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선물 행위는 받는 사람의 기쁨을 상상하는 기쁨이다. 그것은 자신의 길에서 빠져나와 시간을 써가면서 무언가를 고르는 것, 즉 타인을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남을 잊어버리려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 선물 행위의 타락은 선물용 목록을 고통스럽게 미리 고안해 진열하는 것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이러한 고안 행위는, 사람들은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모른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 더 이상 선물하지 않는 사람들은 선물을 필요로 한다. 그들에게는 저 대체 불가능한 능력, 즉 순순한 내면성이라는 고립된 세포 속에서가 아니라 사물의 ‘온기’를 감촉할 때에만 번창할 수 있는 능력이 위축되는 것이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친절한 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배려 등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에는 ‘냉기’가 휘감돈다(테오도르 아도르노, 『미니마 모랄리아』, 김유동 옮김, 길, 2005, 64~66쪽).

20대 후반을 지나면서 ‘예의바른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예의 없는 것들’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아니고, 조금이나마 ‘윤리적’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저는 예의바른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아마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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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첼로연주가> _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은 관계를 맺을 때 생성되는 '부딪침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린비에서는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선물을 선사합니다. 생일자가 받으면 좋을 것 같은 물건을 각자 추천하고, 그중 하나를 골라 선물로 주는 것이죠. 현금이나 상품권으로 ‘때우는’, 혹은 구성원의 생일(꼭 생일이 아니더라도 여하간 구성원과 관련이 있는 사건들)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조직도 많은 걸 생각하면(아니, 그걸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는 참신하고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이 괜찮은 제도가 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도르노는 우리가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도르노 그 자신이 “사물의 ‘온기’를 감촉할” 수 있는 삶을 절실하게 갈구한 사람입니다. 나치의 악몽, 망명자의 삶, 모든 관계가 ‘비즈니스’가 된 현대사회라는 냉혹한 조건들 속에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친 현대사회에서는 ‘선물’조차도 불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그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혹시 내가 타인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졌습니다.

예의를 갖추고 타인을 대하는 것은 한편으론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적당히 거리를 두겠다는, 나아가 상대방에게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겠다는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예의바름과 적당한 거리두기,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을 때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 맺음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을 주체로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물로 대하는 것조차 못 되는 것이죠. 그리고 ‘예의바르게 살자’던 제 다짐은, 어떤 면에서는 윤리적 삶 따위에 대한 진지한 결심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멀리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견뎌 내는’ 매우 손쉬운 선택이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행하는 모든 것에 ‘냉기’가 휘감도는” 상태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가 요즘 저의 고민 중 하나입니다.

- 편집부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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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마 모랄리아 - 10점
테오도르 아도르노 지음, 김유동 옮김/길
2010/07/23 17:30 2010/07/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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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잇힝 2010/07/23 15:09

    그니까요! 마지막 문단의 마지막 문장!
    정말 고민이에요..

    • 그린비 2010/07/23 15:52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서 뜨끔(!) 했습니다.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든 이유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온기'가 감싸고 있는, 서로에게 선물인 관계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 보아요~ ^^

  2. 바타이유 2010/07/24 16:23

    불특정한 '대중'. 공기와도 같은 곳에 찔끔찔끔 관계를 맺는 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필요하고 가능하지만요.. 진짜로 옆에서 누가 썩어가도 '몰랐다'라는 말을 할 만큼 인간은 뻔뻔하고 이기적이잖아요. 저는 내면의 성찰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관계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넓힌 만큼 개별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깊어져야 마땅한데.. 굉장히 멋진 몇 안되는 인간들도 이렇게 살지 않지요. 무한능력자를 요구하는 것 또한 폭력 아닐까요. 그냥 혼자로도 온전해짐을 수행하는 것... 이걸 할 줄 알아야 남에게 선물도 주고 나눌 줄도 알지요. 지금은 부족하지만 부지런히 노력하고 좇아가고 부서지는 수많은 시간 속에 성장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기다려 줄'줄 알아야 하고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기다려 줄 수 있나요.
    상대방에게 갖는 관심이 진정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 먼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의무적으로 따라하는 관심 또는 본인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려는 관심은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폭력'이 없이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입니다ㅜ

    • 그린비 2010/07/26 10:06

      바타이유님 안녕하세요.
      때로는 한 사람이 타인은 완전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No' 라는 답을 떠올립니다. 어쩌면 타인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기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