. 즉, 유럽 문명은 세계사의 ‘목적인’(telos)이 된다.

이런 헤게모니적 해석에 대응하기 위해 두셀은 대안적인 모델을 제안한다. 이는 그가 “행성적 패러다임”(planetary paradigm)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근대성은 세계체계의 ‘중심적’ 문화 이상의 무엇이 아니라, 16~19세기에 여러 유럽 국가들이 수행한 중심적 역할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두셀은 이는 근대성이 유럽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지구적 현상임을 의미하며 그 정확한 출현 시기는 1492년 10월 12일이라고 설명한다.

근대성은 독립적 체계인 것처럼 간주되는 유럽에 기반한 현상이 아니다. 단지 중심으로서의 유럽에 관한 현상일 뿐이다. 이 단순한 가설은 근대성의 개념, 기원, 발전, 현재의 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그리고 그 결과로 후기(late) 근대성과 포스트모더니티까지 바꾸어 놓는다. 게다가 세계체계에서 유럽의 중심성은 중세동안 축적된 다른 문화에 대한 [유럽의] 내적 우월성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발견, 정복, 식민화, 아메리카-인디오 통합(굴복)의 효과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은 오스만투르크, 인도, 중국에 대한 상대적이고 결정적인 이점을 유럽에 제공했다. 근대성은 이러한 사건들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유럽으로 하여금 세계사의 “반성적 의식”(근대철학)과 같은 무언가가 되도록 한 것은 바로 세계체계 내의 중심성의 통치(administration)이다. 심지어 자본주의조차도 유럽의 전 세계적 팽창과 세계체계의 집중화 사이의 결합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이러한 대안적 패러다임은 지배적인 시각에 대한 분명한 도전이다. 지배적 관점에 따르면, 아메리카의 정복은 근대성의 구성적 요소가 아니다. 왜냐하면 근대성은 종교개혁, 새로운 과학의 출현이나 프랑스혁명과 같은 순수하게 유럽 내부의 현상 중의 하나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스페인과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은 근대성의 외부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근대성을 의미하는 유럽적] 현상들 중 어떤 것도 스페인과 그 식민지에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러스틴을 차용한 두셀은 유럽의 근대성은 구체적으로 16세기 스페인의 영토 팽창으로 구축된 물질성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라고 부른 것을 가능하게 했던 원료와 노동력이라는 새로운 자원의 병합을 의미하는 새로운 시장의 개방을 초래했다. 근대 세계체계는 ‘주변부’로서의 히스패닉 아메리카와 ‘중심부’로서의 스페인이 동시에 형성되면서 시작된다. 따라서 식민주의와 근대성은 상보적 현상이다. 식민주의 없이 근대성이 있을 수 없고, 근대성 없는 식민주의도 불가능하다. 결국, 대서양 너머의 식민지들이 주변부가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유럽도 세계체계의 중심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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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중심은 어디? _ 지도를 어떻게 놓고 보는가에 따라 중심은 늘 변한다. 우리의 인식적 배치 속에서 '유럽'은 언제나 중심이었을까?

이 지점에 이르면, 두셀이 월러스틴의 세계체계 분석을 밀접하게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자세히 살펴보면 두셀이 단순히 월러스틴의 세계체계론의 틀 내에서 식민주의 비판을 전개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월러스틴을 해방철학의 관점에서 ‘읽고’ 있는데, 이는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성 논의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아마도 두셀이 월러스틴에서 가장 명확하게 ‘벗어난’ 지점은 아메리카 정복은 중심부 국가들의 ‘본원적 축적’ 가능성뿐만 아니라, 최초의 지구적 질서의 문화적 징후가 나타났음을 의미한다는 테제일 것이다. 월러스틴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아메리카의 정복은 지문화(geo-culture)의 출현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는 팽창하는 세계체계에 속하는 의식적, 인식적, 법적, 정치적, 윤리적 상징체계로 확대된 세계-근대성(world-modernity)의 최초의 지문화가 그 중심(epicenter)을 스페인에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16~7세기의 히스패닉 아메리카 세계가 세계체계에 기여한 것은 육체노동과 원료만이 아니라, 월러스틴의 믿음처럼 근대성의 지적, 도덕적, 정치적 기초이다.

사실, 두셀은 근대성이 두 개라고 주장한다. 첫번째 근대성은 16~7세기에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과 두 나라의 아메리카 식민지들에서 만연했던 인문주의 르네상스의 기독교적 에토스이다. 이 근대성은 세계체계 최초의 헤게모니 권력이었던 스페인에 의해서 지구적으로 관리되고 통치되었다. 이는 근대성에 대한 최초의 비판 이론뿐만 아니라 근대-식민 주체성의 최초의 형태를 발생시켰다. 두셀은 ‘타자(원주민, 흑인, 메스티소-아메리카인)’에 대한 배타적 지배 관계를 수립한 전사와 귀족을 ‘정복자 자신’으로 묘사하는 (엠마누엘 레비나스로부터 차용한) 매우 철학적인 용어로 이 주체성을 개념화한다. 첫번째 근대성의 ‘정복하는 자아’(ego conquiro)는 두번째 근대성의 ‘생각하는 자아’(ego cogito)의 원사시대(protohistory)를 구성한다. 두번째 근대성은 스스로를 유일한 근대성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근대성은 스페인의 붕괴와 새로운 권력(네덜란드, 잉글랜드, 프랑스)과 함께 17세기 말에서야 등장하기 시작한다. 세계체계 중심성의 통치는 이제 어디에서나 일어나서 효능(efficacy), 삶정치(bio-politics), 합리화라고 하는 긴요한 것들에 반응한다. 막스 베버와 푸코가 경탄스럽게 묘사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진화한 주체성은 부르주아지의 출현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형성에 상응하는 것이다.

이 글은 콜롬비아의 철학자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Santiago Castro Gómez)의 「꼭두각시들을 위한 (포스트)식민성: 근대성, 식민성, 지식의 지정학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시각 (Post)Coloniality for Dummies: Latin American Perspectives on Modernity, Coloniality, and the Geopolitics of Knowledge」에서 필자의 허락을 얻어 엔리케 두셀 부분을 번역한 것으로 다음 책에 실려 있다. Mabel Moraña, Enrique Dussel and Carlos A. Jáuregui(eds.), 『고삐 풀린 식민성』(Coloniality at Large), Durham &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08.

2010/07/16 01:23 2010/07/16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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