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수유+너머 남산에서 박노자 선생님의 특별 강좌가 진행되었습니다. ‘전쟁 이데올로기의 역사’ 강좌는 전쟁이란 테마를 중심에 두고 국가 혹은 종교의 관계를 생각하며, 전쟁이 국가 형성에 끼친 영향과 전쟁 이데올로기로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글은 박노자 선생님의 특별 강연을 수강한 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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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2일부터 5일간 ‘수유+너머’에서 있었던 박노자 선생님의 강의 ‘전쟁 이데올로기의 역사’는 “왜 뜬금없이 전쟁을 이야기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전쟁이라는 소재가 ‘그나마’ 친숙하지만, 반전 평화가 어느 정도 상식화되어 있고, 징병제도 거의 폐지되었으며, 근거리에서 전쟁을 접하지 않는 서구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쟁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잉? 그 얘기를 뭐하러?’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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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발생한 러시아-그루지야 전쟁, 전쟁 장면은 TV 등 각종 매채를 통해 스펙터클한 영화처럼 '공개'된다. 스펙터클한 영상은 전쟁을 게임이나 영화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전쟁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전쟁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것은 곧 —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역사적·현실적 동력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은연중에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전쟁적 사고’들입니다. 물리쳐야 할 상대, 승리를 위한 효율적인 조직화, 전략적 기획 등등……. 이 이야기를 듣다가 저는 『전쟁이라는 문턱』의 한 대목을 떠올렸습니다.

전장의 정보 소식 장면을 후방을 향해 끊임없이 송신하고 분배하고 전시하는 사회, 이 기술을 총체적으로 활용하여 궁극적으로 전시 도덕과 규율 체계를 구축하는 사회, 그리고 이 체계 내로 모든 구성원을 복속시키고 배치시키는 사회, 우리는 이와 같은 사회를 그 작동 메커니즘에 주목하여 단지 ‘전쟁 사회’가 아니라 ‘전쟁 스펙터클 사회’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_ 『전쟁이라는 문턱』, 80쪽.

‘전쟁 스펙터클 사회’. 책에서는 1930년대 후반 전시 체제하의 사회를 지칭하게 위해 쓰였지만, 좀더 포괄적으로 본다면 근대사회의 일반 명칭으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가 성숙해 가면서 그 경향성으로부터 점차 벗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풍’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한국 사회는 그 단계를 벗어나려면 아직도 요원한 것 같고요. 하루하루를 생존경쟁의 전사로 살아가야 하는 사회, 그리고 그것을 통해 전면적 통제를 확립하려는 사회.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의 전쟁 스펙터클 사회입니다.

(+) 그리고 전시 도덕과 규율 체계를 위한 '국가 관리'의 한 단면은 이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겠네요. (관련 기사 전문 보러 가기)

- 편집부 태하
2010/08/26 11:19 2010/08/2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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