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맑스주의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맑스주의 역사 강의』 편집 후기


지금이야말로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견해, 자신들의 목표, 자신들의 지향을 전 세계 앞에 공공연하게 표명하여, 공산주의의 유령이라는 소문에 당 자신의 선언으로 맞서야 할 시기이다(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주의 선언』, 김태호 옮김, 박종철출판사, 1998, 무려 1쪽).

1848년 2월, 맑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자 동맹’의 강령으로 발표한 『공산당 선언』의 첫 부분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공산주의가 유럽 모든 세력에게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지금이야말로 “자신들의 견해, 자신들의 목표, 자신들의 지향”을 전 세계적으로 표명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당시의 공산주의자 동맹은 강력한 조직도 아니었고, 맑스와 엥겔스 역시 별다른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 청년들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맑스의 사상과 그 뒤를 이은 맑스주의는 유럽에서, 그리고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1917년의 러시아를 필두로 세계 각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했고, 20세기 말까지 현실에서 맑스의 사상을 이념으로 삼은 정치체제가 설립·유지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속적으로 내적·외적 비판과 압력을 받아 온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1990년을 전후해 붕괴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이념은, 그리고 그 원천을 이루었던 맑스주의라는 사상도 한물갔다는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라고들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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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기념 포스터 _ 노동자, 농민, 군인들의 '소비에트'. 무산자들의 공동위원회로서의 '소비에트'는 정말 20세기 후반에 멸망한 것일까?

1981년에 태어나 2000년에 스무 살을 맞이했던 제겐 그 이후의 스토리가 익숙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대다수 분들도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에도 역사는 계속 움직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도 다양한 이념이 등장했고, 시대를 뒤흔든 사건들도 여럿 발발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역사적인 체제이며 이와는 다른 원리의 사회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접하기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현존하는 사회가 이런저런 문제점을 지니고 있고, 따라서 그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체제 자체를 폭파시켜야 한다는, 또 그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얼마 전까지 많이 볼 수 없었습니다.
확실히 ‘많이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또 달라진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도래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이 위기가 너무나 커서 자본주의의 존속 가능성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또 무엇인지 저는 아직 잘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어떤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위기감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태가 더욱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 모순이 첨예해지고 있다는 것은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맑스가 다시 불려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맑스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칩니다. 어떤 이는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그의 비판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저 같은 사람은 도대체 맑스가 무슨 주장을 펼쳤는지, 맑스주의의 역사 속에서 어떤 시도가 있었고 어떤 논쟁이 벌어졌는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를 위해 남겨진 유산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편집 후기의 서두가 길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배경 설명이 어느 정도는 이 책의 의의를 전달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는 많은 대중에게 필요한(저도 그 대중의 한 명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접하기 힘들었던 주제를 다루는 책입니다. 이 책의 집필 의도는 간단합니다. “맑스주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역사 속에서 맑스주의와 관련해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저는 이 책을 편집하면서 맑스주의에 대한 여러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히 알게 된 건, 제가 그동안 ‘맑스주의의 역사’에 무지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저도 맑스를 좋아합니다.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편집하면서 제가 맑스주의의 역사를 너무나 몰랐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도 놀랄 정도로 맑스주의의 역사에 무지했습니다. 물론 이는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첫째로 우리 사회에서 맑스는 여전히 불온한/불길한 사상가입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진 덕택에 맑스의 사상이 어느 정도 해금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아직 비어 있는 부분(적어도 제가 느끼기엔)이 너무나 많습니다. 맑스주의의 역사도 그중 하나입니다. 둘째로 ‘맑스주의의 역사’는 결국에는 실패한 역사, 나아가 재앙만을 낳은 역사라는 통념이 아직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맑스주의의 역사는 되돌아볼 가치가 없는 역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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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당시 중국공산당원들에게 연설 중인 마오쩌둥. 중국 역사상 어떤 군대에도 없었던 규율, '인민에게 손을 벌리지도, 착취하지도 말 것'을 지켜나갔던 홍군(紅軍)이 중국인들에게 준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교훈을 주지 않는 역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맑스주의처럼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자본주의를 비판한 사상의 경우, 현실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을 낳은 사상의 경우, 그 역사를 되돌아보는 건 더더욱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맑스주의 역사 강의』는 이런 시도들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또 어떤 한계를 지녔는지를 알려 주는 책입니다.
맑스주의는 대중과 관련되어 있는 사상, 좀 더 과감하게 말하면 대중을 위한 사상입니다. 그리고 대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를 촉구하는 사상입니다. 이건 매우 당연한 사실이지만, 저만 해도 그동안 별로 자각하지 못한 원칙입니다. 이 책은 일반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였습니다. 그런 서술 원칙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중요한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이론, 모든 책이 쉬울 필요는 없고, 그게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처럼 쉽고 친절한 입문서 한 권 없다면, 그것 또한 비극일 겁니다.

저자인 한형식 선생님은 「나가면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강의는 너무나 많은 내용을 한정된 분량 안에서 쉽게 전달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말할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뺄 것인지가 큰 고민이었습니다. …… 부정확한 내용도 분명히 발견될 것입니다.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불러일으키거나, 이 보잘 것 없는 책의 오류를 바로잡는 더 좋은 책을 쓰도록 연구자들을 자극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421쪽).

단순한 겸양의 표현, 혹은 의례적인 마무리라고 볼 수도 있을 내용입니다. 그리고 대략적으로 잡아도 150년이 넘는 맑스주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그것도 이해하기 쉽게 담는 과정에서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도 당연히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이 책의 의의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에겐 이런 책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맑스주의에 대해 부정확한 지식들, 많은 오해를 갖고 있는 우리 세대가 새롭게 불려나오는 맑스의 사상과 맑스주의에 입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친절한 책 한 권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이 책에서 맑스주의를, 세상을 바꿔 나가려 한 사상과 운동의 역사를 탐사하기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맑스주의라는 유령’이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형태들을, 그것이 현재까지 미치고 있는 영향들을, 그것으로부터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데 받을 수 있는 도움들을 좀 더 잘 알게 될 듯합니다.

- 편집부 김재훈
2010/07/30 10:03 2010/07/3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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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미예 2010/07/30 10:39

    한때 불온서적 취급을 받았는데 참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잘보고 갑니다.

    • 그린비 2010/07/30 13:52

      맑스의 '무언가'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기 때문에 그런걸까요? ^^

      세미예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