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 블로그에서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변광배 선생님의 ‘프랑스 출판 정보’를 포스팅합니다. 변광배 선생님은 『변증법적 이성 비판』(공역)을 필두로 사르트르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번역하고 집필하신 연구자이십니다. 주제 면에서나 분량(!) 면에서나 ‘묵직한’ 책을 좋아하시는 선생님은 사르트르 외에도 20세기 중후반의 지성사, 사상가들의 생애, 문학이론 등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두고 활발하게 번역·연구를 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프랑스어권 출판 동향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는데요, 앞으로 이 코너에서는 의미 있지만 한국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책들, 주목할 만한 프랑스 신간 등을 소개해 주실 예정입니다.

8월 프랑스의 주목할 만한 책들

변광배(한국외대)

I
.『시간을 주기 1. 위조화폐』(Donner le temps, 1. La fausse monna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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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출판정보
- 출판사 : 갈릴레 출판사(Editions Galilée)
- 출판년도 : 1991년
- 쪽수 : 221쪽
- 언어 : 프랑스어

책내용 
해체주의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데리다는 이 책에서 ‘증여’(don)의 연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두 학자인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와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의 견해를 해체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켕의 조카인 모스는 「증여론」에서 모든 ‘증여’는 경제적 이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하면서, 순수 증여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또한 증여 행위는 즉각적으로 되갚아져도 안 되고, 그렇다고 되갚는 행위가 무한정 연기되어도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증여 행위에서 ‘시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반면, 바타유는 ‘정상의 윤리’(éthique du sommet)와 니체의 영향을 받은 ‘주권적 개인’(individu souverain) 이론에 입각해 모든 증여는 순수 증여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바타유의 이 같은 주장은 모스의 그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 책에서 증여 행위 이론화 과정에서 이처럼 두 축을 형성하고 있는 모스와 바타유의 이론을 모두 해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데리다는 모스의 이론을 해체하고 바타유의 편을 들고 있다. ‘증여’ 담론이 성립하려면 ‘증여’라는 사건이 반드시 한 번은 발생해야 한다는 것이 데리다의 주장한다.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데리다는 ‘증여’ 담론을 가능케 해주는 최초 증여 행위의 출현과 이 최초 증여 행위의 순수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 이러한 인정은 모스의 주장, 즉 모든 증여는 경제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따라서 대가를 요구하는 불순 행위라는 것에 배치되는 주장이다.

그 다음으로 데리다는 ‘시간’ 개념에 주목하면서 바타유의 주장을 해체하고 모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데리다에 의하면, 모든 증여 행위는 처음 이 행위가 나타나는 찰나적 순간만을 제외하고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행위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증여를 하는 사람은 증여를 함으로써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게 되고, 또 자신의 증여를 받는 자로부터 보상을 기대하게 되고, 또 증여를 받은 자 역시 증여를 한 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 ― 이 마음은 종종 열등감과도 무관하지 않다 ― 을 느끼는 한편, 언젠가는 자기가 받은 증여에 대한 보답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데리다에 의하면 모든 증여는 한 번은 순수하지만, 동시에 모든 증여는 불순하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결과가 파생될 수밖에 없다.

『시간을 주기』에서 데리다는 이처럼 증여 행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간’ 개념을 중심으로 모스와 바타유의 사유를 해체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자신의 사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의 산문시 「위조지폐」를 분석하고 있다. 이 산문시는 절친한 두 명의 친구가 거지에게 적선을 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위조지폐로 적선한 자기 친구의 행위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데리다는 바로 모스와 바타유의 증여 이론에 대한 해체의 내용을 적용시키면서 어떤 이유에서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적선 행위에 대해 가한 비판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그야말로 정치(精緻)한 논리로 추적하고 있다.

또한 데리다는 후일 『죽음을 주기』(Donner la mort, 1999)라는 책을 통해 『시간을 주기』에서 다룬 자신의 증여 이론을 더욱 더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데리다는 구약 성서에서 아들 야곱을 하느님에게 번제(燔祭)드리는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있다. 1980년 이후 이른바 데리다의 ‘윤리적 전회’에서 ‘환대’와 더불어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는 것이 이 ‘증여’ 행위인데,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데리다의 실천윤리의 의의와 한계가 조망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관련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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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셀 모스, 『증여론』, 이상률 옮김, 한길사, 2002.

‘증여’라는 현상을 학문적으로 해명한 최초의 시도. 이 책에서 마르셀 모스는 증여가 단순히 개인들의 선의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으로 구조화된 현상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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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르주 바타유, 『저주의 몫』, 조한경 옮김, 문학동네,

‘생산’이 아니라 ‘소모’의 경제를 이야기하는 책. 바타유는 인간 사회를 이끌어 가는 동력 중 하나가 바로 낭비, 사치, 경쟁적 증여 등의 ‘비생산적 소모’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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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크 데리다, 『환대에 대하여』, 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4.


