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을 읽는다 ― 시작


루쉰을 읽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까? 아직까지 한 번도 던져 보지 않은 질문입니다. 저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말이죠. 중고등학교 때 공부에 별 취미가 없었던 저는 당연히 그때 읽어야 했던 책들에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응당 가질 법한 상식이 부족해 비웃음을 산 적이 많습니다). 루쉰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광인일기」나 「아Q정전」을 읽어 보긴 한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대학 때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제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여러 번 (다케우치 요시미 등을 거론하며) 루쉰 이야기를 했지만 꿋꿋하게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루쉰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루쉰 전집』을 발간하게 되었으니까요.

새로운 작가와 그의 작품을 만나는 건 흥분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매우 긴장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건 성격 때문일 텐데, 저는 어느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작품을 둘러싼 맥락들, 그 작품을 낳은 현실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편입니다. ‘현실들’이 복수형인 이유는 역사적 현실(예컨대 당대의 사회적 조건), 작가의 현실(예컨대 그의 생애), 그 분야(예컨대 문학) 등 다양한 현실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때때로, 아니 많은 경우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만나는 걸 방해합니다. 그의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알아야 한다는 태도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낳고, 그래서 그 책을 펼치는 것을 두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루쉰입니다. 중국 현대문학을 개시한 작가, 중국 현대사의 가장 빛나는 유물 중 하나,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인 존재, 그게 제가 지금껏 들어 온 루쉰의 위상입니다. 긴장감을 누를 수가 없습니다. 사실 다시 한번 그를 무시하고 넘어가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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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한 성격 탓에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몰려드는 스트레스와 두려움...

그렇지만 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세 권 중 우선 잡문을 담고 있는 7권 『거짓자유서, 풍월이야기, 꽃테문학』을 집었습니다. 글들이 짧아 부담이 덜할 것 같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루쉰을 읽는다. 이 말에는 단순한 독서를 넘어서는 어떤 실존적 울림이 담겨 있다.” 루쉰 전집을 번역하는 ‘루쉰전집번역위원회’ 선생님들께서 쓰신 「『루쉰 전집』을 발간하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덜컥 겁이 납니다. 저는 실존을 걸어야 하는 독서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몇 잡문을 읽었습니다. 한자에 매우 약하지만 사전 찾을 생각하지 않고 쭉 읽어 내려갔습니다. 순서도 무시하고 이리저리 건너뛰며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너무 재밌고 왠지 (이 순서와 속도로 읽어 내려가면 오늘은 읽을 수 없을) 뒷부분에는 더 재밌는 글이 나올 것 같아서였습니다. 한순간 긴장이 풀려 버립니다. 어느새 ‘한 번에 한 권만’이라는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2권을, 그 다음에는 1권도 살짝 들춰 보게 됩니다. 루쉰을 잘 몰라도, 루쉰의 당대를 잘 몰라도, 중국의 문화의 역사를 잘 몰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글들입니다.「‘바이샹 밥을 먹다’」에서「풍월이야기 후기」로, 그 다음에는「광인일기」로, 「외침 서문」을 읽은 뒤에는 「과학사교편」으로. 그는 중국의 고전에서 서구의 현대학문까지 그리고 언어학에서 생물학까지 아우를 정도로 박식합니다. 특히 역사에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현실의 모순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잡문은 분명 사람들로 하여금 구역질 나게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그것의 중요성을 더욱 잘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 대중의 영혼’이 지금 나의 잡문 속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7권 「풍월이야기 후기」, 531쪽)

또한 그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합니다. 놀랍게도 그는 어느 글에서 서양문물의 우월성을 칭송한 뒤 바로 그 다음 글에서는 그 문명의 야만성을 규탄합니다. 사대적이지도 국수적이지도 않은 그의 태도에는 사물의 근본을 파악하고자 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정신은 풍자이며, 힘 있고 날카로운 문장들로 더러운 현실과 자신의 적들을 공격합니다. 예컨대 7권에서 제가 읽은 모든 잡문은 조롱과 비판, 공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선 결코 기분이 좋지 않을 그런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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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G20에 매몰된 상황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풍자 포스터

루쉰의 첫인상은 이렇습니다. 당대의 현실과 매우 깊이 밀착되었던 그의 글들이 그 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도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건, 어쩌면 20세기 초 중국의 현실과 오늘 제가 살고 있는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그런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잡문이 현재 혹은 심지어는 내년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7권「풍월이야기 후기」, 504쪽)라고 말하듯 말이죠. 반면에 그가 역사와 사회를 초월한 인간 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잘은 모르지만 아직 제가 발견하지 못한 위대함이 더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혹은 이 글들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그의 새로운 면모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죠. 여하간 저는 이제야 루쉰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 그러니까 『루쉰 전집』을 한 번 훑어본 뒤 저는 이 사람의 글을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아는 것 말이죠. 역시 성격 때문인가 봅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의 중국은 어떠했는지, 또 (무엇보다도 그가 문학가인 만큼) 그가 쓰고 있는 단어들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루쉰이 병으로 아버지를 여읜 뒤, 한방을 증오하며 서양의술을 배우러 일본에 가지만, 거기서 ‘문예’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그 에피소드가 들어 있는 2권 『외침, 방황』의 「 서문」에서 루쉰은 이렇게 회고합니다.

한번은, 화면상에서 오래전 헤어진 중국인 군상을 모처럼 상면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가운데 묶여 있고 무수한 사람들이 주변에 서 있었다.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몽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해설에 의하면, 묶여 있는 사람은 아라사[러시아]를 위해 군사기밀을 정탐한 자로, 일본군이 본보기 삼아 목을 칠 참이라고 했다. 구름같이 에워싸고 있는 자들은 이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구경꾼이었다.
그 학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도쿄로 왔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의학은 하등 중요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리석고 겁약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건장하고 우람한들 조리돌림의 재료나 구경꾼이 될 뿐이었다. 병으로 죽어 가는 인간이 많다 해도 그런 것쯤은 불행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저들의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제대로 뜯어고치는 데는, 당시 생각으로, 당연히 문예를 들어야 했다(2권, 23쪽).

