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긍정적 감응을 통해서 정의된다는 것은 만남을 통해 서로 능력의 증가를 야기하는 관계임을 의미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긍정적 감응, 혹은 기쁨의 감응을 야기하는 만남과 촉발, 그것은 능력의 상승을 통해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정의 정치학을 작동하는 가장 일차적인 요소는 타자를 긍정적으로 촉발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친구가 지닌 장점을 좀 더 밀어붙여 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가 지닌 단점을 넘어서게 비판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에게 없는 어떤 것, 그러나 그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스승이 될 수 없는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니고, 친구가 될 수 없는 스승은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 이진경, 『코뮨주의 선언』, 87쪽

요즘 무한도전 레슬링 편을 재미있게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정도 서로의 '합'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기술을 거는 사람이 다 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을 거는 사람과 기술을 받는 사람의 역량이 5:5로 두 사람이 함께 그 기술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특히 기술을 받는 사람은 거는 사람을 믿고 몸을 맡겨야만 둘 다 덜 힘들고,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우정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정은 둘이 함께 하는 것이지,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거죠.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혼자만 애쓴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겁니다. 특히 기쁨의 정서를 상승시키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합'이 더욱 중요하지요. 친구에게 어떤 것을 요청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 친구에게 도움을 되는 것. 그로 인해 친구가 기쁨을 느꼈다면, 그 기쁨이 자신에게 돌아오고 두 사람의 기쁨은 더욱 상승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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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이었던 서태웅과 강백호의 '합'이 맞았던 명장면! 두 사람의 역량이 상승하고, 그것이 기쁨으로 이어지는 좋은 예가 아닐까?

'나는 왜 합이 맞는 친구가 없을까' 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합이 잘 맞는 친구가 된다면 어떨까요? 합이란 단지 공통성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질성까지도 맞출 수 있는 행동을 뜻합니다. 친구의 장점을 극대화 시키고, 단점을 넘어설 수 있도록 비판하고, 그에게 없는 것도 제공할 수 있는 능력! 우정도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 마케팅팀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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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주의 선언 - 10점
고병권.이진경 지음/교양인
2010/08/12 10:26 2010/08/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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