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법

“시각의 관습에 사로잡힌 이들은 늘 같은 것만 본다. 그들은 구름에서 구름을 보고, 바위에서 바위를 보고, 풍경에서 풍경을 본다. 하지만 지각의 상투형에 사로잡히지 않은 어린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구름에서 토끼의 형상을 보고, 바위에서 곰의 현상을 보고, 풍경에서 사람의 얼굴을 본다.”-『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진중권 지음, 휴머니스트, 2005, 156쪽

세 살 박이 조카와 지난 추석을 같이 보냈습니다. 두 음절의 간단한 말 외엔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는 조카지만 보통 케이크 포장할 때 사용하는 빨강 리본을 갖고 아주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에겐 묶는 용도로만 쓰이는 리본이었지만 그 애 눈에는 너무나 재밌는 장난감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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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저녁 식사 _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선을 가진 사람들을 '천재' 혹은 '아이'라고 부른다. 규칙을 따르는 것만이 '어른'의 모습일까?

어릴 때에는 어른들이 생각지도 못한 걸로 재미있어하고 예상하기 힘든 용도로 물건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약간의 부작용으로 내 아이가 천재라고 착각하는 부모님도 있습니다만 아이들은 물건들을 너무나도 기발하게 사용하고 작은 것에 무한한 기쁨을 느낍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철이 나면서 점차 그 감동과 감정은 무뎌져 어른들이 보는 눈으로 평가하고 기준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을 멈추게 되고 작지만 무한한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왜 어른이 되면 관습에 얽매이게 될까요? 왜 우리는 영화 <베니와 준>에 나오는 다리미로 토스트를 굽는 게 이상하게 여겨지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일상생활에 버거워하며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빈약한 지식에 맞춰 상대방을 평가하고 사는 게 힘들다는 부정적 생각을 먼저 가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나도 빨간 리본만으로 재밌게 놀 수 있고 작지만 무한한 기쁨을 가질 수 있다고. 그리고 내가 가진 이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 디자인팀 권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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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10점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2010/11/01 10:17 2010/11/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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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순진한양 2010/11/01 11:09

    어른이 되어가면서 감각은 점점 사회적 척도에 가깝게 다가가면서 언젠가는 고정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제 가을 소풍 삼아서 헤이리를 다녀왔는데 푸른 하늘과 땅 사이에 예쁘장한 건물들...
    그 안에서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 같네요.
    그거 눈에 보이는 100% 시각에 의존해서 아름다움을 봤지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지는 못한것 같아 못내 아쉽네요.. ^^

    • 그린비 2010/11/01 12:46

      피터팬을 읽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어른이 되면,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사회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어린 시절 느꼈던 즐거움이 줄어든 것 같아 때때로 놀라고 합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어도 일상에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ㅎㅎ

  2. 캐러멜대장 2010/11/01 11:16

    어렸을 땐 엄마 화장대 앞에 앉기만 해도 수만가지의 이야기들이 쏟아졌어요. 아빠 스킨은 왕, 엄마 스킨은 여왕 뭐 이렇게 역할을 부여하고 혼자 몇 시간을 놀아도 시간가는 줄 몰랐거든요. 화장품 갖고 노는 게 지겨워지면, 장롱 앞으로 달려가, 이게 칠판이거니 생각하면서 선생님 놀이도 하고 그랬어요. ㅋㅋ 어렸을 적엔 선생님이 분필로 칠판에 글 쓰시는 것도 부러워 집에서 장롱에다 글쓰기 놀이도 하고 그랬네요. 이제는 제가 갖고 싶었던 물건들로 제 방을 꽉 채워도 재밌는 놀이 하나 상상하기는커녕 심드렁하네요. @_@

    • 그린비 2010/11/01 12:52

      아빠 스킨은 왕, 엄마 스킨은 여왕 하니까 체스가 생각이 나네요! 저도 어릴 때는 장난감이 없어도 혼자 잘 놀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게임을 해도 심드렁하네요. ㅎㅎ;
      혹지 제가 잘 놀 수 있는 능력(!)이 퇴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맘이 아프네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