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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라이히(1897~1957)라는 양반이 있습니다.(오른쪽 사진) 이 양반, 한때는 ‘성격분석기법’1)이라는 혁신적인 기법을 통해 프로이트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을 정도로 정신분석 분야에서는 잘나가던 양반이었습니다. 또 1928년 공산당에 입당한 이후로는 공산주의 운동에도 열심이었는데, 주로 좌파의료조직에서 일하면서, 성 위생 상담소 개설, 피임, 낙태, 출산 등에 대한 성교육 등의 활동을 주로 했답니다. 하지만, 때는 20세기 초반! 그런 성적인 급진성이 받아들여지기에는 이른 시기였습니다. 라이히가 공산주의 활동을 시작할 즈음부터 프로이트는 ‘죽음충동’에 천착하기 시작했고, 성적인 요소들을 정신분석의 중요한 문제들로 다루고 있었던 라이히는 이런 프로이트와 척을 지기 시작합니다. 공산당 역시 성적으로 너무나 급진적인 라이히의 저작들과 활동들을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구요. 결국 1933년에는 공산당에서, 1934년에는 국제정신분석협회에서 추방되고 맙니다.

당대에 이렇게 배척당하던 빌헬름 라이히의 이름을 후세에 전한 건, 『파시즘의 대중심리』라는 한 권의 탁월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33년! 라이히로서는 여기저기에서 뒤통수를 얻어맞고 있었던 해이고, 히틀러에게는 수상이 되어 일당독재를 확립하던 승승장구의 해였습니다. 이런 공사다망한 해에 라이히는 파시즘의 본질을 꿰뚫는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대중은 왜 억압을 욕망하는가?”, “왜 가난한 대중은 공산당이 아니라 파시즘에 환호하는가?”라는 질문에 라이히는 명쾌하게 대답합니다. 그건 꼰대들 때문이라고. 말라비틀어져 ‘성적 능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꼰대들이2) 우리에게 ‘참으라며, 그건 나쁜 짓이라며’ 수천 년을 참견해 온 탓이라고. 그래서 히틀러가 까만 옷 맞춰 입고 우쭐거릴 수 있도록 ‘민족’/‘국가’라는 남근을 던져주자마자 대중은 휘리릭~ 파시즘에 동참해 버린 것이라고…….3)

자~ 여기까지가 1막입니다. 뒤통수를 많이 맞다보면, 머리가 많이 이상해질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특히 라이히 같은 ‘천재’들은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한 듯도 합니다. 어쨌든 공산당과 정신분석협회에서 축출당하고, 파시즘으로 인해 망명생활을 시작하면서 라이히는 피해망상/과대망상 속으로 치닫는 2막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 시작은 오르곤 에너지의 발견입니다.
1935년부터 1939년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라이히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 머물면서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적인 성격을 지닌 소포(작은 거품)를 발견하고 여기에 비온(bion)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비온은 아직까지 라이히를 추종하는 오르곤 연구자들에게만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걸 배양하면 여기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방사되어 나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걸 ‘오르곤 에너지’라고 불렀고, 이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는 오르곤 집적기를 발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1939년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이 오르곤 에너지 개념은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근원적 에너지’로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4)

