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맹자, 순자, 노자, 장자, 한비자, 묵자,……
‘자’(子)자 돌림의 옛날 고전들은 재미없게 읽힐 때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聖人)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역시도 평상시 그런 사람이 없는데 어찌 상상하기 쉽겠는가?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 그것도 어렵지 않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 내용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없다. 여간한 집중력이 아니고선 그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는 이렇게 오래된 고전을 오늘날 내 삶의 문제로 갖고 오지 못한다는 것. 다른 많은 책들이 한낱 스러지는 먼지뿐인 말들이 되는 것도, 위대한 철학이 어쭙잖은 지식 몇 개 남는 거 말곤 허공으로 흩어질 뿐인 것도, 읽은 내용을 내 삶의 문제로 가지고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드문 일이 아니어서 나는 『맹자』를 읽을 때 열심히 듣고 있다 생각할 때조차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듯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오랜 세월 반복된 듯싶은데... 그러다 문득 내게 매우 강한 경고, 혹은 번뜩이는 깨달음이 일어났다. 다음의 일화를 들으며 정신이 번쩍 뜨인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에 맞는 행동을 하는 사람(중도의 선비)을 찾아 교류할 수 없다면 반드시 광자(狂者)와 견자(狷者)와 함께하여야 한다. 광자는 뜻이 높아 진취적이고, 견자는 절대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논어』, 「자로」, 21장)
공자는 광자와 견자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그들과 함께하라고 주문한다. 현실에서 중용에 맞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달리 보면 광자와 견자는 그 단점 또한 쉽게 드러나는 인물이다. 광자는 자신의 현실적인 능력 이상으로 지향이 큰 사람, 이상은 크지만 실천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평소 모습은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이지만, 실제 일을 행함에는 부족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견자는 도덕적이고 엄격한 면을 갖고 있지만, 자신의 행위가 행여 도(道)에 어긋날까 전전긍긍하느라 자신의 능력보다 스스로 위축되어 있는 소심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릇을 기준을 말한다면, 광자는 넘치는 사람, 견자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홍도, <서당> _ '고전 공부'를 생각할 때 서당의 이미지가 연상된다면, 그만큼 고전과 우리의 삶의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또 한 인물형이 있다. 그것은 향원(鄕愿)인데 글자 그대로 풀면 ‘동네에서 신실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라면 분명 좋은 뜻이나 공자는 “향원은 도를 해치는 자이다”(『논어』, 「양화」, 13장)라고 규정하였다.
맹자는 이를 이렇게 풀었다. “그는 (광자를 보고서는) ‘어째서 원대한 것을 지향해서 말은 실천을 고려하지 않고 실천은 말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말만 했다 하면 옛사람들은 어떠했는데, 옛사람들은 어떠했는데’라고 하고, (견자를 보고서는) ‘어째서 행동함에 거리낌 없이 나아가지 못하고 외로움을 자처하는가? 이 세상에 났으면 이 세상에 맞추어 살아가고 남들이 선하다고 하면 될 텐데’라고 하면서, 속내를 감추고 세속에 영합하니 이러한 자가 바로 향원이다.”

그리고 이를 들은 만장이 왜 향원이 덕을 해치는 자인지 묻자, 다시 맹자가 대답했다. “비난하려고 해도 지적할 것이 없고 꼬집으려 해도 꼬집을 만한 것이 없으며, 세상의 흐름에 동화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평소에는 충성스럽고 믿음성이 있는 듯하고 행동함에 청렴결백한 것 같으며, 뭇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면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그런 자와는 더불어 요순의 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덕을 해치는 자라고 하신 것이다.”(『맹자』, 「진심하」, 37장)

맹자에 말에 따르면, 향원은 중도의 선비인 듯하지만 아닌 것, 즉 사이비(似而非)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그가 가짜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심지어는 자신 스스로도 향원임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중도의 선비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참을 말하는 듯 사람을 꾀지만 실제로는 거짓을 전파하고 있으니 이 인물이야말로 위험하고 도를 해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향원은 쉽게 알아보기 힘들다. 왜냐면 말도 괜찮고 심지어는 그에 걸맞게 행동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속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향원의 이런 행위 방식은 ‘위선’이라 불리지만, 당장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좋은 영향을 주는 선비로 보인다. 중도의 선비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더 위험한 사이비. 도대체 그는 무엇이 위험한 것일까? 우리의 삶에서 그렇게 표 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약간의 힌트가 있다. 그는 광자와 견자를 보고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며 중도의 선비인 양 행세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이런 맹자의 인물론은 그 윤리의 기준이 인간의 ‘본질적인 마음’이라는 점에 있다. 본질적인 마음은 어느 순간 표가 난다. 특히 자신에게 닥친 절박한 상황, 남에게 닥친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향원이라면 이럴 때 스스로의 안위를 돌보는 데 급급하지 않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부란 단지 지식을 쌓고, 스팩을 쌓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몸을 바꾸고, 삶을 바꿀 수 있는 공부! 옛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을 소리내어 읽으며 공부했던 이유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맹자』의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 사이비의 모습이 혹시 내 모습은 아닐까 하는 그런 무서움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이리 저리 분류해 놓고 보곤 한다. 웃긴 사람, 성실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착한 사람, 잘 생긴 사람, 나랑 친한 사람, 내게 맞지 않는 사람 등등... 그러나 내가 함께할 만한 사람을 도(道)를 기준으로 찾아보면 어떨까? 중도의 선비를 얻지 못하더라도 광자와 견자 중엔 꽤 괜찮은 사람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수양할 일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은 후 한순간의 유혹에 나의 모든 신념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사이비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맹자는 그제서야 내 마음의 스승이 되었던 것이다.

- 편집부 주승일
알라딘 링크




맹자 - 10점
맹자 지음, 박경환 옮김/홍익출판사
2010/08/13 10:50 2010/08/13 10:50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115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책쟁이 2010/08/14 18:01

    이 글 보고 흠칫 놀랄 사람들이 많을 듯 합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

    • 그린비 2010/08/16 07:56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책쟁이님 말씀 감사합니다! ^^

  2. 창전동향원 2010/08/14 21:52

    저도 요즘 '나'나 잘하세요 모드.. 더불어 광자도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그린비 2010/08/16 08:01

      잘 지내시죠? (아마도 추측이 맞다면 창전동 유리겔라님과 동일인물이실듯한데요~ ^^;)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향원님도 함께 화이팅!!

  3. yemundang 2010/08/16 09:58

    요즘 '논어'를 읽고 있습니다. 진도가 더디게 나가지만, 꾸준히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다음 책으로 '맹자' 또는 '사기'에 도전해보려고 하는데,
    안양 교보문고에는 그린비의 맹자가 들어와있지 않아서 책을 못봤습니다.
    논어 읽기가 끝나면, 서점에 나가서 둘러보고 다음 책을 골라보려고 합니다.

    위 글이 저에게도 도움이 되네요.
    논어에서 하도 잔소리?를 많이 들어서.. 흠칫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ㅎㅎㅎ

    • 그린비 2010/08/16 13:33

      예문당님 반갑습니다. 그린비 <리라이팅 맹자>를 읽고 <맹자>를 읽는 것도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 더불어 포스트가 도움이 되셨다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