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의 지혜, 삶의 지혜

불쌍한 인간들!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끝없는 불안은 무엇이며, 그 병적이고도 음울한 표정은 또 무엇인가! 그들은 모두 여행 안내서를 들고 돌아다니며, 도시마다 진기한 것에 굶주린 듯이 덤벼든다. 마치 무슨 의무라도 되는 듯이, 국가적인 책무라도 띠고 있는 듯이 덤벼든다. 일단 안내서에 기재된 것이라면, 창문 세 개짜리 궁전이라도 빼놓지 않으려 한다. 시장의 집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본다. 그런데 이런 집들은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루벤스의 쇠고기를 멍하니 쳐다보며 그것이 삼미신(三美神)이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믿으라고 안내서에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_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인상기』, 이길주 옮김, 푸른숲, 1999, 68쪽.

근대인의 생활 속에는 무릇 ‘가이드라인’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매우 많죠. 법과 도덕의 형태로 나타나는 가이드라인이야 뭐 (맘에는 안 들지만)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쳐도, 타인의 시선, 업계의 관행, 정보의 범람, 스스로의 허세 등 수많은 압박의 요소가 덕지덕지 달라붙으니 문제지요.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마음이 “이런 걸 하고 싶어”라는 마음을 근원적으로부터 차단해 버린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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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창문을 통해 본 파리> _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꼭 봐야한다는 강박을 벗어난다면 여행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럽에서 여행 안내서를 들고 돌아다니는 유럽인들을 보고 느낀 감정은, 제가 2년 전 여름에 난생 처음 떠난 배낭여행지인 터키에서 가이드북을 들고 돌아다니는 한국인들을 보고 느낀 감정과 흡사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를 뚫고 블루모스크니 아야소피아니 카파도키아니 찾아갔지만 이건 뭐, 와 크네 와 멋있네 말고는 별로 할 말이 없는 거죠. 역사적 맥락을 들어도 도무지 감정이입이 안 되는 걸요. 차라리 우리나라 왕께서 한 해 농사 잘하자고 모내기 시범을 보이고 제사를 지내셨다는, 그리고 그때 끓여 먹은 고깃국이 설렁탕의 기원이라는 동대문구 제기동 274-1번지 선농단이 더 맘에 드는데……. 아, 음, 어, 어쨌건 결정적인 차이는,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은 그런 비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저는 욕할 자격도 없었다는 점이랄까요(-_-;;).

‘탈구속’을 꿈꾸며 떠난 여행조차도 무시무시하게 신체에 각인된 ‘구속’의 가이드라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달은 가녀린 이 중생, 다음 기회가 있다면 기어이 정신줄을 좀더 놓고 말리라 다짐해 보는 어이없는 이 중생, 도스토예프스키가 같은 글에서 쓴 문장에서 힘을 얻어 봅니다.

지혜란 자기가 욕망하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_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인상기』, 66쪽.

- 편집부 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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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 인상기 - 10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길주 옮김/푸른숲
2010/09/24 01:24 2010/09/24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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