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연평도 포격까지 평소에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던 '국가'가 자주 출현하고 있습니다. 매우 불행한 일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정치적 척도들 넘어까지 사유를 전개하고 있는 칼 슈미트의 사상을 접하기에는 좋은 조건인 것만은 분명한 듯 보입니다. 아래는 칼 슈미트『정치신학』의 역자 김항 선생님 인터뷰입니다. 국가와 정치, 삶과 정치를 어떻게 사유해야 할지, '어 이거 모르겠는데' 하는 지점에서 멈춰서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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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 김항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 연구교수. 지은 책으로 『말하는 입과 먹는 입』(2009)이 있으며, 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2009), 칼 슈미트의『정치신학』(2010)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1. 현재까지 선생님께서 어떤 관심사 속에서 연구를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칼 슈미트에게 관심을 갖고 번역까지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칼 슈미트라는 사람을  물론 이름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2002년도죠. 2002년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유명한 일본 학자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들을 읽었습니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을 보니 결정적인 대목에서 전부 칼 슈미트를 뒤집거나, 칼 슈미트의 논리를 사용하거나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슈미트에 대한 입문이 되었던 셈이구요.
『정치신학』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깊이도 있고, 논리적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사람을 압도하는 게 있어요. 이 사람이 말하는 게 단정적이고, 독일어 자체가 그렇기도 하지만, 칼 슈미트 독일어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이 과거형을 잘 안 쓴다는 점이에요. 보댕, 홉스를 이야기하거나, 또는 볼첸도르프를 이야기하던 간에 ‘얘는 이랬다’가 아니라 ‘얘는 이런다’예요. 그러니까 같은 친구들인 거죠. 그러니까 자기의 동시대적 자장 안에 다 끌어와서 얘기를 하는 거죠. 칼 슈미트의 그러한 역사의식도 굉장히 재미있어요.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아닌 것이죠. 역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동시대적이고, 같은 눈높이에서 그 위대한 사상가들을 (함께) 배치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슈미트의 문장에 일단 매력을 많이 느꼈고, 그리고 슈미트식의 지성사 서술, 특히 법사상, 정치사상 서술에 굉장히 매혹을 많이 느꼈어요. 그때부터 쭉 슈미트를 열심히 읽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독일 외에 벤야민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이 어디인가 하면, 역시 일본입니다. 그래서 일본에 갔을 때 벤야민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또 당시가 2002년도였습니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가 일본에서 번역된 게 98년도구요. (그런 배경 속에서) 이제 뭔가 그려지는 것이었습니다. 마루야마 마사오, 그 다음엔 벤야민, 칼 슈미트, 아감벤. 이렇게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이어지면서 드러나는 일종의 정치사상적 계보, 혹은 그 이어짐이 드러내주는 사유의 대상, 생각해볼만한 어떤 숨겨진 대화 같은 게 있었던 것이죠. 서구에서 민주주의 사상이 유입되고 그것이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파시즘화 되었다는 식의 기존의 정치사상 기술이나 역사서술하고 전혀 다른 차원의 정치적 사유의 레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일반적 해석과는 다른) 어떤 지층들이 있었던 것이었고, 그것을 현대 사상 안에서 굉장히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준 게 뭐 아감벤이었죠. 이 언저리에서 이루어지는 '숨겨진 대화'가 보여주는 지적인 계보는 사실 한국에서는 몰랐던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당시 일본에서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지만 아직 탐구되어야할 것이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었던 것이에요. 그런 배경 속에서 슈미트를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제 중심에는 항상 슈미트가 있었던 셈이죠. 지금도 읽으면, 뭔가... 이렇게 마음이 허할 때...하하하.

2. 슈미트의 사상에서 정치신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전통적인 해석과는 다른 방향으로 읽고자 할 때, 이 책을 어떤 관점에서 독해할 수 있을까요?
『정치신학』이라는 책 자체에 그냥 오소독스(orthodox, 정통적인)한 해석은 독일의 '보수혁명'이라는 맥락 속에 있습니다. (보수혁명을 주장했던 이들의 맥락에서는) 바이마르 체제 그러니까 베르사이유, 바이마르 체제와 결부된,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가 구축해놓은 '강건한 독일', '통일된 독일'을 빌헬름 2세, 그러니까 아들이 망쳐놓은 거죠. (그런데) ‘빌헬름 1세로의 회귀’, 『정치신학』을 (이런 식으로만) 읽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 그 후에 바이마르 체제의 혼란을 거쳐서 나치로 가는 어떤 길목 같은 걸로 (『정치신학』을) 읽는데, 중요한 것은 이제 그 판단을 더 어떻게 심화할 것이냐라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수혁명’이란 것은 일면 맞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이 당시의 복잡한 스펙트럼과 맥락들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죠. 보수혁명 부분은 그렇고, 두 번째, 나치로 가는 길목을 열었다는 것, 이것은 사실 좀 오류가 있습니다.(슈미트는 30년대까지 나치를 불법화하라고 주장한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이 책은 오늘날의 어떤 분류에도, 기존의 어떤 좌파, 우파, 보수, 진보(와 같은 기준만으로는) 잴 수 없는 ‘어떤 책’인 것이죠. 배치가  전혀 다르고, 대치의 양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벤야민이나 슈미트, 아까도 말씀드렸던 그런 ‘숨겨진 대화’라고 하는 것들 앞에서 일단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옳아서 멈춘다기 보다는 ‘어? 이거 잘 모르겠네’라는 의미에서 멈춰야된다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정치신학』의 의미는 (당대의 자장이라는) 동시적 맥락 속에 있습니다.