소년은 아버지를 잃고 저런 순간들을 겪으며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이후 우리가 아는 루쉰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비어 있는, 적어도 제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궁금해졌습니다. 마침 연말입니다. 지금 저는 내년 한 해 동안 책상에 『루쉰 전집』을 올려 두고 차근차근 읽어 나가는 새해 계획을 세워 볼까 고민 중입니다.

- 편집부 김재훈
루쉰전집 7 : 거짓자유서.풍월이야기.꽃테문학 - 10점
루쉰 지음, 이보경.유세종 옮김/그린비
2011/01/05 09:00 2011/01/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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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순진한양 2011/01/05 14:18

    저도 이제(?) 청년의 길로 들어서는데(사실 좀 오래 전부터 ㅋ)...
    어떤 소년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하얗게 변하는거 같습니다.
    아무런 것도 생각이 안 나거든요. ㅠㅠ
    이번에 루쉰 전집을 읽으면서도 똑같은거 같아요...
    말씀하신바와 같이 중국현대문학의 시작이자 하나의 세계인 '루쉰'의 글을 읽으면서
    '아! 뭔가 깨달아야겠다!'하고 읽기 시작하였으나 현실은 건진 것은 별로 없고
    그냥 소설책 읽는 듯 줄줄 읽어가는 자신을 보며 내공의 허전함을 통감합니다. ㅠㅠ

    • 그린비 2011/01/05 14:55

      와우~ 루쉰과 만나고 계시군요!!
      내공의 허전함이라... 루쉰의 글이 비수가 되어 돌아오고 계시군요.
      저는 이제 장년(?)의 길로 들어서는데요. 저도 비슷하답니다.
      우리의 허전한 내공... 루쉰으로 조금이나마 묵직해지길 바래봐요~
      아... 몇권을 읽고 계시는지 또 궁금하네요. ^^;

  2. 지니 2011/01/05 16:20

    루쉰을 살까말까 고민했었는데 이 글 보고 주문했습니다. 저도 뒷 부분이 기대되서 차례를 무시하는 독서를 오랜만에 하고 싶네요.^^ 절절한 루쉰의 문장 기대됩니다. 오랜만에 그린비 블로그 놀러왔는데 메인이 깔끔하게 정리되서 보기 좋아요. 재미진 글 여러개 읽고 갑니다~

    • 그린비 2011/01/05 18:15

      블로그가 더욱 나아졌다니 아 정말 기분 좋습니다.
      그리고 글(글쓴이는 빛나는 글을 쓰기로 그린비 내에서도 유명합니다.)을 보시고 고민을 뒤로하고 루쉰과의 만남을 결정하셨다니 멋지십니다. 7권은 잡문을 모아 놓았으니 차례를 무시하셔도 무방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루쉰의 투창과 비수의 문장과 격렬히 만나세요. 느낌도 남겨주시면 정말 좋겠네요!

  3. 풍심이 2019/08/21 00:40

    고양이 3마리잡사인 저는 매달 고양이 간식을 한번 사는 편인데
    이번에는 웰그롬 미우숲을 먹여봤어용 일전에 캔으로 된걸 한번 먹여봤는데 애들이 너무 잘 먹어줘서 이번에 다른걸 골라봤어용 한번에 하나씩 , 들고다니기에도 좋고 ~ 1회 급여량으로 딱 먹을 만큼만 주니까 먹다가 남길일이 없어서 좋아용 !!
    웰그롬 마이숲 그레인프리 제품은 밀가루, 옥수수, 콩 , 등 곡물을 사용하지 않아 육식을 통해 영양을 섭취하는 고양이의 생리적인 특성에 맞춰 어류와 육류의 함향을 높인 아주 좋은 건강한 고양이 간식이에용 !!!
    고양이간식 닭가슴살 , 새우속살, 연어뱃살, 참치붉은등살 총 4가지 맛이에용 ! 하나씩 냥이들에게 미리 맛보게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먹더라구요 지금은 저 웰그롬 들고 흔들면 냥이들이 울면서 얼른 달라고 울어용 ~ 그렇게 맛있었던 거닝 ..?
    무엇보다 웰그롬 모델 냥이 너무 귀여운거 같아용 ㅋㅋㅋ 입맛다시는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우리집 냥이들도 저렇게 표정을 지어준다면 너무나 심쿵일듯 !!
    제일 먼저 맛보게 한건 바로 참치 붉은등살 !! 참치 종류도 생각보다 너무 많은거 같아요 ㅋㅋㅋ 붉은등살이라닝 ~ 요건 고양이 눈건강을 위해 비타민a와 타우린이 다량 햠유되어 눈과 망막의 건강에 도움이 되용 !!
    위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파우치 속에는 생각보다 물이 많아용 !! 수분이 94% 라는점에서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저희 집 페르시안 달콤이 경우 !!아주아주 딱 좋은 간식인듯 !!

  4. rrwrrwyytuufkd 2019/09/09 07:13

    There was so much fun to choose frowrwrrm.
    I'm sorry to hear that, but I decided to visit again next time.
    It was comfortable to keep the soup clear for a long time.
    Taste and flavor are so different that you can't miss both.
    It was a lot of fun to choose by taste

  5. isual similar 2019/09/11 09:21

    There's no style for you if you're so careful with what you see.
    It was so good to see it, and mouth water began to spin
    I think you're doing business with honest