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낮에 삼청동이나, 청계천 등을 나가보면 어깨와 목에 카메라를 메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인터넷의 사진 동호회나 갤러리 보면 그 사람들이 찍은 수많은 사진들이 하루에도 수백 수천장씩 올라오곤 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인터넷을 통해서 생산한 이미지를 공개하는 것이죠. 과거 어느 정도 레벨에 올라선 사진작가들의 사진이나 ‘작품’으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일반인들이 찍은 사진의 경우엔 가족, 친구들이 보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생산한 사진을 쉽게 보여줄 수 있고, 사진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작품”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시대적 조건이 수많은 사진가(프로든 아마추어든)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연유로 갑작스럽게 전문가용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일 수도 있구요.

저도 사실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어딜 가던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고, 카메라가 없으면 그냥 눈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마음속의 기억에다가 인화할 정도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좀 궁금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드러낼 수 있는 조건, 촬영-현상-인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디지털 카메라의 출현이 수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을 만들어 냈다곤 하지만, 그 보다도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는 사진을 왜 찍는 걸까요?

도로시아 랭은 어릴 적에 앓았던 소아마비로 인해서 심하게 다리를 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사진들에는 사람들의 몸동작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제가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의 실마리는 찾은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찍은 사진이 자신을 비춰주고, 또한 그것이 나와 비슷한 동료 또는 친구(동정심이나 연민의 관점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라는 거죠)와 만나는 방식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도로시아 랭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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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화이트 엔젤 급식소, 센프란시스코, 1933, 도로시아 랭 "내가 하던 사진작업과 길 위에서 벌어지고 있던 현실 사이의 괴리는 이겨내기 힘든 것이었다. 내가 저들에게 가지고 있는 관심이 정당한 것이라면 이런 상업적 작업은 이제 그만두어야 함을 나는 알고 있었다"



소개가 없으면 안 되겠지요. 그는 1895년에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카메라를 손에 쥔 계기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사진가로 활동하던 초창기에는 센프란시스코 상류층 사람들의 초상사진을 찍어주는 소위 ‘잘나가는’사진가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작품을 만든다고 했던가요. 20세기 중반에 전세계에 덮친 대공황에서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걸 계기로 그녀 역시 무언가 다른 걸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섭니다. 그때부터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찍기 시작한 것이죠.

당시 미국의 ‘농업안정국’에서는 공황에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전국민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서 실상을 심도있게 찍을 사진가들을 모집했는데 랭도 그 집단에 일원으로 참가하게 됩니다.(이렇게 모인 사진가들은 소위 ‘걸작’으로 불리는 사진을 많이 남겼는데요. 거기에 참가한 다른 작가들에는 워커 에반스, 벤샨 등이 있습니다.) 랭의 유명한 사진들은 주로 이 시기에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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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이주민 어머니, 니포모, 캘리포니아, 1936 , 농업안정국 프로젝트의 마지막 사진


농업안정국에서 주도한 프로젝트 이후로 그녀의 사진은 어떤 전환을 맞이하게 됩니다. 센프란시스코 거리에서 찍은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 사진은 대체로 찍히는 사람이 카메라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몰래 촬영한 것들이라는 이야기죠. 하지만 그 사진들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가 그 사진들을 왜 찍었는가를 말입니다. 상류층 인사들의 사진을 찍어서 높은 수입을 올리던 그녀는 대공황과 함께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이혼녀에 다리를 절기까지 했습니다. 그때부터 과거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진정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친구들을 찾아 거리로 나선 것이랄까요. 하지만 상류층과 놀던 버릇을 하루아침에 홀랑 버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식의 어떤 과도기적인 특징이 피사체와 공감하지 못하고 ‘몰래’찍는 형태로 사진에 드러나게 된 것이죠. 하지만 농업안정국 프로젝트 사진들은 그와는 전혀 다릅니다. 피사체가 그녀의 눈(카메라)를 응시하기 시작했고, 얼굴에 미소를 띈 사진들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그녀가 본격적으로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의 사진들에는 노동으로 인해 손상된 몸의 이미지들, 이주에 지친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 등이 섬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때부터 랭은 실제로 사진 찍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작가’의 작업이라도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라고 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거만한 느낌은 사라지고 마치 친구를 찍는 보통의 ‘우리’와 같은 시선으로 찍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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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목화 수확 이주 노동자, 엘로이, 애리조나, 1940, 못생긴 이를 가리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이 사람 저 눈은 경계하는 눈빛인지, 미소를 머금은 것인지 모호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저는 철저하게 제가 보는 도로시아 랭에 관한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어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진이든 그림이든 저는 보는 사람이 어떤 형태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 원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도로시아 랭을 저의 사진찍기의 역할모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낯선 이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친구가 되고 싶음에도 다가서기가 두려워서 아주, 가장, 최고로 소극적인 우정의 표명으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서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긍정적이고 활기찬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은 그러던 그녀도 결국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걸었듯이 저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 자신감(?) 이런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에 관하여』라는 책을 쓴 수전 손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구요.
“사진은 도덕적 견해를 만들어 낼 수는 없으나, 고취할 수는 있다. 그리고 새로운 도덕이 싹트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그렇습니다. 저는 어떤 새로운 도덕, 윤리를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우정의 공감대는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들의 즐거운 기억을 간직하고 싶을 때 그 모습을 담아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진찍는 것을 어떤 ‘거리두기’, ‘날카로운 시선’이라는 말들 속에 가둬두고 싶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밖으로 열려서 우정을 만들어가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찍고 뿌리고 싶습니다.

- 웹기획팀 鄭君 (junggu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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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아 랭』- 열화당 사진문고
마크 더든 (지은이), 김우룡 (옮긴이), 도로시아 랭 (사진) | 열화당

출간일 : 2003-01-01 | ISBN(13) : 9788930100366
반양장본 | 128쪽 | 156*136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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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7 13:14 2007/12/0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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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던 사람 2007/12/07 14:00

    두 번째 이주민 어머니 사진은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나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_^

  2. 그린비 2007/12/07 15:36

    도로시아 랭의 가장 유명한 사진 중에 하나입니다. 제목이 "이주민 어머니"구요. ^^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