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재산은 내가 벌긴 했지만 내 것이 아니다. 영원히 내가 돈을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승에서 먹을 것이 있고 집이 있는데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생로병사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나의 좌우명은 평범한 것이 행복하다는 것이다.”(한겨레, 9.15.)

영화배우 주윤발(저우룬파)이 한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재산의 99%를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한 말입니다. 어찌 보면 이 말은 배포 있는 사람이 내린 순간적 결단으로 보일 수도 있고, 1%만 상속해도 그 액수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에서 삶과 돈에 대한 그의 오랜 통찰이 느껴져 감동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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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2>의 포스터,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영화로 많은 남학생들은 코트의 깃을 세우고 성냥개비(혹은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다니는 '주윤발 코스프레'를 했다고 한다.

내가 번 돈이 내 것이 아니며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말에서, 돈에 대한 속물적 근성을 오래전에 버린 게 아닌가, 유통을 위한 수단이나 그 한 과정으로 보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축적한 돈은 자연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평범한) 그의 말에 쌓인 시간의 두께,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준비된 대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집착 없는 삶에서 행복을 느끼고자 한 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을 쓰지만 요즘 세상에 이 말을 진리처럼 받아들일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가 따로 있고 빈자가 따로 있는 이 세상에 어울릴 만한 표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수거’,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맞는 얘기 아닌가 싶습니다. 남은 재산을 손에 쥐고 가봤자니까요(물론, 그래서 상속에 열을 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반화된 교환은 동일화 논리이다. 원시 사회가 무엇보다 거부하는 것이 바로 이 동일화 논리이다. 타자와 동일시되는 것에 대한 거부, 자신을 자신으로 구성해 주는 것, 자신의 존재 자체, 자신의 고유성, 스스로를 자율적 ‘우리’로 생각하는 능력 등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거부가 그것이다. …… 만인 사이의 교환은 원시 사회의 붕괴를 가져온다. 동일화는 죽음을 향한 운동인 반면, 원시 사회의 존재는 삶의 긍정이다.”(피에르 클라스트르, 『폭력의 고고학』, 279~280쪽;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67쪽 재인용)
 
이번에 나온 신간 『돈의 달인』과 주윤발을 겹쳐 보면, 교환의 논리에 바탕을 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자 한 그의 모습은 주윤발이라는 존재 그 자체의 고유성이 드러나는 진정한 영웅본색의 모습이 아닌가, 저는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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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자유로운 그의 모습, 영화 속 장면이었지만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 편집부 주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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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8 09:38 2010/10/0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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