언뜻 오르곤 에너지는 추상적인 개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사실 라이히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물리적 현상으로 오르곤 에너지를 파악하면서, 여러 실증적(?)인 사례를 들기도 합니다. 가령,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청자색의 작은 빛들이 나타나서 나선운동을 하면서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데 감은 눈자위를 손으로 부비면 그 섬광이 더 진해진다든가, 하얀 스크린을 가만히 바라보면 희뿌연 안개 같은 것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든가, 또 푸른 하늘을 한참동안 바라보면 파도같이 흔들리는 빛이 보인다든가… 등등. 라이히는 이런 빛들을 더 잘 관찰하기 위해, 직경이 5cm 길이가 30cm 되는 속이 검은 통을 만들어 대기 속의 빤짝임을 관찰하기도 했답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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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히는 우주에 오르곤 에너지가 충만하며,  이를 통해 중력, 은하계, 하늘의 색깔, 대부분의 정치혁명의 실패, 좋은 오르가즘 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르곤 에너지는 오르곤 에너지를 믿는 사람들만이 실증할 수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렇게 우주 전체에 편재하는 오르곤 에너지를 발견했으니, 당연히 그 에너지를 활용할 방안을 고민하게 됩니다. 생체에서 처음 발견된 에너지이니, 병을 고칠 수 있는 건 기본이겠지요. 그래서 라이히는 전화박스보다 조금 작은 오르곤 집적기를 만들어 냅니다.6) 그 안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쉬면 다양한 질병이 치료되고 몸이 좋아진다는 것7)으로, 라이히가 훗날 미국 FDA에 의해 구속되는 것도 이 장치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오르곤 에너지를 관측할 수 있는 장치, 오르곤 에너지를 특정한 방향으로 쏠 수 있는 장치 등을 개발합니다. 그러다가, 비를 내릴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원자력 에너지가 이슈로 떠오르자, 라이히는 오르곤 에너지로 방사능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을 하게 됩니다(암요. 당연합니다. 암도 고치는데요). 그래서 방사능 물질을 조금 사다가 오르곤 집적기에 넣어보았는데, 당연히 방사능이 현저하게 줄어듭니다(이 실험을 오라누르 실험이라고 한다네요). 문제는 그 다음인데, 그 실험을 했던 사람들이 극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시달리고, 부정적인 감정에 휘말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실험을 한 연구소 일대의 하늘에는 계속해서 기분 나쁜 먹구름이 떠 있었고, 호수에는 파도조차 일지 않았다고 하네요. 새도 지저귀지 않고, 개구리도 울지 않고, 나뭇잎은 탄력을 잃어 슬퍼 보였다고 합니다. 라이히는 이를 생명 에너지인 오르곤 에너지에 핵 방사능이 결합하여 파괴적인 에너지로 변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여기에  ‘DOR'(Dangerous Orgone)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하늘에 항상 떠 있는 먹구름은 이 DOR가 응집해 있는 것이구요(뭐 이쯤 되면 SF 소설 수준입니다).

DOR의 영향으로 사람들도 떠나고 황폐해진 연구소. 라이히는 먹구름과 싸우기 위해 혼자서 연구소로 돌아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이히는 좁은 금속제 파이프를 먹구름을 향해 설치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하자 DOR 먹구름은 눈에 띄게 작아집니다. 여기에 고무된 라이히는 이 금속제 파이프에 수도관을 연결하고 그걸 우물에 연결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먹구름의 DOR 에너지가 장치를 통해 우물 속에 ‘봉인’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라이히는 대기 속의 오르곤 에너지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발명했는데, 이 장치는 곧 비를 내리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맑은 하늘에 이 장치를 설치하면 대기의 오르곤 에너지를 빨아들이면서 오르곤 에너지 흐름이 불안정해지고 구름이 몰려들게 된다는 거였습니다.
이런 일을 하다가 결국 미국 FDA에 체포되었고, 법정에서 법이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판단할 수 없다고 항변하다가 법정모독죄로 3년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옥 생활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구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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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 <거북이 비 춤> _ 비를 기원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기우제, 하단에 비를 상징하는 거북이와 구름, 번개가 그려져 있다. 인디언들은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하기 때문에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라이히가 연구활동 초기에 보였던 명민함은 후기로 가면서 씁쓸한 우스갯거리로 변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마냥 비웃을 일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젊었을 때 명민함을 보였던 사람들이 과도한 찬사나 비난 속에서 요상한 길로 걸어들어가는 일이야 비일비재 하니까요. 뭐 꼭 유명한 사람들뿐이겠습니까? 요즘 10대 아이들 머리 스타일만 보아도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게 되는 저 자신부터가 마음속에 꼰대들을 키워 가고 있는 것을…….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그리고 그 사람들의 비판이나 찬사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명철하게 알아보는 눈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외로움이 심하고, 지위와 체면 때문에 던지는 찬사에 쉽게 현혹되고, 비판은 지위와 권위로 쉽게 누르려 하는 사람들이 바로 말년의 라이히처럼, 혹은 허경영처럼, 혹은 2MB처럼 되는 것이 아닌가……생각해 봅니다.

