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만 학력 늘릴 생각 말고, 진짜 배우는 힘[學力]을 되살리자.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교육을 받기 위해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조건은 우리가 점점 더 겸손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고대 인도의 책들을 보면 ‘비디야’(교육)와 ‘비나야’(겸손)가 동일하게 쓰인다. 산스크리트어에서 ‘비나야’는 교육과 동의어이며, 그래서 학업을 완수한 학생을 ‘비니트’, 즉 겸손이 완성된 사람이라고 부른다. 겸손은 참된 교육의 열매이다. 교사는 항상 학생에게 겸손하게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학생은 교사로부터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교사와 학생은 서로를 동료로서 존중해야 하다. 예전에는 교사와 학생이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학교를 위한 기도문을 함께 외웠다. ‘우리의 공부를 활력으로 채워주소서.’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다. 그 기도는 교사와 학생이 모두 함께 공부한다고 주장한다. 교사는 학생을 도와주는 가운데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선(善)을 발견하게 되며, 학생은 교사를 도와주는 가운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선을 발견하게 됨을 양자 모두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_비노바 바베, 『버리고, 행복하라』, 김문호 옮김, 산해, 2003, 46쪽.

학력 인플레이션의 시대다. 한국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87%에 달하고, 석사/박사를 따고도 모자라 박사후과정을 밟아야 하고, 평생교육원/사이버대학에 더하여 각종 아카데미 등이 넘쳐난다. 이렇듯 배움의 기회는 늘어났는데, 학력(學歷)이 ‘학교를 다닌 이력’, 즉 이력서에 한 줄 늘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한다. 대학이 직업양성소가 되고, 학업이 (미래의 일자리를 얻기 위한) 노동(고통)으로 여겨짐에 따라 우리는 배움으로부터, 아니 배움에게조차 소외되었다.

배움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나 배운 사람이야”라는 속물성만 남는다(배웠으니 이렇게 행동해야 해. 배웠으니 번듯한 직장을 가져야지. 배웠으니 이만큼은 벌고 써야지……). 전통사회에서 공부란 ‘삶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앎’(삶을 지속시켜야 하는 만큼 학업 역시 ‘지속적인 일’이었다)이었지만, 서구사회에서 ‘근대’라는 것이 발명되고 ‘과학’과 ‘이론’이란 이름으로 지식이 어떤 ‘단단한 실체성’을 띠는 것,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면서 ‘배운 게 자랑할 만한 일’, 행세할 수 있는 일, 권력에 가까이 가는 일처럼 여겨졌다. 사실은 체제/권력의 실행자가 될 뿐이며, 그 자신도 배움 자체의 즐거움보다는 배움의 유용성만을 따지는 사람이 되어 간다는 사실은 간과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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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즉불고(學즉不固) _ 지식이 협소한 사람은 자칫 자신의 좁은 생각에 사로잡혀 완고한 사람이 되기 쉬우니 학문을 갈고 닦아 유연한 머리로 진리를 배우라.(『논어』학이편(學而篇))

프랑스어에서 ‘배우다’와 ‘배워주다’(가르치다)는 한 단어다. apprendre로서 ‘쥐다/얻다’를 뜻하는 prendre에 ‘~을 향해’, ‘~ 앞으로’를 뜻하는 접두사 ap-(ad-가 p 앞에서 변화한 말)가 붙은 것인데, 어원을 풀어보니 역동성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앉아서 받아먹는 게 공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는 게 많은 자는 배울 게 없다. 모르는 자가 앎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겸손하지 않고서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다. 반대로 배워주는 자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알려줌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된다. 가르칠 것이 없어질 때 그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새로운 앎에 대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고대 인도인들이 학업을 마친 이에게 붙인 ‘비니트’(겸손이 완성된 사람)는 아마도 누구에 의하지도 않고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스스로 공부해 갈 수 있는 능력, 또한 언제든 자신의 앎을 공동의 것으로 돌리고 새로 배우려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이것이 진짜 학력(學力), 배우는 힘이다. 아마도 배우는 이는 교사로부터 그 선함을 배울 것이고, 그 선함을 따르는 학생으로부터 교사는 배우는 힘이 선(善)을 낳는다는 앎과 책임감을 통해 겸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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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비노바 바베는 학생이 (직접) 돈을 내고 교육받는 것에 반대한다. 교사가 학생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봐서는 안 되고, 삶에 대한 배움을 얻는 데 너무 비싼 돈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국가와 지역 공동체의 과제로 돌리고 있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배우는 힘, 겸손함과 선함을 갖춘 사회라면 많은 일들이 정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니 그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겸손하면서도 능동적이고 배움을 즐거워하는 사람을 키워내는 일, 그거야말로 경제효과 30조, 아니 300조는 너끈히 넘길 일이다(기껏 배웠다는 사람들이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며 감나무에 철사로 감이나 묶어놓는 코미디밖에 못하니 그 돈을 쓰고 싶을 리가 없겠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누가 돈을 대주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비싼 학비 들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

- 편집부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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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행복하라 - 10점
비노바 바베 지음, 사티쉬 쿠마르 엮음, 김문호 옮김/산해
2010/11/30 09:50 2010/11/3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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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순진한양 2010/11/30 11:05

    무엇을 배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어떤 자세로) 배우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요즘 친구들이나 후배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중/고등 - 대학 때 배운 것 보다 최근 2~3년 동안 배운 것이 10배는 더 된다고요.
    위의 글처럼 스팩 쌓기 혹은 취업의 도구로써 하는 공부에는 애정이 가지 않아요. ㅋ

    • 그린비 2010/11/30 15:09

      말씀해주신 것처럼 어떤 자세로 배울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공부를 위해서는 점점 더 겸손해져야한다는 말이 가슴에 남더라구요. ^^

    • 순진한양 2010/12/01 10:44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일주일간 외부에서 교육이 있어서 나왔는데요(지금은 쉬는 시간 ^^)
      회사에서 무료 쿠폰이 생겼다고 무조건 가서 들으라고 해서 듣고는 있습니다 ㅋㅋ
      뭐 사실 업무에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갑작스레 강제로(?) 끌려오니까 별 감응이 없군요.
      차라리 이 시간에 들뢰즈 수업을 들으면 눈빛이 요렇게? +.+

    • 그린비 2010/12/01 14:23

      아하하!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부 교육 잘 마치시길 바랄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