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거실에 놓인 화분들이 시들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식구들이 너도 나도 바빠 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큰 통에 물을 받아 화분 하나하나에 물을 주었다. ‘(그러고는 혼잣말) 언제 이렇게 컸지? 다음 달엔 좀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주어야겠다.’ 물을 주다 보니 어쩐지 나도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게 되었다.
평소의 나를 아는 사람이 이 상황을 목격했더라면 아마 기겁을 하고 놀랐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색하게 느껴지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화분이 시들해지든 말든, 설령 다 죽어 간다 하더라도 상관없이 ‘슥슥’ 자리를 펴고 누워 뒹굴거렸다면 모를까. 누군가 화분에 물을 주라고 하더라도, 대충 주는 시늉 정도만 하고 다시 벌러덩 눕곤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 말도 안 섞던(?) 화분을 먼저 생각하고, 마치 화분이라도 된 것마냥 갈증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오글거릴 지경이었다. 음, 정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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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을 읽는 사람과 '연결'되는 것, 그것이 바로 출판이 아닐까?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상의 한 장면으로 글을 연 것은, 출판이 존재와 존재를 연결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욕망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함께 (내 문제로) 느끼는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나는 전혀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놀라지 마시라. 앞서 소개한 장면이 그나마 ‘내가 어떤 존재와 연결되어 있고, 뭔가를 함께 느낄 수 있기는 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가장 최근의 일이니 말이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 혹은 연출력이 뛰어난 멜로드라마에만 감정이 헤펐던 나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이웃들에는 심각할 정도로 무덤덤했다(이 진술을 과연 과거형으로 쓸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간혹 누군가 먼저 나서서 의미를 부여해 주는 주변의 일들(노동문제, 기아문제, 소수자이슈 등)에도 감정을 쏟긴 했지만, 그것이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누가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하긴 했었는데……그게 뭐였지?’). 내가 진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로 느끼고 생각한 만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한다. 어깨에 잔뜩 힘주며 그럴듯하게 말하기 이전에, 지금 당장 나에게 와 닿는 생각과 감정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렇게 나에게 솔직해지고, 일상에서 느낀 점들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문제도 내 문제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돈이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돈 문제에 쿨한 척, 예쁜 물건을 보면 사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장애인을 보면 두렵고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척, 외모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살찐 내 몸은 혐오하게 되는 것……. 나는 무심코 흘려버리거나 덮어 두려고 했던 일상을 누군가는 먼저 나서서 깊게 생각하고, 시원하게 말해 준다. ‘적어도 나는 아니야’라고 짐짓 거리를 두었던 것들을 ‘내 것’이라고 받아안는 분들이 있다. 고미숙 선생님의 일상, 강의, 책에서 힘이 느껴지는 건,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을 하는 건, 바로 선생님 자신부터가 스스로에게, 동료들에게 솔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욕망에 대해 거리를 두고 평하기 이전에, 내가 일상에서 직접 느끼는 욕망에서부터 소통을 시작했을 때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것 같다.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는 책이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길 바란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책을 통해 더 많은 존재들과 연결되길 바란다. 그런데 지금껏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문제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만나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문제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 문제는 아니라고 늘상 생각해 왔던 것을 말이다(혼자 잘났다고-_-;;;;). 내 삶에 피 터지게 싸울 만한 문제가 없었기에,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겠다는 의욕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너무 내 문제로 와 닿아서 밤잠을 설칠 만큼 중대한 문제가 나에게 있었던가. 두리반에 전기가 끊겼던 날에도, 용산 남일당이 철거되던 날에도, 누군가 일자리 문제로 목숨을 끊던 날에도 나는 잠만 잘 잤던 것 같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문제가 없는 삶, 문제될 것이 없는 삶’인 것이다. 내 삶을 걸고 싸울 만한, 해결해 보고 싶은 문제의 지점들을 찾을 수 있을 때, 앞서 말한 의미의 출판이 시작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존재와 존재를 연결하고,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내 문제로,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출판 말이다. 나의 문제와 주변의 문제에 예민해지고 함께 느낄 수 있으려면 나 같은 ‘무덤덤-이’에게는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매순간을 내 문제화하는 훈련, 훈련, 훈련. 그러기에 타인의 문제에 가슴 깊이 공감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하는가 보다. 남이 될 수 있는 능력.*