(심지어) 이 사람(칼 슈미트)은 의회비판에서는 무정부주의자들하고 똑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사회주의자들하고. 그런 (일반적인) 보수주의를 넘어서는거죠. 결국 어떻게 보면 의회적 좌우대립을 넘어선 곳에 굉장히 급진적 좌우대립이 있는 셈입니다. 이를테면 도노소 코르테스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프루동입니다. 그러니까 슈미트에 따르면, 악마와 그리스도 사이의 싸움이 문제고, 적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싸움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굉장히 묵시론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묵시론적으로 바이마르 체제를 본 것이죠.

정리하자면,『정치신학』이 어떤 판에서, 어떤 위치를 갖느냐라는 질문은, ‘어떤 판이 어떻게 바뀌느냐’, (또는) ‘어떻게 바뀌어 보이느냐’와 같은 질문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마 아감벤이 그의 책 『예외상태』 4장에서 벤야민과 슈미트의 ‘숨겨진 대화’(히든 다이얼로그)라는 표현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더 크게, 아감벤 식으로 얘기하자면, 그것은 ‘통치성’에 관련된 이야기이지 결코 무슨 어떤 법의 정당성이라거나, 혹은 어떤 체제의 정당성이라거나, 어떤 인간의 존엄성에 관련된 인권에 관련된 이야기라거나 하는 그런 얘기가 아닌 것이죠. 그냥 ‘통치성’에 관련된 이야기 즉, 인간을 통치한다라고 하는 ‘신학적 기원’을 갖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정치신학』이 열어주는 ‘정치적인 것’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죠.
                                 
3. 아감벤과 벤야민을 칼 슈미트와 함께 읽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합니다.
슈미트를 읽으니까 뭔가 돌파구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고, 그러면서 헤겔도 다시 보게 되고, 물론 칸트도 다시 보게 되고, 아도르노도 다시 보게 되고, 그러니까 독일 사상이라는 거에 눈을 뜨게 된거죠.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프랑스 현대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다 독일 사상이 옮겨간 거잖아요. 독일 사상이라고 하는 것에, 말하자면 (이런 말 하면 뭐하지만) 오리지널이 있구나 라는 것이 제 생각이었고, 아감벤하고 만났던 것은, 말하자면 조르조 아감벤이라는 사람한테 좀 저를 덧댄거 같은, 그러니까 딜타이를 보면서 이게 뭘까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감벤에게서 조에(zoe)라는 말을 보고 ‘어~ 뭐야 이거’ 이런 생각이 든거죠. 또 그런 것들을 접했던 사람이 아감벤에게서 레벤(leben, 삶)이라는 말을 보게 되고, 슈미트, 벤야민 뭐라고 하더라 이런 말도 보고, 그렇게 『호모 사케르』를 읽어보니, 조에(zoe), 비오스(bios) 뭐 이런 말이 나오니까 ‘오~‘이러면서 혹 하는거죠. 그 다음에는 뭐 사실 아감벤 책을 읽어보면 무지 재미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빨려들어간 것도 있는거죠. 아감벤 책에 빨려들어간 것도 있고.

