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현 온더로드>의 작가 유재현이 이번에는 미국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행이 끝나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서 기행의 흔적들을 먼저 연재하려고 합니다. 작가가 전하는 따끈따끈한 미국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글과 사진을 보내주고 계신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_Draft Dodger - 영장을 불태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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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Nelson). 흐린 하늘 아래의 단풍과 호수

뱅쿠버를 떠난 것은 늦은 오후였을 텐데 넬슨(Nelson)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경이었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주(州)의 동서 사이에는 그쯤의 시간이 놓여 있었다. 늦은 아침. 넬슨의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하지만 그 아래 가을의 황금빛으로 수를 놓은 쿠트니(Kootnay)산과 호수는 흐린 날씨에도 작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산중의 호수 옆에 자리 잡은 넬슨은 그렇게 눈앞에 나타났다. 인구 1만 명의 작은 도시 넬슨은 저항자의 도시(Resister's city)로 불린다. 거리는 고적하고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는 넬슨의 거리에서는 '저항'을 연상할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거리의 가로수 가지들에 매달린 붉은 잎들이 그나마 저항하고 있을뿐이다.

넬슨이 저항의 도시로 불리게 된 것은 이라크전쟁에서 탈영한 미군 병사들이 도피처로 택하면서인데 이라크전 탈영병들이 굳이 넬슨을 찾은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5-1973년 2차 인도차이나전쟁(베트남전쟁) 당시 징병을 거부한 미국의 청년들은 영장을 버리거나 불태우고 캐나다로 향했다. 5만에서 12만5천 명으로 추산되는 징병거부자들이 정착한 곳 중의 하나가 넬슨이었다. 그들 모두는 캐나다인이 되어 캐나다 전역에 새로운 삶의 뿌리를 내렸다. 1977년 미국 대통령 카터는 징병 거부자에 대한 사면령을 승인했고 그들 중 절반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시 징병 거부자들의 캐나다 이주는 미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대규모의 정치적 이주로 기록되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이주 또는 이민으로 말하지만 사실은 정치적 난민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었다.

2006년 7월 넬슨에서는 '고향으로의 길(Our way Home)'이란 이름 아래 징병거부자들의 재회를 위한 행사가 열렸다. 남은 자와 돌아간 자들의 재회를 주선하는 행사였고 전쟁을 반대했던 자신들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행사이기도 했다. 주최측은 당시 캐나다가 징병거부자들을 따듯하게 받아들였던 일을 모티프로 한 작은 동상을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행사도 계획했는데 이 모든 일들은 예상외로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 미국의 폭스뉴스가 이 행사를 보도했고 직후부터 이른바 참전용사들을 중심으로 미국에서는 캐나다를 비난하는 발언과 집회들이 줄을 이었다. 문제는 동상이었다. 한 명의 캐나다인이 국경을 넘어오는 미국 젊은이 두 명을 환영하는 이 동상을 공공장소에 설치하기로 한 것을 두고 캐나다가 미국의 반역자들을 받아들인 일을 공공연히 고무한다는 비난을 산 것이다.

캐나다는 미국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동상의 공공장소 설치 약속을 없었던 일로 했다. 덕분에 넬슨 근처의 캐슬가(Castlegar)시의 박물관에 전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동상은 보금자리를 잃었다. 내가 넬슨을 찾은 것은 바로 그 동상을 보기 위해서인데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넬슨시의 비지터 센터에서는 동상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소재불명이라는 답을 얻었다. 동상이 보관된 것으로 기록된 마지막 장소인 사설 미술관은 문을 닫았다고 했다.

"어디에 있지요?"

짐짓 애절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던 여직원은 문제의 재회 행사를 조직했던 아이삭 로마노(Issac Romano)를 소개해 준다.

"동상은 어디에 있지요?"

아이삭도 이리저리 전화를 돌린다. 미술사에는 팔자가 기구한 동상이 적지 않지만 이 동상도 그 중의 하나이다. 동상은 결국 조각가인 나오미 루이스(Naomi Lewis)가 보관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어쨌든 만날 수 있겠다고 기대했지만 동상의 주인인 나오미 여사께서 출타중이라 연락이 닿지 않는단다. 고민 끝에 여정을 지체하기로 했지만 나오미 여사를, 아니 동상을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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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들고 있는 아이삭 로마노(Issac Romano)

동상이 겪고 있는 비루한 처지는 이라크전쟁을 거부하고 캐나다로 몸을 피한 탈영병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보수당이 집권한 캐나다는 이들에게 이전의 온정을 베풀지 않는다. 이들이 캐나다 영주권을 얻으려면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난민으로의 지위를 얻어야 한다. 마침 넬슨시의 지역신문은 토론토에서 넬슨에 온 탈영병 한 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난민 신청자들은 관계당국에 신고하지 않고는 정해진 주거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이다.

나오미의 동상에 붙여진 이름은 '환대의 평화상(The Welcoming Peace Sculpture)'. 더 이상 환대는 없는 셈이다.

미국에서
유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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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작가 소개 유재현 |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주대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했고, 그 후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에서 활동했다. 1992년 『창작과 비평』(봄호)에 중편소설 「구르는 돌」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인도차이나 3국(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을 여행한 기록을 모은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열대과일로 남아시아의 문화사를 풀어낸 『달콤한 열대』, 쿠바를 여행하며 만난 인간적인 사회의 가능성과 희망을 담아낸 『느린 희망』,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아시아 각국의 잊혀진 역사를 되돌아본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캄보디아인들의 삶을 통해 한국을 되돌아본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등과 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 『난 너무 일찍 온 것일까 늦게 온 것일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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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7 11:19 2007/11/2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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