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에 대한 편집자의 복잡한 심정
─ 두려움을 넘어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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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 속 현실 같은 비현실은 오히려 영화가 끝난 후 허탈감을 느끼게 했다. 환상 속의 공간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슬픔과,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이 복합된 감정.

허문영: 정성일 선배는 어떠세요? 정 선배는 <아바타>를 보고 3D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지만, 3D와 관계없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시네아스트들이 3D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언제가 되든 3D가 대세가 되는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평가로서가 아니라 시네필로서 느끼는 두려움의 정체는 어떤 건가요?

정성일: 간단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기. 그때 저의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영화에 매혹되었던 그 부분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내가 영화에 매혹됐던 바로 그 대목. 나는 영화의 그런 환영성을 스텍터클의 리얼리티 때문에 사랑했던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영화가 안을 수밖에 없는 기술적 제약과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규칙들,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수많은 미학적 시도들의 역사, 숏과 리버스숏의 체계들의 프로젝트, 고전영화와 결별한 모던영화라는 토픽의 단절. 혹은 1960년대와 70년대 영화 사이의 단절을 이루는 수많은 결정들, 그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한 것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시도였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영화에 대한 나의 매혹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기술이 나서서 해결해줄게, 사실 너의 매혹은 기술적인 스펙터클이야, 라고 할 때 내 매혹을, 사랑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

베르너 헤어초크가 3D로 영화 찍는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타르코프스키가 떠올랐습니다. 2D로 진행되던 <노스탤지어>가 마지막 순간 눈 내리는 장면에서 그 내리는 눈만이 3D일 때 어떤 감흥이 일어날지는 궁금합니다. 전체를 3D로 찍는 게 아니라 마치 히치콕이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손을 내미는 장면만을 3D로 찍은 것처럼 연출한 영화들, 혹은 지금 회고전이 진행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의 성>에서 화살들만 3D로 쏟아진다면 어떨까요? (「영화비평가는 무엇에 쓰이는가? ― 정성일과 허문영이 김영진, 김혜리, 이동진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2)」,『씨네21』No.766, 2010.08.10~08.17).

정성일, 허문영, 김영진, 이동진, 김혜리, 다섯 명의 영화평론가가 불꽃 튀는 대담을 두 번에 걸쳐 진행했습니다(『씨네21』 763호와 766호).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인상적이었지만, 지금의 저에게 가장 와 닿은 대담 주제는 ‘디지털 영화’ 혹은 ‘3D 영화’였습니다. 제가 아는 한 가장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인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디지털 영화에 대해 복잡한 심정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영화를 (그에게) 매혹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었던 “예술적인 시도”들이 기술로 대체되면서 혹시라도 그 매혹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닐까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런 기술적 혁신이 완전히 새로운 ‘시네마틱한 순간’을 창조해 낼 가능성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기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실제로 정성일은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 및 프로그램 디렉터로 활동해 왔습니다). 과거와의 단절에 착수한 혁신적인 기술 앞에서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과 기대감 양자 모두가 그의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양가적인 감정은, 정성일과 같이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느낄 법한, 정당한 감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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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디지털 장치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책’과 관련해서도 ‘디지털화’가 화두입니다. 사실 저는 책이 디지털화된다는 데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많은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책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이 문제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듣게 되었고, 또 관심도 조금씩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게 단순히 ‘읽는 방식’이 바뀌는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디지털화’가 책의 물성(物性)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이것이 책의 생산하고 유통하는 방식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칠 변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평론가들의 인터뷰에서 ‘디지털 영화’에 관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바로 이 깨달음(?)의 순간에 이 인터뷰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독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한 명의 편집자로서 저도 책의 미래(아니, ‘미래의 책’이라고 해야 할까요?)에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 명의 편집자임을 강조하는 것은, 솔직히 책의 디지털화가 책을 읽는 방식에 미칠 영향보다는 책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시스템 자체에 가져 올 파급력에 더 관심이 가기 때문입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자주 쓰는 표현을 잠깐 빌리면, 책의 디지털화는 “출판(편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해 ‘출판(편집)의 존재론’을 고민하게 만드는 오늘의 상황에서 저 역시 한편으로는 미래에 바뀔 환경에 두려움을 느끼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기술적 혁신이 산출할 무한한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기도 합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편집자’라는 직업이 한없이 사소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디지털화가 정착되는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 될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혁신이 희망을, 한 권의 책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안겨 주기 때문입니다(어찌 이 혁신을 ‘사회적’, ‘공공적’, ‘민주주의적’ 등등의 단어들과 연결시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희망을 현실화하는 과정 속에 있게 된다면, ‘편집자’는 분명히 지금과 조금은 다른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주로 ‘두려움’에 관해서만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을 모색하는 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저는 기술 발전을 막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며 또한 그다지 긍정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제일 먼저, 정성일이 영화와 관련해 “예술적인 시도”라고 불렀던 빛나는 노력들에 대응하는 것이 편집자에게는 ‘무엇’이어야 할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편집부 김재훈

2010/09/16 10:44 2010/09/1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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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몬에이드 2010/09/16 17:01

    디지털 출판에 대해서 아이패드가 출시된 그 시점부터 토론이 불이 붙었었지요.
    IT계 출판사 및 몇몇 출판사들은 서로 간담회도 진행하고 말이죠.
    그 결론들이 어떻게 났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들은 말은 없지만
    종이책이란 재화에 대해서 디지털 출판이 발달한다고 일시에 사라질 것은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 같습니다. 현재의 ebook시장도 여러가지 문제로 느리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 좌시할 문제는 아니지만 급하게 결론 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즐거운 고민이 되시길 ^^

    • 그린비 2010/09/17 10:54

      종이책의 손 맛(!)은 아무래도 디지털 기기가 따라갈 수 없겠죠? ^^
      킨들에서 아이패드까지 많은 첨단 기계들이 있지만, 제 주변에는 아직 쓰는 사람이 많지 않네요. (스마트폰은 제법 있습니다만...ㅋㅋ)

      기계가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은 제공하겠지만, 제한된 상황에서 고민하고 찾아냈던 방법들이 쓸모없어질까봐 걱정도 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편집자의 고민은 계속되겠지요! ^^

  2. yemundang 2010/09/17 07:41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간다고 해도, 편집자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컨텐츠가 어떤식으로든 독자의 손에 가기까지는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종이책용, 웹용, 전자책용 편집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일의 범위를 좀 더 넓혀서 생각해야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범위가 넓어진 만큼 필요한 부분을 익히고 계속 연구해야겠죠. 결국 평생학습..
    맞는 말인지.. 아이가 울어서 이만.. ^^;

    • 그린비 2010/09/17 10:57

      종이책과 웹, 전자책은 만드는 방법이나 진행과정이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예문당님의 말씀처럼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건 같죠.
      그래서 편집자들이 한편으로는 두려우면서도 설레이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

  3. 데굴대굴 2010/09/17 08:47

    아이패드나 아이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의 장점은 구입하는데 재미를 붙이게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제가 보유하고 있는 장비에 맞게 내놓아 주신다면 의외로 지르는 인간(=접니다)이 있을지도요....

    • 그린비 2010/09/17 11:10

      저는 아이폰 유저인데 어플의 세계가 워낙 신기해서 한번씩 갈 때마다 한참을 구경하지요. 맘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구매하기도 해요. 아하하!

      장비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유쾌하고 유익한(?) 컨텐츠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답니다. 아마 계속 고민하고 노력해야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