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의 사회화에서 아주 흥미 있는 측면 하나는, 논리적으로 당연히 예상되는 것과 달리 살림살이에 들이는 전체 시간이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밖에 나가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생기긴 했지만, 집안에서 하는 무보수(가사) 노동량은 약간 늘었으면 늘었지, 별 변화가 없다. ……

첫 째로, 서비스 업종 노종자의 일을 규격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소비자에게 몰래 전가되는 ‘소비 노동’의 양을 계속 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렇다. 소비자들이 슈퍼마켓의 상품 진열대에서 직접 물건을 담고, 채소를 직접 봉지에 넣고, 주유소에서 직접 주유하고, 은행의 자동입출금 기계 앞에 줄서고, 그래서 시간을 들이는 사람은 서비스업 노동자가 아니라 소비자인 것이다. ……

두 번째로, 서비스의 중앙집중화는 시간, 에너지, 운송비용을 사용자에게 전가한다. 이를 보여주는 예는 많다. 골목 귀퉁이의 가게가 아니라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슈퍼마켓, 의사가 집으로 왕진을 오는 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 진찰실을 찾아가야 하는 것 등이 그렇다. ……

세 번째로 이데올로기적 압력도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20세기 초에 나타난 가정학 운동, 미생물 병원설, ‘과학적 모성’ 이념의 발전이 살림살이의 기준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봄철에 연례 대청소를 하며 살던 이들이, 이제 청소를 일주일에 한 번도 하지 않는 건 부도덕하다고 믿게 강요됐다. 가을에 겨울철 속옷을 짓고 봄이 되어서야 풀어 빨던 이들은 매일 속옷을 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손자들을 낳고 말았다. ……

네 번째로 임금노동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결과물의 하나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일터의 ‘공적인’ 세계와 가정의 ‘사적인’ 세계가 나뉘었다는 것이다. 가정은 소외되고 짜증나며 긴장되는 노동 환경의 피난처가 되고 오락과 휴식, 정서적 지원, 성적 자극과 기쁨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기를 사람들은 기대한다. 이런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은 그 요구 자체가 사회화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주부에게 떠넘겨졌다(어슐러 휴즈, [싸이버타리아트], 신기섭 옮김, 갈무리, 2004, 43~45쪽).

자본주의 발전과 그에 따른 산업화·자동화로 예전에는 가정 내에서 해결했던 일들이 상품, 즉 물건과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어슐러 휴즈는 이 과정을 “살림살이의 사회화”라고 부릅니다. 다들 잘 알고 있듯 살림살이의 사회화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습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이 시장 관계 속에 내던져지면서 가정의 자급자족 능력이나 유대감 등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휴즈가 문제 삼는 것은 그런 (어찌 보면 상식적인) 폐해가 아닙니다. 가사노동의 많은 부분이 시장에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살림살이에 들이는 전체 시간이 줄지 않았다는 것”이 휴즈가 제기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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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한 여성의 가사노동 평균 소요 시간이 취업한 남성보다 여전히 길다. (2005년 발표자료 기준)

아니, 어쩌면 (주부가 해야 하는) 가사노동의 양이 더 늘어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요리를 하려면 조리기구와 재료를 가전제품 대리점이나 슈퍼마켓 등등에서 직접 사가지고 와야 하며, 혹시라도 조리기구가 고장이라도 날 경우엔 서비스센터에 연락해 서비스기사를 기다려야 합니다(기다리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일입니다). 집 청소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고 ‘청결함’의 기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혹은 그보다 더 자주) 가족의 옷을 새로 사야 하는데, 이때도 역시 백화점이나 시장에 직접 가서 옷을 사거나, 아니면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결정하고 결제하는 과정을 거쳐 구입합니다. 또 그렇게 산 옷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빨거나 세탁소에 맡겨야 하며, (조리기구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혹시 세탁기가 고장 나면 서비스센터에 연락해야 합니다(그리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내야 하는 공과금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요. 마지막으로 자녀 양육도 있겠군요.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녀 양육이나 교육에 대해 굳이 이야기를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여전히 거의 여성에게, 주부 및 그의 딸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희한한 일이지만, 맞벌이 부부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명절이라는 행사가 있다는 걸 의식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가 명절에 하는 일이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어슐러 휴즈의 이 책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명절에 예전의 명절보다 혹은 평소보다 편하게 보내는 어머니/아내/딸들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가사노동의 양이 줄어서라기보다는 이전의 사회적 관습이 파괴되었기 때문, 즉 사람들이 더 이상 고향에 내려가지 않거나,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친척들과 어울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명절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경우, 평소의 어머니/아내/딸들이 여전히 가사노동에 얽매여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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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에 드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다양한 가전제품들이 매해 쏟아져 나오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주부의 몫이다.

여성이 이런 식으로 가사노동에 속박되어 있는 것은, 단순하게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고 그것으로 가사노동의 한 부분을 대체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기술이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라 섣불리 희망하는 것도, 반대로 더욱더 종속적인 지위로 격하시킨다고 쉽게 비관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자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의 구조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때때로 이 구조와 관계를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구조와 관계를 (더 효율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이용되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이 구조 속에서 사용되는 가운데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어떻게 재생산하는지 좀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통념에 젖어 “기술발전이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켰다”라고 가볍게 이야기하기 전에 말이죠.

- 편집부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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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버타리아트 - 10점
어슐러 휴즈 지음, 신기섭 옮김/갈무리
2010/09/30 09:46 2010/09/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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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이보그 2010/09/30 12:54

    난 그런 거 몰라.. 이영애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과연 나는 이 작은 원룸에서 전원 콘센트를 몇개나 연결하여 쓰고 있는지 한번 세어보니까.. 25개가 넘네요ㅜ 전원이 off되면 더이상 저는 생활할 수가 없는 사이보그입니다... 기계에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는!

    • 그린비 2010/09/30 15:28

      25개의 콘센트라니! 상상하기 어려운데요. ^^;
      기계와 함께 하는 생활이 너무 일상적인지라 정전되면 엄청나게 불편해지곤 하죠. 이왕 이렇게 된 거(응?) 기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지 그 방법을 찾아가는 건 어떨까요? ^^*

  2. Eli 2010/10/01 10:20

    인용 글의 첫 번째와 두 번째에 해당하는 내용은 요즘 읽고 있는 (읽다가 다른 책을 읽고 있지만;) '완벽한 가격'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네요! 값싼 재화를 공급한다는 미명 아래, 과거에 판매자가 담당하던 비용을 소비자가 부담하게 되었다구요! 오옹오옹-

    • 그린비 2010/10/01 11:11

      저도 대형할인점나 다2소에서 물건을 사면서 저렴하게 샀다고 좋아했는데, 싼 가격에 숨겨진 것들을 보니 마냥 좋지는 않더라고요. 돈을 잘 쓰는 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