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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클라인, <넘버 2> _ 클라인의 그림에서 흰색은 여백이 아니라 검정색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형태이다.

‘은둔의 철학자’, ‘근대성의 조종(弔鐘)을 울린 사제’로 불리면서 푸코·들뢰즈·데리다로부터 낭시·라쿠-라바르트·아감벤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던 모리스 블랑쇼.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문학의 공간』이 그린비 ‘블랑쇼 선집’의 세번째 책(선집 권차로는 2번)으로 새롭게 번역·출간되었다. 『문학의 공간』은 작가이자 비평가로 활동했던 블랑쇼의 대표적인 문학비평서로, 이 책에서 블랑쇼는 말라르메, 카프카, 릴케, 횔덜린 등의 작품세계를 깊이 파고들어 그 숨은 의미를 드러내 주면서, 문학의 본질을 사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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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문학의 공간』은 블랑쇼 사상의 전반을 체계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책으로, 블랑쇼 전체 저작 중에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문학의 공간』과 함께 대표작으로 꼽히는 『무한한 대화』가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에 대한 대답으로서 블랑쇼의 후기 철학을 잘 보여 주고 있다면, 블랑쇼가 48세의 나이인 1955년에 출판한 『문학의 공간』은 시간적인 측면에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나 블랑쇼 전체 저작의 중심에서 그 사유의 전체를 보여 주고 있다. 초기의 문학비평과 소설 작업들에서 도출된 문학에 대한 사유들부터, ‘바깥의 사유’로 불리는 존재론적인 사유들, 그리고 ‘타자’와의 소통에 대한 사유들까지 블랑쇼가 평생에 걸쳐 수행했던 작업의 기본 구도가 이 책에 집약되어 나타나고 있다.(모리스 블랑쇼 선집 소개 글 바로 가기)

블랑쇼가 비교적 명료하게 자신의 사유 방법과 개념들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도 『문학의 공간』의 또다른 장점이다. 일반적으로 블랑쇼의 글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길고 복잡한 문체와 함께, 특정한 대상을 지시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내면의 움직임을 보여 주고 들리게 하는 블랑쇼 특유의 글쓰기, 특히 반-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쓰여진 그의 소설 작품들은 독자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 책은 블랑쇼의 이렇게 난해해 보이는 저작들에 대한 중요한 참조점이자 길잡이가 되는 책으로, 바깥, 밤과 낮, 예술, 글쓰기, 작품, 독서, 죽음 등, 블랑쇼가 ‘바깥의 사유’를 전개하면서 사용하였던 주요 개념들이 문학비평의 형식을 빌려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블랑쇼에 접근하고자 하는 독자는 바로 『문학의 공간』에서 블랑쇼를 이해하기 위한 ‘지도’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바깥(dehors)을 향하는 오르페우스의 시선
“오르페우스가 내려가는 것은 에우리디케를 향해서이다. 에우리디케는 그에게 있어서 예술이 이를 수 있는 극단이고, 그녀는 그녀를 숨기는 이름 아래, 그녀를 덮은 베일 아래 예술, 욕망, 죽음, 밤이 그곳을 지향하는 듯한 몹시도 어두운 지점이다. …… 이 ‘지점’, 하지만 오르페우스의 작품은 깊이를 향하여 내려가면서 그 지점으로의 접근을 보장하는 데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의 작품, 그것은 그 지점을 낮으로 데려가고, 낮 속에서 거기에 형태, 형상 그리고 현실성을 주는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이 ‘지점’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을, 밤 속에서 밤의 중심을 바라보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그는 그 지점으로 내려갈 수 있고, 보다 강한 능력으로 그는 그 지점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고, 자신과 함께 그것을 위로 끌어당길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벗어나면서. 이러한 벗어남이 거기에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것이 밤 가운데 드러나는 숨김의 의미이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그의 이주의 움직임 속에서 그가 이루어야 할 작품을 망각하고, 그리고 그는 그것을 필연적으로 망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움직임의 궁극의 요구는 작품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 지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서 그 본질을 붙잡는 것이다. 여기 그 본질이 나타나는 곳에서, 여기 그 본질이 본질적이고 본질적으로 나타난 것인 곳에서, 밤의 한가운데서.”(250쪽)

