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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에펠탑의 결혼식> _ "오직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서로에 대하여 가장 감사한다."

사랑을 하면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몸짓 하나하나가 눈에 띄게 됩니다. 그 말과 몸짓의 의미들을 읽어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던지는 말과 보이는 몸짓이 또 상대에게는 어떻게 읽힐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감정이 그렇게 같은 방향과 같은 속도로 흐르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이 관계에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상처가 열리고, 그 벌어진 틈으로 서로가 들어오고, 또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형태의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불가해의 바다에서 우리는 괴롭고도 달콤한,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 말을 하려고 몇 날 밤을 고민하는지 모른다. 또 숱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확인하고 검증받는다. 자신이 말을 하고 나서도 그 말이 맞았는지, 혹 잘못 말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았는지 밤에 홀로 고민한다. 또한 남을 꾸짖고 나서도 아파한다. 내가 잘못한 거 아니냐, 너무 심했지, 자책하며 묻는다. …… 이런 ○○○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이 없다. 그날 있었던 일을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한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 사람이 왜 그 말을 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습관일까. 아니다.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말을 스펀지처럼 자신의 몸으로 빨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일상의 사소한 차별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민중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바탕으로 ○○○은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오도엽,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후마니타스, 238~239쪽.

헤어진 사람을 잊지 못하고 있는 밤에 무심코 펼쳐든 책에서 저런 문장을 읽으면 이거야 원, 곤란합니다 곤란해요. 남녀 간의 사랑이든, 좀더 넓은 대상에 대한 사랑이든, 한마디 말을 하려고 고민하던 그 밤들, 내가 한 말들이 상처로 남았을까 싶어 전전긍긍하던 그 밤들,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기 위해 스펀지처럼 나를 열어야 했던 조금은 불편하지만 황홀했던 그 밤들이 오롯이 살아오니까요.

여기서 잠깐, ○○○에 들어갈 이름은 무엇일까요? 책 제목을 보고 눈치 채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에 들어갈 이름은 ‘이소선’입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시죠. 재가 되어 버린 아들을 생각하면 ‘노동자’니 ‘근로기준법’ 같은 말은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법도 한데, 팔십 평생을 아들이 못 이룬 꿈을 위해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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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의 장례식장에서 사진을 안은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항상 아들의 이름 뒤에 가려져 있었던(?) 위대한 삶을 복원해 낸 이 책을 읽다가 개인의 연애사를 반추한다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사랑한다면 아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다시 깨달으며, 한 평생을 온 마음으로 사랑해 온 사람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며 사랑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만남은 그 아픔을 공감하고 공유하면서 이루어지고, 세상의 모든 이별은 그 아픔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닥치는 게 아닐까 싶네요. 어쩌면, 더 이상 뒤척이지 않게 되어서 헤어지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서도 아픔에 둔감해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편집부 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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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10점
오도엽 지음/후마니타스
2010/10/22 08:53 2010/10/2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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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진 2010/10/22 10:26

    아,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동감합니다 ^^;;

    • 그린비 2010/10/22 23:21

      저도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어쩐지 싸~~~~한 느낌이 드네요. 그래도 아프지만, 아프기에 또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