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 준비기(準備記)
저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과 『정략론』을 쓰기 위해서는 혼자여야 했다고 말합니다. 혼자, 즉 그는 자신이 말하는 항해자처럼 미지의 바다로 나아가는 모험을 하고 새로운 이론을 세우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말하자면 구세계에 지배적인 자명한 진리로부터 결국 단절되고, 그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판명되어야 했습니다. …… 마키아벨리가 혼자인 것은 그가 고립되어 왔기 때문이고, 그가 고립되어 온 것은 그의 사상을 둘러싼 끊임없는 투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의 사상으로 사유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입니다(루이 알튀세르, 「마키아벨리의 고독」, 『마키아벨리의 고독』, 김석민 옮김, 새길, 1992, 232~233쪽).

‘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그가 쓴 몇 편의 글을 다시 찾아 읽었습니다. 이번에 가장 의미심장하게 읽은 글은 「마키아벨리의 고독」입니다. 여기서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의 고독을 언급합니다. ‘마키아벨리의 고독’은 다른 고독이 그렇듯 그가 ‘혼자’였다는 사실, 나아가 그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고 알튀세르의 시대까지도 그랬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글을 흥미롭게 읽은 것은 마키아벨리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마키아벨리를 이야기하는 알튀세르 자신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시 ‘알튀세르의 고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무엇이 아직까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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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을 준비하는 일종의 ‘스태프’로서 창피한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저는 루이 알튀세르를 잘 모릅니다. 그의 글 몇 편을 피상적으로 읽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에게도 알튀세르는 놀라운 힘을 보유한 사상가로 다가왔습니다. 『맑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모순과 중층결정(연구를 위한 노트)」나 「유물론적 변증법에 대하여(기원들의 불균등성에 관하여)」 같은 글들, 혹은 『아미엥에서의 주장』에 수록된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같은 글들, 혹은 『철학과 맑스주의: 우발성의 유물론을 위하여』에 수록된 「독특한 유물론적 전통」 같은 글들에서 그가 대단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즉 맑스주의에 ‘봉사’하는(따라서 하나의 담론에 종속된), 그러나 그 안에서 누구도 보지 못한 가능성을 끌어내는(따라서 더할 나위 없이 창조적인) 것. 마치 대담한 모험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흥분에 가득 차 그의 글을 읽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글들이 너무나 멋졌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맑스를 위하여』의 서문 「오늘」, 『아미엥에서의 주장』에 들어 있는 「혁명의 무기로서의 철학」 같은, 공산주의 투사가 아닌데도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글들 말입니다.

그렇지만 알튀세르의 글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는 너무나도 명쾌하게, 거침없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가 언제나 ‘개입’의 형태로, 고전을 ‘독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인지, 혹은 도저히 어울릴 수 없어 보이는 사상가들을 동일한 계열 속에 집어넣고 논의를 전개했기 때문인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느낌만 가득했습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사상가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대단히 명료한 언어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나간 그이지만, 또 동료들 및 제자들과 활발하게 공동작업을 벌여 온 그이지만 알튀세르의 사상에는 수수께끼 같은, 혹은 그를 분열시키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과잉결정’, ‘우발성/마주침의 유물론’ 등 그의 개념들이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는 것, 그 개념들에 관해 합의를 이루는 데 여전히 곤란함이 존재하는 것, 그 곤란함이 오히려 계속해서 창조적인 사고들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더욱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 지 20년이 지난 ‘오늘’, 알튀세르에 관한 심포지엄이 개최되는 것도 너무 빨리 잊힌 혹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알튀세르의 면모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확실히 이번 심포지엄을 준비하기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은 기대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 행사가 그런 알튀세르의 고독(만약 그런 게 존재한다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줄, 더 나아가 그 고독의 정체를 어느 정도 해명해 줄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기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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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고독 - 10점
루이 알튀세르 지음, 김석민 옮김/중원문화사
2010/08/23 09:54 2010/08/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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