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재밌는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보수단체가 오바마 대통령을 히틀러와 레닌에 비유한 옥외광고판을 설치했다는 기사입니다. 그 광고판에선 세 사람을 모두 ‘사회주의자’로 묘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레닌의 사상과 정책은 ‘맑스주의적 사회주의’로,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로, 그리고 오바마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라고 명명하고, 앞의 두 사람이 인류 역사의 크나큰 악몽임을 상기시키면서 그 둘과 비슷해지고 있(다고 그들이 판단하)는 오바마의 정책 ― 직접적으로는 의료보험 제도의 개혁과 자동차 대기업에 대한 지원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 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죠(기사 원문 보러 가기). 저의 경우에는 『맑스주의 역사 강의』에, 마치 이 광고판을 본 뒤에 쓴 듯한 내용이 들어 있어 더더욱 흥미로운 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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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성향 유권자 모임인 '티 파티'의 한 그룹이 설치한 옥외광고판 _ 히틀러, 레닌 사이에 오바마를 배치하고 "급진적 지도자들은 두려움 많고 순진한 사람들을 먹이로 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냉전 시대가 되면서 독재 대신 전체주의(Totalitarianism)라는 말이 많이 쓰입니다.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공산주의잖아요. 그런데 공산주의자들도 자기들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자라고 말하고, 자본주의자들도 같은 주장을 합니다.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는 곧 독재 대 민주주의라는 구도로는 이 문제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또 이 대립구도는 결정적으로 파시즘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파시즘은 당연히 민주주의와 대립합니다. 그리고 파시스트들이 공언하는 적은 공산주의입니다. 그렇다면 파시즘과 대립하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한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파시즘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본질은 자본주의잖아요. 독재(=공산주의) 대 민주주의(=자본주의)라고 해버리면, 공산주의 반대를 모토로 발흥한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편에 있게 됩니다.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보면 자기들이 아주 끔찍한 독재를 했던 히틀러 같은 부류하고 가까운 세력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단 말예요. …… 그래서 자본가들에게는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하나로 묶는 용어가 필요했습니다. 이 둘을 하나로 묶어서 새로운 구도를 만들기 위해 고안된 용어가 ‘전체주의’입니다(『맑스주의 역사 강의』, 35쪽).

위 기사가 제가 인용한 부분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것에 놀랐습니다. 저 보수단체는 레닌과 히틀러를 한데 묶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대표하는 정치체제들을 함께 지칭하기 위해 고안된 단어가 바로 ‘전체주의’죠. ‘전체주의’라는 단어는 이 두 세력이 미국 및 서유럽 중심의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세력과 대비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냉전 시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맑스주의 역사 강의』에 따르면 이런 설명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그들 사상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국가사회주의는 그 단어가 풍기는 향기와는 달리 ‘자본주의’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체제입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듯, 히틀러를 비롯한 국가사회주의자들이 가장 주요한 적으로 설정한 세력은 현실의 ‘사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국가사회주의·파시즘 체제가 친연성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현실에서도 서유럽의 지배계급은 공산주의보다 파시즘에 훨씬 더 우호적이었습니다. 히틀러가 서구 국가들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35쪽).

‘전체주의’라는 단어는 이런 맥락 속에서, 즉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하나로 묶는 용어”가 필요하다는 판단 속에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그리고 ‘파시즘과 사회주의(공산주의)는 모두 전체주의다’라는 식의 이해방식은 냉전 시기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팽배한 것 같습니다. 물론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독재, 관료화, 대중의 억압 등의 문제들이 심각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런 면에서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과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의 파시즘 국가들이 공통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그런데 하나 궁금한 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선 과연 저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하지만 무시해선 안 되는 것은, 저 두 체제의 이념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좀더 한정해 말하면 맑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다른 체제로 전환하려 했습니다. 국가를 없애려 했고, 평등하면서도 자유로운 사회(생산관계와 사회관계를 변혁함으로써 가능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는 모든 것을 단번에 규정해 버리는 ‘전체주의’라는 명쾌한 표현에 의해 가려져서는 안 되는 맑스주의 고유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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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스탠버그, <파시즘> _ 머리가 세개인 괴물인 파시즘은 학문, 예술, 종교의 상징물들을 밟고 지나간다. 그림 속 가득 차 있는 감정들은 무엇일까?

이 기사와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겹쳐 읽으면서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는 용어들이 사실은 역사 속에서 어떤 의도하에 창안된 것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한 용어, 어느 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국면에서 생성된 것인지, 그것이 어떤 역사를 갖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에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사상으로서 맑스를 읽는 것, 그리고 맑스주의의 역사를 알아 나가는 것은 바로 이런 통념들과 거리를 두는 데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그만큼 많은 노력, 날카로움과 섬세함이 필요하겠지만요.

- 편집부 김재훈



2010/08/09 10:18 2010/08/0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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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윤호 2010/08/09 18:37

    요며칠 히틀러에 관련된 영화, 다큐, 책들을 읽어본터라 이 글이 더 재밌게 읽혀졌습니다. 말씀한신바도 이해되구요.

    그런데, 다른 둘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용어의 위험성도 있겠습니다만, 그 다른 둘의 위험한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개인보다는 사회에 대한 기여를 강조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한 '전체주의'적 모습으로 뽑아낼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발화자의 의도에 따라 굉장히 '지멋대로' 활용되어버리고 있는 탓에 이렇게 얘기해 뭐하나 싶기도 하네요. (우리나라의 '좌파'? ㅎㅎ)

    • 그린비 2010/08/09 19:52

      안녕하세요.
      저도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를 비교적 최근에 읽었습니다. 만화 속 히틀러는 제가 듣던 아돌프 히틀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고 그 점이 흥미롭더군요. (비록 픽션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냥 듣고 쓰는 용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