‘환대’와 ‘적의’라는 주제에 대한 데리다의 강의를 담은 책. 다양한 사례를 통해 오늘날 만연한 타자에 대한 적의를 지적하며, 이를 통해 ‘환대’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II.『추(醜)의 군도(群島): 예술과 추에 관한 시론』(Archipel de la laideur: Essai sur l’art et de la laid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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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미셀 리봉(Michel Ribon)
파리고등사범학교 출신.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엑상프로방스와 베이루트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저서로 『예술과 자연』(L’Art et la nature, 1988), 『파국의 미학』(Esthétique de la catastrophe, 1999), 『세잔: 한 세기에서 다음 세기로』(Cézanne, d’un siècle à l’autre, 2006; 공저), 『글쓰기의 신비와 마법』(Mystères et magie de l’écriture, 2007), 『근대에서 오늘날까지 예술작품 이론화하기와 이해하기』(Théoriser et comprendre l’oeuvre d’art de la modernité à nos jours, 2010) 등이 있다.

출판정보
- 출판사 : 키메 출판사(Editions KIME)
- 총서 : 철학-인식론(Philosophie-Epistémomogie) 총서
- 출판년도 : 1995년
- 쪽수 : 457쪽
- 언어 : 프랑스어

책내용
철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공히 전통적으로 ‘추’(醜)에 대한 논의는 자유롭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그 주된 이유는 그것이 ‘이질적인 요소’, ‘익숙하지 않은 것’, 곧 ‘나’와는 다른 ‘타자’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존재는 ‘추한 것’ 앞에서 자연스럽게 구토, 혐오감, 반감, 메스꺼움, 불안, 분노, 저항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추’는 또한 이 같은 감수성의 세 차원(신체, 지성, 도덕적 차원)뿐 아니라 형이상학적 차원에서도 우리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에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 공격적인 태도로 나타나면서 인간을 동요시키고, 또 그를 불안의 소용돌이로 빠뜨리는 것은 바로 ‘추한 것’이 가지고 있는 가증스러운 ‘타자적’ 요소에 다름 아니다. 인간존재는 자기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신체적 폭력은 능히 견뎌내지만, 자기와 다른 것, 자기와 ‘차이’가 나는 것은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다른 한편, 현실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추’는 그 자체의 매혹적인 면을 통해 예술가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기도 하다. ‘추’는 우선 예술가에게 그 자체를 드러내 줄 것을, 설명해 줄 것을, 밝혀 줄 것을 요구한다. 그 다음으로 ‘추’는 예술가에게 그 자체를 길들여 주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자체를 변형시켜 줄 것을 요구한다. 이 마지막 요구에는 ‘추’의 극단적인 요구, 곧 그 자체를 ‘아름다운 것’으로 변형시켜 달라는 요구가 포함된다. 그 결과 이제 불쾌한 것은 매력적인 것이 되고, 인간과 함께 거주할 수 없는 것은 거주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상처는 빛이 된다. 요컨대 예술은 이제 너그러움 속에서 “아름다운 추”를 실현하면서 우리 인간에게 통합적이고 속죄적인 소명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예술이 구사하고 이용하는 전략과 장치들은 당연히 철학과 예술의 연구 영역에 포함되게 된다.

예술과 ‘추’의 관계를 묻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질문을 상정한다. 하나는 예술작품‘에(dans)’ 나타난 ‘추’의 문제(곧 재현된 것 혹은 내용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예술작품‘의(de)’ ‘추’의 문제(곧 재현의 문제)이다. 최근 ‘미’의 개념 자체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상황에서 이 두번째 문제의 미묘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보인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제기되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가 한 점의 예술작품에 가해지는 호불호(好不好)의 판단 기준을 안심하고 세울 수 있는가?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그러니까 아름다운 예술작품과 그렇지 못한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 요컨대 아름답지 못한 예술작품에서 그 ‘추함’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III.『청맹과니들을 위한 세계화(La Mondialisation pour les nu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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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랑시스 퐁텐(Francis Fontaine)
경제학자이며, 여러 국제기구에서 일하면서 세계화를 몸소 체험한 실무자이다.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로서 ‘유럽세계화포럼’을 주재하며, 수많은 토론과 강연을 주최하기도 했다.
브륀 드 보드만(Brune de Bodman): 프랑스경영대학원(Essec)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사회적 기업가 정신 분야의 전문가이다.
실비 굴라르(Sylvie Goulard): 유럽 의회의 ‘경제 통화 위원회’ 회원으로 일하고 있다.

출판정보
- 출판사: 제네럴 퍼스트 출판사(Editions Générales First)
- 총서: 청맹과니들을 위하여(Pour les Nuls) 총서
- 출판년도 : 2010년
- 쪽수 : 325쪽
- 언어 : 프랑스어

책내용
프랑스인들 대부분은 세계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세계화는 개방과 변화의 희망보다는 그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삶의 방식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탈지방화를 선도하는 세계화는 높은 국내 실업률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세계화 과정에서 환경 파괴, 테러 확산, 전염병 전파, 각 민족의 정체성 와해 등과 같은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 영향이 어떻든 국제무역은 오늘날 부인할 수 없는 하나의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런 만큼 이 현실을 보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그것이 낳는 폐해를 수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최대한의 이익을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세계화라는 현상을 객관적이고 명증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있다. 논거를 돕는 자료와 수치들도 풍부하다. 이 책을 펼쳐든 독자들은 세계화와 그것의 기능, 쟁점들을 보다 쉽게 이해하게 될 것이고, 객관적 논거를 바탕으로 세계화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갈수록 보편화되는 여러 현상들 가운데서 자기 나라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0/08/19 21:01 2010/08/1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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