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전의 교훈 - 결혼, 준비 말고 생활에 힘쓰자!

온달은 우물쭈물하면서 결정을 못하였다.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내 아들은 지극히 누추하여 귀인의 배필이 될 수 없고, 내 집은 지극히 가난하여 진실로 귀인이 살기에는 마땅치 않습니다.” 하니,
공주가 대답하기를, “옛사람의 말에 한 말의 곡식도 찧어서 나누어 먹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로도 옷을 해 입을 수 있다고 하였으니 진실로 마음을 같이 한다면, 하필 부귀를 누린 후라야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 「온달전」,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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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온달> 영화포스터 _ 짤방입니다
저는 한 사람과 만 8년째 연애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굳이 결혼을 빨리 하려고 한 적은 없지만, 굳이 안 한 것인가, 못한 것인가를 따져보자면 ‘못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무사고(>.<)였다는 점이고, 두번째 큰 문제는 역시 뭐니 뭐니 해도 money가 문제였습니다. 당장 뭐가 있어야 결혼을 하죠(ㅡㅡ+). 세월이 흘러서 나이가 들어차고 양가 부모님의 압박을 더 이상 버텨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 지금, 결혼을 하게 되긴 됐는데 경제 사정은 그냥저냥 대출을 좀더 받을 수 있게 된 정도로만 바뀌었습니다(그것도 저 말고 제 바깥양반 될 양반이 말입니다). 그러니 어차피 남들처럼 삐까번쩍하게 할 형편은 애 저녁에 못 되고, 또 명색이 인문서 전문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여자가 없는 돈에 ‘평생에 한 번 하는 결혼’이랍시고 돈XX까지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뭔가 돈을 들여야 할 때마다 고심하고 또 고심했습니다.

엊그제 주말엔 웨딩촬영 때 입을 드레스를 고르고 한복을 빌리러 집에 내려갔습니다. 가는 길에는 남친과 함께 한복 살 필요 없다, 유행도 자주 바뀌고 하니 빌려 입고 말자 했던 것이, 촬영+본식 대여비가 인당 20만원이라는 소리에, 그럴 바에야 여자인 내가 한복을 더 많이 입을 테니 그럼 나는 맞추자(이렇게 되면 제 한복 60만원에 대여비는 10만원에 퉁), 그러다가 대여할 한복을 이래저래 입어보면서 자신에게도 한복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남친은 “그냥 나도 하나 맞출까?” 하며 발그레. 남친은 일단 잠정 보류해놨지만 다음 주에는 가서 치수 재고 있을 것 같네요. 요렇게 되면 돈 백(100)이 아주 훨훨 날아갑니다.
  드레스를 고르고 돌아오는 길은 더 가관입니다. 화이트 드레스+컬러 드레스+미니 드레스, 대개 요 구성으로 총 3벌을 고른다는데 다른 ‘신부님’들이 다 들고 나가 버리고, 찜해 버린 바람에 남은 게 별로 없는 상태에서 골라야 했던 저는 일단 화이트 드레스 두 벌에 컬러 드레스 한 벌 골라놓고 돌아오는 길에 남친한테 말했습니다. “저기 미니 드레스는 영 못 입겄어. 차라리 돈 좀 더 들어도 스튜디오 가서 하나 더 빌릴래.”

헉, 무엇이 저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요(ㅠ.ㅠ)? 저, 정말이지, 평강공주 같은 여자였습니다. 결혼이, 결혼식이 다 무어냐, 까짓 물 한 그릇 떠놓고 맞절하면 ‘고거이 결혼이다’라던 여자였다구요. (물론 시험을 보기 위해서이긴 했지만) 한때나마 “一斗粟猶可舂, 一尺布猶可縫,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可共乎”(한 말의 곡식도 찧어서 나누어 먹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로도 옷을 해 입을 수 있다고 하였으니 진실로 마음을 같이 한다면, 하필 부귀를 누린 후라야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라는 주옥 같은 문장을 외웠던 것이 부끄럽고 무색해집니다. 진실로 마음을 같이 하기보다는 곡식 한 말로 어떻게 하면 떡을 치고 밥을 할지, 베 한 자로 이불은 몇 채를 하고, 옷은 몇 벌을 지어서 좀 번듯하게 보일지 열심히 머리 굴리는 것이 결혼과 결혼 준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런다고 살림살이 나아진 것도, 나아질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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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보다 혼수를 어떻게 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 그런데 우린 보통 '사는 것'에만 열중하곤합니다.

좌우간 아직은 결혼 준비 초반에 불과한 지금 저 글이 생각나서 다행입니다. 생각해 보면 평강공주와 온달이 쥐뿔도 없이 결혼하고서도 가정불화 없이―물론 부부 사이의 일은 둘밖에 모르지만(^^;)―잘 살았던 것은 결혼‘식’ 준비가 아니라 결혼 생활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모르는 사이 결혼‘식’ 준비에만 버닝하고 있었던 저를 정신 차리게 한, 이 달의 씨앗문장이었습니다.

- 편집부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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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1 - 10점
김부식/한길사
2010/09/13 07:19 2010/09/13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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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실 2010/09/15 10:26

    저도 요즘 결혼준비중인데 정말 여러모로 공감이 됩니다!
    한복 안하겠다 하다가.. 내것만 할까 하다가, 결국 서로 같이 보자가 둘다 해버리고.(그래도 전 둘이 60만원이라..싸게 했다 위로하고 있네요.)
    예물 안하곘다 하다가 한번 보다가 진주만 좀 해볼까?하다가 결국 또 해버리고.
    뭐 그렇습니다. =_= 결혼준비가 원래 이래요.;;

    전 이제 결혼준비가 거의 끝나가는데.. 끝까지 드레스에 돈 안쓰고 스튜디오촬영 안한점과, 명품가방 안산것,ㅋ 그리고 혼수적게 한것. 무엇보다도..... 전세집을 같이 장만한것은 스스로 기특하다 여기고 있답니다.ㅋㅋㅋ 끝까지 소신 꼭 지키시길!!!!
    잠시만 방심하면 정말.........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순식간에 소비하게 만드는게 결혼시장의 구조죠.ㅠㅠ

    • 그린비 2010/09/15 10:41

      매실님 안녕하세요.
      결혼준비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안싸우던 커플들이 많이 싸우기도 한다고 들었거든요. ^^;

      집을 같이 마련한 점은 정말 멋집니당. 함께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물건들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만~ 보면 또 사고 싶어지고 그렇더라구요. (겨...견물생심이라고...ㅠ_ㅠ) 소비보단, 생활에 힘써야지요! 화이팅!

      결혼 미리 축하드립니다. 그린비 블로그에서 자주 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