- 편집부 박순기

1) ‘성격분석’이란 “성격상의 장애가 없는 신경증은 없다”라는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즉 모든 신경증은 그 성격에서도 드러난다는 것! 평소 “원래 버릇이야”, “내 성격이 원래 그래!!” 따위의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 성격의 병적 뿌리를 돌아봐야 하겠지요?!

2) 물론 꼰대들도 스스로 ‘성적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뚫고, 패고, 감시하고, 구속하고……’. 꼰대들의 ‘성적 능력’이란 오히려 무궁무진해서 누구나 가슴속에 꼰대의 능력 하나씩은 품고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만.

3)
간단하게 추리다 보니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어 덧붙이자면, 이 책 대단한 책입니다. ‘대중들의 비합리적인 성격구조’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복합적으로 분석해 냈다는 이론적인 탁월함에서도 그렇지만, 파시즘이 당대의 독일과 이탈리아에 국한된 특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라이히의 시야는 당대 독일뿐 아니라, 자본이 나눠준 빨간 티셔츠를 입고 ‘단체로’ 리비도를 발산하는 ‘2010년 여름 한국’의 모습까지도 담아내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린비에서 나온 『오르가즘의 기능』도 강추입니다.

4)
오르곤 에너지는 동양의 기(氣) 개념과 비슷한 측면이 많습니다. 철학용어인 ‘기’ 개념이 요상한 ‘초인술’ 같은 데로 연결되기도 하듯이, 오르곤 에너지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가령, 비를 내리게 한다든가, 암을 고친다든가, 사악한 기운을 쫓는다든가 등등.

5)
당연히 착시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겠지요. 하지만 라이히는 “볼록렌즈를 끼워봤더니 그 빛도 확대되어 보이더라”라고 합니다. 뭐 이런 식의 관찰이 ‘과학자’라 자칭하는 사람이 할 일인가 싶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위대한 발견은 미친 짓에서 시작되기도 하니까요.

6)
‘오르곤 집적기’라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별 건 아닙니다. 나무와 금속의 오르곤 에너지 전도율이 달라서 나무와 금속을 번갈아 여러 겹 붙여서 상자를 만들면 그 안에 오르곤 에너지가 모인다는 겁니다. 뭐 라이히의 장비라는 것들이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나중에 발명한 ‘비 내리는 기계’인 ‘클라우드 버스터’도 대포처럼 생긴 금속제 파이프를 우물이나 저수지로 연결해 놓는 소박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7)
모름지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면” 사이비가 분명합니다. 오르곤 집적기로 병을 고치는 순간, 라이히도 사이비의 구렁텅이로 떨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가 라이히의 마지막 책이 『그리스도의 살해』라는 것도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8)
미국 당국은 라이히를 구속했을 뿐만 아니라, 저서와 연구 성과들을 태우버리기도 합니다. 라이히의 연구 성과보다 미국 당국의 이런 과도한 대응이 오히려 ‘라이히에게 뭔가가 있나?’라는 의문을 생기게도 합니다. 실제로 라이히를 계승한다고 하는 이들도 이 음모론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2010/08/10 09:34 2010/08/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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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섬연라라 2010/08/10 11:15

    믿는 자들에게만 증명되는 오르곤 에너지라.. 왠지 시크릿 읽으면서 웃었던 기억이...'ㅁ'

    • 그린비 2010/08/10 12:01

      아직 저도 보질 못해서, 궁금합니다. (일단 믿어야겠죠? ㅠㅠ)

  2. 책쟁이 2010/08/10 11:57

    흠 저도 오르곤 에저지의 실체를 보았는데, 눈감고 있으면 눈동자위로 떠다니는 섬광들. - -; 저도 제정신 아닌건가요?

    • 그린비 2010/08/10 12:03

      밝은 곳에 있다가 눈 감으면 보이곤 하는 그 빛!
      그 빛의 정체가 오르곤 에너지라고 하기엔 발견이 너무 쉬운듯...한 건 기분 탓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