남이 될 수 있는 능력


2.
2010년의 나는 출판 과정을 또 다른 의미에서 ‘더 많은 남이 되는 과정’(헉 이미지로 떠올리면 곤란하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8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원츠-니즈-디멘드’로 이어지는 출판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관련된 무수한 존재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걸 배우면서부터 말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은 물론이거니와 저자와의 소통, 본문 편집, 디자인, 제작, 마케팅 등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질문, ‘나와 연결되는 존재들은 누구이고, 대체 무엇을 원하는가?’
지난 그린비 내부 신인 교육 과정에서 함께 배웠던 것들을 생각해 보면, 출판 과정 자체가 ‘남이 되는 과정’임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 (첨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조사 하나, 쉼표 하나에서도 저자 선생님의 의도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교정을 하는 내내 저자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 글자 크기, 자간, 여백을 결정하는 것도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을 생각하며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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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장애학 함께 읽기』는 시력이 안 좋은 분들을 위해 가독성이 좋아지게끔 글자크기를 키우고, 여백을 많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음성으로 된 책을 직접 제작했다)
. 책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디자인적 요소를 결정할 때에도 ‘나’를 내세워서는 곤란한데, 중요한 건 ‘텍스트가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는지’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제작을 할 때는 종이를 아껴 쓰고, 절차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버리는 종이가 늘어날수록 환경은 파괴되고, 그 비용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돌아가게 되니 말이다……. 이렇듯 출판인은 저자, 독자, 동료, 그리고 자연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관련된 모든 존재와 관계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장애학 함께 읽기 편집 후기 보러 가기)
생각만 해도 숨이 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저자가 되었다가, 독자가 되었다가, 옆자리의 동료가 되었다가……. 가끔은 앉아만 있는데도 코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온다, 후욱.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떤가? 여전히 나는 여러 부분에서 ‘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일상에 무덤덤하고, 작업 속도와 질도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동료들과 소통하지 않으면서(동료의 즐거움 따로, 내 즐거움 따로) 일상의 대부분을 내 감정과 속도에만 맞추어 가고 있는 듯하다(동료의 속도 따로, 내 속도 따로). 빨리빨리 더 많은 남들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에. 기꺼이 남이 되지 않고서 이 안에서 과연 어떤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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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위해서는 기꺼이 남이 되는 능력, '나'를 지우는 능력이 필요한 건 아닐까?

3.
‘나에게 출판이란’이라는 명목으로 이것저것 이야기하긴 했지만, 결국은 그린비에서 일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 귀동냥으로 들었던 이야기들, 스스로에게 답답했던 점들을 두서없이 풀어놓은 것 같다. 과장된 것 같아 지우고 싶은 부분도 있고, 뭔가 더 채우고 싶기도 한데(내 솔직한 이야기, 구체적인 이야기가 아직은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1년 후, 내가 다시 이 글을 보게 되었을 때, 다시 출판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 가지 쳐낼 부분은 과감히 쳐내고, 채워 넣을 수 있는 구체적인 부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쓰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바람이 생겨 버렸다. 어떤 해결되지 않은 문제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는 이야기, 원고가 너무 내 이야기여서 읽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는 이야기, 저자 선생님께 호되게 혼이 나 개과천선했다는 이야기, 동료들과 척척 리듬이 맞아 절로 흥이 났다는 이야기 등등으로 얼기설기한 지금의 빈 공간들을 채워 보고 싶다. 그래서 ‘나에게 출판이란?’이라는 똑같은 주제로도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을 더 많이 만들어 가자(!)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자, 나의 바람이다.

- 편집부 김미선

2010/12/28 10:55 2010/12/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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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비출판사 :: 출판사 새내기가 말하는 "나에게 출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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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llef 2010/12/28 13:28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 그린비 2010/12/28 13:59

      꼭 출판이 아니더라도 질문을 만들 수 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아하하.
      illef님께는 어떤 질문이 되었을까요? ^^

  2. 비밀방문자 2011/11/03 13:08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11/11/03 13:33

      안녕하세요. ^^
      답변을 댓글로 드리기 보다는 메일로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밀댓글로 메일주소 남겨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날이 정말 좋네요.
      즐거운 오후 보내시길 바랍니당~~ ^^*

    • 비밀방문자 2011/11/07 14:59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11/11/07 15:50

      메일 보내드렸습니다~ 메일 확인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