아감벤이 파악하는 슈미트, 아감벤이 파악하는 벤야민은 한편으로는 아감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일수도 있죠. 또 그래서 아감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것에 대해서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일단 아감벤은 벤야민이나 슈미트, (아까 얘기했던) 슈미트라는 사람이 펼쳐놓은 장(場)에 대한 물음이나, 혹은 벤야민이 펼쳐놓은 장에 대한 물음을 연구사적인 의미에서 훌륭하게 재구성해놓은 사람이라고 봐요. 그리고 사실 무페나 지젝, 또는 네그리, 발리바르까지 포함해서 굉장히 실천적인 관심이 있다라면 아감벤한테는 그런게 안느껴져서 저는 좋았어요. ‘실천적인 지향으로 안나가고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그래서 모범으로 삼고 싶은 연구자였습니다. 자기가 끌어모으고 읽었던 자료를 구성하는 이 솜씨, 사실 그것만 따져보면 무페나 네그리, 발리바르보다는 아감벤이 한 수 위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는, 그건 벤야민하고 비교해서도 그렇고. 아감벤의 그런 ‘솜씨’에 비견될만한 사람은 슈미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구자로서의 솜씨, 글쓰는 솜씨에 관해서는 아감벤하고 슈미트는 비견이 될만한 인물인 것이죠.

4. 아감벤이나 여타의 다른 현대 철학자들을 통해 슈미트를 읽는 것과 슈미트 그 자체를 읽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정치신학이라고 하는 책을 통해서 보면, 이 책을 통해서 구성되는 적대가, 발리바르나 무페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굉장히 복잡하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기존에 있는 적대방식에 따라서 답을 내리거나 거기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다른)하나를 덧댈 수 있는 ‘차이의 가능성’이라거나 ‘적대의 가능성’을 열어보여 주는 것, 이런 것이 정치사상이든 형이상학이든, 무엇이든 간에 ‘사유가 가지고 있는 임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그 얘기는 슈미트에 직해서 얘기하자면 어떤 ‘정상상태’가 가능하기 위해서 그것이 덮어두고 있었던 ‘예외상태’들을 열어주는 것이죠.

아마 슈미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들 속에 있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그건 슈미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해당이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슈미트와 같이 기존의 적대의 양상들의 굉장히 상대화 시키거나 혼란스럽게 만드는 그런 책들을 읽는 까닭은, 어쨌든 자기가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것을 ‘대상’으로 삼음과 동시에 그 대상을 구성하는 방식, 그러니까 능동적 구성과 소여의 어떤 대상이 식별 불가능하도록 서술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은 굳이 한국사회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겠죠. 슈미트도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권이라는 게 뭡니까’ 라고 얘기했을 때 ‘예외상태다’라고 하는, 말하자면 법적사유의 새로운 계기를 만든. 새롭지만 여기 뒤에 ‘33년도 서문’에도 쓰지만 ‘국법은 여기서 끝난다’고 법학자들이 덮어놨던 영역입니다. 그러니까 ‘새롭지만 낡은 문제’인거죠. 아마 대가의 손길이라는 건 그런 것 같습니다. (낡은 문제이지만, 그것을 새롭게 제기하는 것, 새로운 문제지만 사실은 낡은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슈미트의 사상의 대단한 점이고, 그것이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5. 다양한 인물과 사상들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향후 어떤 계획이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냥 제가 전공이 불투명한 거를 불투명한 채로 제도화할 수 있느냐 그런 것이 저의 연구자로서의 과제입니다. ‘전공을 불문에 부치는 제도화가 있을 수 있는가’ 이런 게 저한테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두 번째는 제가 이제 실제로 무언가를 읽고 무언가를 쓸건가 하는 것인데, 독일, 한국, 일본 이 세 가지(의 맥락에서 봐야하)죠. 세 가지는 단순히 독일이며 한국을 슈미트처럼 현재형으로 불러와서 보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시간의 차이들과 시점의 차이들, 그리고 언어의 차이를 보고, 그것들의 다분히 위계적인 질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언어의 차이는 다분히 위계적인 질서이지만, 그것이 놓여있는 어떤 정치적 상황 속에 (그것과는 다른) 얽힘이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정치적 상황에 얽힘의 차원하고 언어적 위계의 차원하고 그 사상의 흐름의 방식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다분히 일방향적인거죠. 일방향적인 흐름하고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던 어떤 시간의 차이, 이런 세가지 차이들 속에서 지성사의 지층들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들어 있는지 써보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한국을 케이스로 쓸 때도 있고, 일본을 케이스로 쓸 때도 있고, 독일을 케이스로 쓸 때도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미국에 관해서 좀 쓸 때도 있겠죠. 그러니까 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런 것들이 다 제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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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학 - 10점
칼 슈미트 지음, 김항 옮김/그린비
2010/11/29 09:05 2010/11/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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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ej 2010/11/29 14:49

    이렇게 길게 인터뷰를 했는데 도대체 무엇이 정치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장인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핵심만 빗나가는 인터뷰를 하기도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 그린비 2010/11/29 15:41

      안녕하세요 sej님.
      저는 sej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김항 선생님의 4번의 답변에서 느낄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책을 직접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