블랑쇼는 글쓰기의 본질을 ‘오르페우스의 시선’에서 찾고 있다. 탁월한 예술의 힘으로 명계로 내려가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돌아오는 오르페우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마지막 초조함을 참지 못해 뒤를 돌아보고 에우리디케는 다시 명계로 사라져 간다. 이때 에우리디케의 마지막 얼굴에 닿은 오르페우스의 시선에서 블랑쇼는 문학이 끊임없이 다가갈 수밖에 없는 부재의 순간, 작품에 다다르는 순간에 거기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문학의 숙명을 읽어낸다. 작가는 작품을 향하여 나아가지만 그가 이루는 것은 한 권의 책일 뿐이고, 그는 곧 작품에서 쫓겨난다. 블랑쇼는 바로 이러한 부재가 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주체가 명료한 의식 속에서 어떤 것을 표현하거나 설명하고, 그것이 독자에게로 곧바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깥’의 모호한 웅얼거림을 드러내어 보여 주거나 들리게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라는 것이다.

미셸 푸코의 표현처럼 블랑쇼의 사유는 ‘바깥의 사유’라고 부를 수 있다. 블랑쇼의 여러 저작들에서 이 ‘바깥’이라는 주제는 사유의 중심에 놓여 있으며, 그가 전개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 역시 이 ‘바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문학의 공간』 역시 마찬가지로 그 중심에는 ‘바깥’이라는 주제가 놓여져 있다. ‘바깥’은 문학 이전에 놓여져 있는 ‘문학의 기원’이며, 작가가 작품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야 하는 곳이자 독자의 읽기가 가능해지는 곳이다. 바로 이 ‘바깥’을 보여 주기 위해서, 블랑쇼는 말라르메, 카프카, 릴케, 횔덜린의 작품들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그 속에서 ‘죽음’, ‘고독’, ‘언어’, ‘작품’, ‘밤과 낮’, ‘이미지’와 같은 주제들을 건져 낸다. 

절대적 허무에서 공동체성으로
블랑쇼는 18세인 1925년 에마뉘엘 레비나스를 만나, 평생 변함없는 우정을 이어간다. 블랑쇼의 주저이자 그의 후기철학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무한한 대화』는 이렇게 평생 우정을 나누었던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한한 대화』 이전부터 이미 타자와 공동체라는 문제는 블랑쇼의 핵심적인 사유 주제였다. 『문학의 공간』에서는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을 인용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주인과 하인』의 등장인물인 브레후노프는 부유한 상인으로 인생에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다. 어느 날 하인인 니키타와 함께 러시아의 눈 속에서 길을 잃고, 단호하고 과감하게 니키타를 버리고 길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니키타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다. 브레후노프는 다시 단호하고 과감하게 소매를 걷어붙이고 니키타의 몸을 덥히기 위해 나서지만, 곧 자신을 무한 속으로 밀어 넣는 무언가를 느끼고 두려움과 기쁨 속에서 니키타 위에 몸을 눕히게 된다.
 
이때 브레후노프가 느끼는 것은 죽음의 절대적 수동성과 비인칭성이다. 단순하고 자연적이며 불가피한 죽음. 니키타의 몸을 덥혀 보려는 선(善)이라는 의도도 사라져 버리는, 목표도 의미도 현실성도 없는 것으로서의 죽음. 하지만 블랑쇼는 이 절대적인 허무 속에서 브레후노프가 니키타 위에 몸을 눕힌다는 점을 눈여겨본다. “아직은 어떤 인간적 모습에 대한 희망이고 미래인 것처럼. 우리의 죽음을 다른 누구에게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건네면서 그들 속에서 얼어붙은 미래의 바탕을 기다리기 위해서만 우리가 죽을 수 있는 것처럼”(본문 243쪽) 브레후노프는 죽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 니키타 옆에 몸을 눕히는 지점이자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건네는 이 지점이 블랑쇼의 사유가 ‘절대적 허무’로 빠져들지 않고 ‘타자’와 ‘공동체’에 대한 사유로 나아가는 출발점인 것이다.

옮긴이 이달승
고려대 불문과와 서울대 대학원 미학과에서 수학하고, 파리 1대학에서 미술사 학위 과정을 마친 뒤, 영남대학교 조형대학 특임객원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학의 공간 - 10점
모리스 블랑쇼 지음, 이달승 옮김/그린비
2011/01/03 08:58 2011/01/0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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