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현 온더로드>의 작가 유재현이 이번에는 미국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행이 끝나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서 기행의 흔적들을 먼저 연재하려고 합니다. 작가가 전하는 따끈따끈한 미국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글과 사진을 보내주고 계신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_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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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당도한 유럽인들이 마침내 태평양 연안에 도달했을 때 태평양을 건너 바로 그 신대륙에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중국인들이었다.

뱅쿠버의 차이나타운 손문공원 앞에 서 있는 기념탑은 바로 그 중국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기념탑의 좌우에는 두 명의 중국인 상이 서 있다. 왼쪽은 병사, 오른쪽은 노동자이다. 변변한 전쟁 한 번 치른 적이 없는 캐나다였으니 병사로 선 중국인보다는 노동자인 중국인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왼쪽의 중국인은 오른손에는 도시락을 들고 왼손으로는 삽을 어깨에 메고 앞으로 걷고 있다. 쿨리(苦力)의 상이다.

19세기 말이면 쿨리는 캐나다 뿐 아니라 미국의 서부연안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다. 남북전쟁 후 시작된 중국인들의 이주는 1900년이 되었을 때 1천2백만 명으로 늘었다. 1849년에서 1882년 사이 캘리포니아를 휩쓸었던 골드러시는 한편으로 쿨리의 러시이기도 했다. 1870년대 유럽에서의 대규모 이민이 시작되자 미국은 1882년 연방법으로 중국인들의 이민을 중단시켰다.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던 하층의 중국인들이 북미대륙에서 쿨리를 자청했던 이유는 기묘하게도 골드러시와 오버랩된다. 태평양을 건너 북미대륙에 발을 딛었던 중국인 쿨리들은 모두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었다. 골드러시에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던 동부의 하층 미국인들이 결코 꿈을 이루지 못했던 것처럼 쿨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땅에 남아 뼈를 묻었고 유산으로 차이나타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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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덩샤오핑의 시장개방 이후 북미에는 다시금 중국인들의 러시가 시작되었다. 번자체를 사용하는 이들 중국인들의 상당수는 유학생들이었고 중국공산당 관료들의 자식이거나 권세가들의 자식들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컨테이너에 실려 밀항을 감행한 중국인들이 있었다. 앞의 중국인들은 돌아가 시장사회주의 중국의 지배층을 이루었다. 뒤의 중국인들은 여전히 쿨리의 길을 걸었다.

미국에서
유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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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작가 소개 유재현 |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주대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했고, 그 후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에서 활동했다. 1992년 『창작과 비평』(봄호)에 중편소설 「구르는 돌」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인도차이나 3국(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을 여행한 기록을 모은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열대과일로 남아시아의 문화사를 풀어낸 『달콤한 열대』, 쿠바를 여행하며 만난 인간적인 사회의 가능성과 희망을 담아낸 『느린 희망』,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아시아 각국의 잊혀진 역사를 되돌아본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캄보디아인들의 삶을 통해 한국을 되돌아본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등과 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 『난 너무 일찍 온 것일까 늦게 온 것일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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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3 11:01 2007/11/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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