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현 온더로드>의 작가 유재현이 이번에는 미국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행이 끝나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서 기행의 흔적들을 먼저 연재하려고 합니다. 작가가 전하는 따끈따끈한 미국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글과 사진을 보내주고 계신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_이세 그리고 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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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암트랙(Amtrack) 스테이션


오늘 북미 전역에서 중국인들을 볼 수 없는 지역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말하자면 중국식당이 없다면 북미에서는 도시로서의 자격이 없다. 10여 년 전과 달리 태국식당과 베트남 식당이 심심이 않게 눈에 띤다. 일본인들은 어떨까. 물론 대도시에는 여전히 일본식당들이 눈에 띠지만 일본인들의 존재감은 중국인들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인들에 비하면 희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1880년대 미국이 중국인들의 이주를 금지한 이후 미국의 북서부에는 일본과 하와이에서의 일본인 이주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 지역의 철도건설에는 일본인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들었다. 한때 미국 북서부 지역의 철도노동자의 40%가 일본인들이었다는 것을 그 역사를 반증한다. 말하자면 1880년대 이후 일본인들은 제2의 쿨리였고 그들은 이세(一世)라고 불렸다. 중국인 쿨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인 이세들은 철도노동자로 뿐 아니라 유타와 아이다호와 같은 지역의 사탕수수 농장에게는 중요한 농업노동력의 원천이었다.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하층 노동자의 처지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자영업을 일구었고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농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워싱턴과 오레곤, 유타와 아이다호, 와이오밍은 그런 일본인들이 퍼져나간 지역이었다.

바로 그 일본인 이세들에게 태평양 전쟁의 발발은 재앙이었다. 루즈벨트의 포고령 9066호에 따라 일본인들은 집과 땅을 빼앗기고 하루아침에 집단수용소로 향해야 했다. 그들 중 2/3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미국인들이었다. 재앙은 니세(二世)라 불린 일본인 2세들에게는 더욱 참담한 경험이었다. 이세와 니세들 중 일부는 미국연방정부의 처사에 저항했고 수용소가 아닌 감옥 신세를 져야 했다. 니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충성을 인정받기 위해 미군에 자원했다. 미군은 그들을 홍보용으로 이용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미군은 또 니세들을 이용했다. 인민군 포로들을 심문하는 데에 필요한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미군은 니세를 동원해 일본어를 매개로 포로를 심문했다. 대만의 장개석 국민당군을 동원해 중국인민지원군 포로들의 심문에 이용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미국에서
유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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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작가 소개 유재현 |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주대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했고, 그 후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에서 활동했다. 1992년 『창작과 비평』(봄호)에 중편소설 「구르는 돌」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인도차이나 3국(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을 여행한 기록을 모은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열대과일로 남아시아의 문화사를 풀어낸 『달콤한 열대』, 쿠바를 여행하며 만난 인간적인 사회의 가능성과 희망을 담아낸 『느린 희망』,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아시아 각국의 잊혀진 역사를 되돌아본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캄보디아인들의 삶을 통해 한국을 되돌아본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등과 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 『난 너무 일찍 온 것일까 늦게 온 것일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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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3 18:19 2007/11/2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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