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얼굴은 과거를 향해 열려 있다.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앞에 나타날 때, 천사는 잔해 위에 잔해를 쌓고 그것을 그의 발밑에 던져 놓는 하나의 파국을 본다. 천사는 머무르길 원하고, 죽은 자들을 깨워서 조각난 것을 결합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폭풍은 낙원으로부터 불어와서 그의 날개를 장악한다. 그것은 너무 강렬해서 그는 더 이상 날개를 접을 수가 없다. 천사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동안, 이 폭풍은 천사의 등이 향한 미래를 향해 그를 불가항력적으로 밀어낸다.”(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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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 「새로운 천사」 _ 1920년에 파울 클레가 그린 수채화. 한동안 벤야민이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잘 알려진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아홉번째 테제입니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것은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이지요. 천사는 과거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저 과거라는 공간에서 무언가가 손짓하고 있는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낙원으로부터 폭풍이 불어와 그녀의 날개를 장악하고 맙니다. 그녀는 이제 저 먼 곳으로 날아가야 할 것만 같습니다. ‘미래’라고 부르는 곳, 폭풍은 그녀에게 그곳으로 나아가라 합니다.

그런데 과거(過去)의 속삭임은 그녀의 발목을 끝끝내 붙잡습니다. 우리가 흔히 ‘지나간 것’(過-去)이라고 부르는 것, 저 먼 연대기 속으로 사라졌다고 믿는 그것이 현재에도 살아 있어 그녀에게 손짓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머무르길 원하고”, 떠나지 못해 망설입니다. ‘파국’(catastrophe)이 일어나고 있는 그곳에서 과거의 잔해들을 모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것만 같습니다. 파국의 저편에서는 유토피아의 미래가 펼쳐지고 있지요. 폭풍이 가자고 하는 그 미래가 바로 유토피아라는 이름의 공간입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유토피아의 이면에서는 상처받은 과거의 흔적들이 지나간 연대기 속으로 온전히 떠나가지 못한 채 남아 있습니다. 폭풍이 제시하는 유토피아의 약속 앞에서, 천사는 상처 입고 떠나지 못한 삶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얼마 전 소설 한 편을 읽다가 벤야민의 이 단편이 떠올랐습니다. 그 소설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1995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내용이 이 단편의 메시지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득 제 머리에는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시작은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사건이었겠지요. 제가 아직 한참 어리던 시절, 낯설고 괴이하게만 다가왔던 그 사건 이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IMF경제위기(1997년)가 찾아왔습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운명적으로 그 사건들은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60~70년대의 경제개발과 80년대의 경제호황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소설 속에는 어느 건축가가 성수대교를 유리건축물로 복원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리로 복원해도 차가 다닐 수 있다고, 그 유리 위를 달리며 사람들은 지난 시대 경제개발의 허약함과 폭력성을 환기해야 한다고. 저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머릿속으로 유리로 된 성수대교를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위태롭게 그 위를 달리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유리건축물로부터 지나간 시대에, 미처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알리지 못한 채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벤야민의 저 글은 20세기 진보와 발전의 광풍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쳐 온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과거는 아직 떠나가지 못한 채 지금 우리의 삶에 남아 있다고.

- 편집부 고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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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삶의 예술> _ 그림 속 남자는 이미 불균형하게 성장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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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7 09:46 2010/12/0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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