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정체성과 경계를 넘어 공통의 평화를 기획한다는 것

유엔이 인간애의 원칙에 입각해 창설되었다고 주장할지라도, 유엔이나 각국 인력의 생명은 현지인의 생명보다 소중히 여겨진다. 인도주의 개입에 관한 주장은 멀리 떨어진 곳의 사람들을 위해 자국민의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전개된다. 서구 강대국, 특히 미국이 아무리 고도로 정밀한 포탄을 사용하더라도 물리적․심리적 피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공습을 선호하는 것은 자국민이나 서구인을 특권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민족적․국가주의적 사고는 아직 공통의 인간 공동체라는 개념과 타협하지 못했다.
- 메리 캘도어, 『새로운 전쟁과 낡은 전쟁』, 유강은 옮김, 197쪽

코소보 위기에 대한 세계시민주의적 접근이 있었다면, 아마 사람들은 보호하는 것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사상자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계획된 지상군의 인도주의 개입이 이루어져야 했다. 다국적 군대의 인명 손실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말이다. 인도주의 개입은 공습과 다르며, 고전적인 ‘낡은 전쟁’의 지상 작전과도 다르다. 이 개입이 추구하는 목표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방지하는 것이지 적을 패배시키는 게 아니다.
- 같은 책, 202쪽

전 세계가 총동원되었고, 또 초토화되었던 세계1,2차대전과 냉전의 경험은 사람들이 국가의 경계 넘어서 평화를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제사회’, ‘국제법’, ‘국제기구’라는 개념도 그즈음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죠. 이러한 노력이 일정 부분 세계평화에 기여한 점은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냉전이 종식된 이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인종과 민족, 종파 등의 정체성을 내세운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구청소’라는 명목으로 한 끔찍한 민간인 살상이 숱하게 벌어지기도 하고요.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대체 누구를 기준으로 평화가 기획되고 있는 것인지, 누구를 기준으로 ‘평화롭다’고 말하는 것인지 의아해지네요;;

이러한 폭력 상황에 국제사회가 대처하는 방식 역시 뭔가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입니다. 대량학살의 현장을 목도하고도 수수방관한다거나, 적극적인 개입을 한다 하더라도 민간의 피해를 발생시킬 수도 있는 ‘공습’이라는 전략을 택합니다. 이 같은 전략들은 모두 연합군 인력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나토가 진행한 유고슬라비아 공습에서 1,400여 명의 민간인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부수적 피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나토 대변인은 ‘실수로 죽이는 것과 의도적으로 죽이는 것은 다르다’며 고집했지만, 폭격의 효과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들에게 이 차이는 분명하지 않아 보입니다. ‘각국 인력의 생명이 현지인의 생명보다 소중히 여겨지는’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적 차원의 평화기획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야, <1808년 5월 3일> _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에게 학살 당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 전쟁이 과연 평화로울 수 있는가?

‘세계화’, ‘세계시민(주의)’ 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전쟁’에 접근하는 우리의 사고는 국가와 민족을 사고하던 틀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미국 및 유럽 각국의 ‘대對테러전략’도 자국민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고 적을 패배시킨다는 명분에 충실한 나머지, 현지 민간인들의 인권이나 안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신경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런 무신경함이 서구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켜 세계를 또 다른 테러의 위험 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새로운 전쟁과 낡은 전쟁』의 저자 메리 캘도어는 각종 정체성과 근대국가라는 틀을 넘어서서, ‘세계시민주의적’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볼 것을 요구합니다. 자본과 (노동)상품의 유통만을 중심으로 사유하는 그런 세계화 말고, ‘공통의 인간 공동체’를 사유할 수 있는 세계화를 시민들의 주도로 기획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시민들이 평화에 대해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많은 압박이 있겠지만,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커지게 된다면 지금처럼 (대부분 서구사회인) 몇몇 안전지대를 중심으로 평화를 말하고, 평화를 기획하는 목소리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새로운 전쟁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더 낙관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는 결국 우리 자신의 행동에 달려 있다”는 저자의 말에 귀 기울여 봅니다.

- 편집부 김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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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쟁과 낡은 전쟁 - 10점
메리 캘도어 지음, 유강은 옮김/그린비
2010/10/20 09:06 2010/10/2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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