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체의 차원에서 보자면 변화를 위한 자극은 그것에 대한 감수성의 대역을 열어놓고 있는 존재에게만 유효하다. 침략자이거나 정복자의 형태일 수도 있고 선교사나 교사나 망명자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계기는 언제나 주체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전적으로 내적인 자기 갱신도, 전적으로 외부의 요인만으로 이루어진 변화도 역사 속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서영채, 『사랑의 문법』, 27쪽).

가끔은 옛날 일들을 생각하다 이불 속에 숨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 다 똑같겠지 하면서도 어떤 때는 내 자신이 한없이 바보 같고 미련해 보일 때가 있는 것 같아서요.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는데도 혼자 부끄러워서 어딘가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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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소르,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 _  타인과 부딪치고 관계 맺을 때, 어떤 가면을 쓰고 어떤 가면을 벗는 것일까? 가면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간혹 주위에서 ‘천성적’으로 착해 보이는 사람을 만납니다. 사람의 선량함이 ‘천성적’으로 생겨날까 싶지만, 그래도 종종 그렇게 믿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타인을 배려해 주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타인의 마음을 열게 하는 그런 사람들을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마냥 행복해져야 하는데, 사실 저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와는 너무 다른 것 같아 낯설어지고, 저 성찰성에 지나친 냉정함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자꾸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남들처럼 마음의 ‘착함’을 갖지 못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때로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냉정’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 냉정함이 자신에 대한 성찰로 못 나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예민하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 예민함이 타인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는 성찰로 나아갈 수는 없을까요.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제 몸과 마음을 스쳐갔던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 일들에 “감수성의 대역”을 열어 놓고 싶습니다.

- 편집부 고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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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그 답은 '지금-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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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문법 - 10점
서영채 지음/민음사
2010/11/22 09:02 2010/11/2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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