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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이 소설 「고향」에서 묘사한 고향의 모습은 그가 다녀온 고향의 실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향 사오싱은 루쉰이 기억하던 어린 시절의 고향이 아니고, 눈앞에 나타난 황량한 풍경은 생기가 없는 서글픈 정경이었습니다. 일가친척들과 오랜 세월을 두고 함게 살던 옛집도 이웃에 팔아버린 상태였고, 살고 있는 집도 내주어야 하는 기한이 임박해있었죠. 그래서 루쉰은 정월 초하루 전날 서둘러 옛집과 고향을 영원히 떠나야했습니다.

내 기억 속의 고향은 이렇지 않았다. 그건 훨씬 더 근사했다. 그러나 기억 속의 그 아름다움을 떠올려 멋진 대목을 말하려 하면 영상도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져 버린다. 마치 그런 것이라는 듯. 그래서 나 스스로 이렇게 해명하는 것이다. 고향도 본시 그렇다. 진보가 없다 한들 슬픔을 느낄 이유는 없다. 그저 내 심정의 변화일 뿐이니까.
─ 『외침』,「고향」, 93쪽

  루쉰이 집에 돌아오자 루쉰의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며, 어린 시절 친구인 룬투에게 루쉰이 왔다는 연락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룬투 역시 「고향」에 묘사된 것처럼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천진난만하던 그 룬투가 아니었습니다. 오래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계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 것이죠. 깊은 주름과 소나무 껍질 같은 거칠고 울퉁불퉁한 손을 가진, 머리에는 너덜한 털모자를 쓰고 몸엔 얇은 솜옷을 한 벌만 걸친 채 잔뜩 움츠리고 있는 룬투의 모습에 루쉰은 무척 놀라게 됩니다. 애들도 많이 태어나고 흉년과 기근, 가혹한 세금, 군인, 비적, 관리, 향신이 쥐어짜서 그를 장승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버린 셈이죠. 루쉰은 고향을 떠나면서 이 때의 기억을 「고향」에 고스란히 옮깁니다.

나는 드러누워 배 밑창의 철썩이는 물소리를 들으며 내가 내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룬투와 이 지경으로 멀어졌지만 우리 후배들은 여전히 한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 바라기는, 저들이 더이상 나처럼 되지 말기를, 또 모두에게 틈이 생기지 않기를……그렇다고 또 저들이 의기투합한답시고 나처럼 고통에 뒤척이며 살아가진 말기를, 또 룬투처럼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진 말기를, 또 다른 이들처럼 고통에 내맡기며 살아가진 말기를. 저들은 새로운 삶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삶을.
─ 『외침』,「고향」, 104쪽

이 절망이 백여년이 지난 '지금, 여기'서도 여전히 현재진형형이기에 루쉰의 말이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절망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2010/12/20 09:29 2010/12/2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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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 2010/12/20 10:11

    영상 마지막 페이지의 오타가 살짝 거슬려서요. '발최'가 아니라 '발췌'인 듯하네요.

    • 그린비 2010/12/20 11:25

      수정했습니다. 제보 감사드려요.

  2. 순진한양 2010/12/20 13:55

    '고향'편을 보면서 느꼈던건데요... 왜 주인공인 '쉰'은 변해버린 고향, 인물들 특히 룬투에 대해서 그렇게 아쉬워 했을까요?
    룬투가 '나으리'라고 말했을 때 가슴으로만 먹먹해 하면서 겉으로는 그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 그러면서 장벽이 생겼다 한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이... ㅠㅠ
    쉰 스스로가 벽을 허물며 말을 편히 섞자고 말만 했었어도 좋았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 그린비 2010/12/20 14:42

      루쉰은 도련님이었고, 룬투는 루쉰의 집에서 일하던 사람의 아들이었지요. 신분차이가 났지만, 어린 루쉰과 룬투는 서로 친구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친구로 기억하던 룬투가 나으리라고 불렀을 때, 거리감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요?

      사회 관습이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구요. 아마 루쉰이 말을 편하게 하라고 했어도 룬투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 부분에서 벽을 느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타깝죠. ㅠㅠ

  3. 여행기중독자 2011/01/09 11:46

    글이 엮여 있는 것을 뒤늦게 보았습니다.
    덕분에 좋은 글과 전집번역 소식을 접하게 되었네요.
    그린비의 고미숙 작가님의 책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납니다.
    언제나 진정성 있는 기획으로 좋은 책을 펴내시는 출판사구나...
    하고 주제넘는 생각을 하는 중 입니다. ^^

    • 그린비 2011/01/10 09:14

      아하하. 감사합니다! >_<b
      칭찬을 해주셔서...쵸..쵸큼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블로그에서도 자주 뵈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