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 『미디어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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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을 써 달라는 신문사의 청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내 인생은 책’이어서 쉬울 거라 생각했다. 후회하는 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난감했다. 명색이 출판사 사장이고, 책과 더불어 산 게 20년이 훌쩍 넘는데도, 딱히 떠오르는 책이 없다.

내 출판 경력 20년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묘하게도 7년 주기를 띤다. 1기는 출판사를 열고 아이엠에프(IMF)가 한국사회를 덮치던 시기까지. 이때 나는 사냥꾼의 심정으로 잘 팔릴 만한 책만 쫓아다녔다. 재수 좋은 날엔 간혹 큰놈을 잡기도 했지만, 허탕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1997년 서점들이 줄줄이 부도가 났다. 출판사도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 그대로 접기엔 미련이 너무 컸다.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 책으로 승부하자고 마음먹었다. 사냥 생활을 마감하고 양계장 사업으로 업태를 바꿨다고나 할까. 2기는 1998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다. 목록에 조금씩 살이 붙어갔다. 우리 출판사 모토가 “나를 바꾸는 책, 세상을 바꾸는 책”이다. 인문 관련 책을 꾸준히 내면서 나를 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세상을 바꿨는지는 글쎄였다. 허전했다.

그때 만난 책이 마셜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다. 이 책 이후로 내 출판 인생의 2기와 3기가 나뉜다. 그만큼 힘이 센 책이다. 니체의 책이 그렇듯, 힘이 센 책은 특징이 있다. 보이는 것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준다는 것,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워진다는 것. 『미디어의 이해』는 반세기 전인 1964년에 출간된 책이다. 매클루언이 이 책을 쓴 때는 텔레비전이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시기다. 그는 뉴미디어인 텔레비전의 등장을 보면서 미디어의 계보학을 새로 쓴다. 이 계보학에는 신문, 잡지, 영화, 라디오 등 우리가 익히 아는 미디어는 말할 것도 없고, 도로, 시계, 의복, 주택, 바퀴, 자동차, 광고, 게임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거의 모든 것들이 미디어의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에게 미디어란 결국 네트워크를 통한 인간의 확장이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30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이 지금 시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터넷이야말로 네트워크를 통한 인간의 확장, 그 잠재성의 실현을 극명하게 보여주니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내 허전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책을 내는 나의 행위가 네트워크 밖에 뚝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왜 네트워크를 맺으려 하는가.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내 몸조차도 수조 개 세포의 연합체다. 늘 개체인 동시에 공동체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네트워크는 존재 그 자체다. 결국 나는 이 책을 통해 책이, 출판이 뭔지 깨달음을 얻었다. 출판은 지식을 매개로 네트워크를 맺어나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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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어떤 개별 지식인의 천재적 두뇌가 아니라, 익명으로 존재하는 여러 두뇌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태어나고 있다. 지식은 아카데미의 강단이 아니라 대중적 네트워크를 타고 소통되고 있다.."(고병권, 『추방과 탈주』)

나는 앞으로 더욱 많은 책을 출간하고 싶다. 지식의 바벨탑을 쌓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가 출간하는 책들이 ‘지식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한 올의 거미줄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게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는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을 훤히 밝혀주는 별빛”(루카치)과도 같은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책이 한 권 쓰고 싶어졌다. 제목은 『출판미디어의 이해』, 매클루언에게 받은 선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서다.

- 대표 유재건

※ 이 글은 한겨레에 실린 글'내 인생의 책'을 옮겨온 것입니다.
알라딘 링크



미디어의 이해 - 10점
마샬 맥루한 지음, 김성기 & 이한우 옮김/민음사
2010/12/22 09:59 2010/12/2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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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ipp 2010/12/22 20:38

    모르는 책인데 급 궁금해집니다,, ^^
    기회가되면 읽어보고 싶네요 ..

    • 그린비 2010/12/23 10:29

      이번이 바로 기회입니다!! +_+
      저도 이 책이 궁금해서, 일단 주문만 했지요. 아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